촌스러운 게 좋아

호레이스 실버 Horace Silver

by 이락 이강휘

그간 재즈에서 들어볼 수 없었던 독특한 전주가 들려온다. 무덤덤하게 두 번씩 눌러대는 건반이 반복되고 트럼펫과 테너 색소폰이 축포처럼 터진다. 드러머는 심벌과 북 모서리를 톡톡 세심하게 건드린다. 보사노바를 기본으로 하지만 전혀 새로운 느낌의 리듬, 펑키다. 보통 펑키라고 하면 들썩거리는 어깨를 참을 수 없어야 하지만 이 곡은 신이 나기는 하지만 온전히 몸을 맡기기에는 살짝 못 미덥고 다소 끈적거리기까지 한다. 하지만 가슴을 뛰게 하는 곡인 건 또 분명하다.


Song for My Father’. 이 곡을 아내에게 들려준 적이 있다. 나는 당연히 신난다거나 재미있다거나 하는 반응을 기대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촌스러워요.’였다. 촌스럽다고 듣기 싫은 건 아닌데, 이유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왠지 촌스러운 느낌이라고 했다. 나는 ‘옛날 음악이 다 그렇지.’하며 대수롭지 않게 넘겼지만 내심 그 이유가 몹시 궁금했다.(본인도 모른다고 했기 때문에 이유를 물어볼 수는 없었다. 계속 물으면 화를 내기도 하고.) 스타카토로 끊는 트럼펫 소리 때문일까. 아니다. 그런 건 다른 하드밥에서도 자주 활용되는 연주 방식이다. 그럼 호레이스 실버 Horace Silver 특유의 힘이 넘치는 타건 때문일까? 그건 그럴 수도 있겠다. 하지만 강한 타건이라고 해서 무조건 ‘촌스럽다’라고 규정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의 다른 연주를 들었을 때는 그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궁리 끝에 그 원인불명의 촌스러움의 비밀을 ‘Song for My Father’이라는 곡명에서 찾았다. 호레이스 실버의 아버지는 포르투갈령 카보베르데 출신이었고 그 영향으로 실버는 어렸을 때부터 카보베르데 전통 음악을 자연스럽게 접했다. 재즈라는 음악은 즉흥적인 연주가 필수적이라 음악에서 연주자의 내면에 잠재된 요소가 악기를 통해 자연스럽게 드러날 수밖에 없다. 그 결과 호레이스 실버의 음악에는 아버지의 영향이 묻어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게다가 아버지에게 헌정하는 곡이었으니 의식적으로도 아버지의 색채를 입히기도 했을 것이다. 그의 음악이 어딘지 모르게 어두운 것도, 끈적끈적한 느낌을 주는 것도, 그래서 촌스러운 느낌을 주는 것도 모두 미국이란 낯선 나라의 어느 뒷골목에서 동네 사람들을 모아 고향의 음악을 연주하던 포르투갈 이민자 아버지의 영향이 묻어났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흔히 ‘촌스러움’이라는 단어는 부정적인 뉘앙스로 쓰이는 경향이 있다. 우리에게 ‘촌’은 시대에 뒤떨어지고 도시에 비해 발전이 덜 되었다는 인식이 있기 때문에 그와 같은 뜻을 긍정적으로 쓰고 싶을 때는 ‘예스러움’이라는 말로 대체하기도 한다. 하지만 ‘예스러움’에는 ‘촌스러움’이라는 말에 내포된 정겨움과 푸근함이 없다. 어딘지 모르게 정제되어 있고 정돈되어 있는 느낌이 ‘예스러움’에 있다면 ‘촌스러움’은 날 것 그대로의 자연스러움이 있다. 그런 맥락이라면 호레이스 실버의 음악은 촌스러운 게 맞을 수도 있겠다 싶다.


아버지께 시를 써서 드린 적이 있다. 어릴 때 추억을 담은 작품이었는데 기억을 더듬어서 되는대로 써 내려간 거라 그 작품 역시 촌스러워서 드리면서도 민망해했다. 그런데 시를 보신 아버지는 슬쩍 내 곁에 오셔서는 “그거 사진 좀 찍어서 나한테 보내봐라.”라고 하셨다. 친구 분들께 자랑하고 싶으셨던 게다. 호레이스 실버의 아버지의 마음도 이와 같았을 것이다. 아들이 작곡한 이 ‘촌스러운’ 음악을 듣고는 남에게 자랑하고 싶을 만큼 흡족해하셨을 것이 틀림없다. 멋진 중절모를 쓰고 미소를 지은 채 시가를 물고 있는 앨범 재킷에서 아들을 기특해하는 당신의 마음을 충분히 읽어낼 수 있다.

녀석, 기특하기는.


사족일 수 있겠으나, 내 생각에 이 곡의 진수는 조 핸더슨 Joe Henderson의 테너 솔로다. 펑키한 주제와 만나는 순간에는 조심스럽게 접근했다가 갈수록 날카롭고 격렬하게 에너지를 뿜어낸다. 뿐만 아니라 ‘리듬을 가지고 논다는 것이 이런 것인가.’하는 생각이 들게 하는 노련한 진행은 이 곡의 진정성을 돋보이게 하는 데 크게 기여한다. 워낙 강렬한 솔로라 ‘남의 아버지 헌정곡에 도대체 왜 얘가 이렇게 정성을 들이는 건가.’싶을 정도다. 어쨌든 꼭 들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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