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하면 박진영 그리고 스윙Swing

베니 굿맨 Benny Goodman

by 이락 이강휘


바로 어제 일은 생각나지 않아도 대학 신입생 때의 기억은 아직 선명하다. 음, 기억이 선명하기보다는 그 당시의 거리에 비치는 빛의 색, 향기, 사람들의 말소리 등과 같은 감각들이 선명하다고 봐야겠다. 특히 어두운 굴속을 한없이 달리던 지하철이 밖으로 나오는 순간 차안으로 쏟아지는 아침햇살이 떠오를 때면 그 때의 감정이 일어나 괜히 두근거린다.


2001년, 한창 대학의 즐거움을 만끽하고 있을 즈음, 가수 박진영이 신곡을 발매했다. ‘Swing Baby’라는 이름의 곡이었는데, 듣자마자 ‘아, 스윙이라니, 정말 탁월한 네이밍이다.’라고 생각했다.(재즈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었던 때라 ‘스윙’이라는 것이 장르명인지는 꿈에도 몰랐다.) 절로 춤을 추게 만드는 선율, 게다가 박진영이라는 춤꾼이 긴 팔과 다리로 무대를 휘저으며 추는 춤은 정말이지 일품이었다. 저런 춤을 출 수 있는 음악은 꼭 ‘Swing’이라 불러야한다는 일종의 필연성을 느꼈다.


이후 재즈에 흥미를 들이고 나서 스윙이라는 말을 다시 만났다. 재즈의 기본이 즉흥연주와 스윙이라던데, ‘즉흥연주’야 직관적인 용어니 그렇다 하더라도, 스윙은 보통 이해하기 어려운 말이 아니었다. 재즈전문가가 설명하는 스윙은 아무래도 ‘Swing Baby’가 아니었던 것이다.(스윙에 대한 정의가 다양하다는 건 한참 뒤에서야 알았다.)


춤하면 역시 박진영!

그러다 한줄기 빛을 찾았으니, 저 유명한 Sing, Sing, Sing의 주인공, 베니 굿맨Benny Goodman이었다. 절로 어깨를 들썩거리게 하는 흥겨움. 상황에 맞게 딱딱 꽂아주는 경쾌한 브라스, 심장박동에 맞춘 듯 울려대는 폭발적인 드러밍, 그 속을 비집고 나오는 신명나는 클라리넷. 영락없는 박진영이었다. 그의 음악을 들으며 나는 박진영의 미끄러지는 듯한 스윙댄스를 떠올렸다. 넘어질 듯 미끄러지며 쫙쫙 뻗는 팔과 잔뜩 찌뿌린 인상으로 무대를 두드리는 발놀림을 생각했다.


그의 음악을 들을 때면 자연스럽게 춤이 떠오른다. 당시 사람들도 그랬던 것 같다. 춤을 위한 음악을 연주하는 사람이라는 인식. 그러다보니 베니 굿맨의 음악성에 대한 평가는 박할 수밖에 없었으리라. 사람들은 그의 음악이 얼마나 좋은가보다는 얼마나 춤에 어울리는가를 고려했을 것이다. 물론 베니 굿맨은 그런 기대를 실망시키지 않았고, 그런 덕에 그는 재즈를 만들고 다듬었던 흑인을 제치고 ‘스윙'의 왕좌에 오를 수 있었다.


그런 그의 활동이 재즈를 만들고 다져온 흑인들에게는 얼마나 눈엣가시였을까. 뮤지션의 기용에서 인종을 배제하고 오직 음악만을 고려했다지만 그의 음악에서는 카운트 베이시Count Basie의 ‘April in Paris’에서 느낄 수 있는 흑인 특유의 걸쭉함이나 듀크 엘링턴Duke Ellington의 ‘Caravan’에서 들을 수 있는 흑인의 위트와 긴장감(‘도대체 이 드럼은 언제 끝나는 거야?’와 같은)을 느낄 수 없다. 그는 스윙 빅밴드만이 가질 수 있는 완벽한 하모니를 들려주지만, 하모니의 방향이 오직 춤으로 향해 있다는 것은 당시 뮤지션들, 특히 흑인들에게 꽤나 큰 좌절과 갈등을 안겨주었을 것이다. 그에 대한 반발로 비밥을 궁리한 것은 어쩌면 필연적인 결과였을지 않을까.


그러나 이러니저러니 해도 역시 스윙 빅밴드의 묘미는 춤이라 생각한다. 물론 이런 생각이 베니 굿맨이 만든, 일종의 편견이라 할 수도 있겠지만 그의 음악을 들으면 들썩이는 어깨를 주체하기 힘들다는 건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초기 빅밴드의 음악을 즐겨듣지는 않지만(듣다보면 떠오르는 흑백의 톰이 제리를 쫓는 장면을 외면하는 게 여간 힘든 게 아니다.) 가끔 졸음을 쫓아야하는 시간이면 ‘Bugle Call Rag’나 ‘Smoke House’를 크게 틀어놓는다. 그러면 내 안에서 일어나는 스윙이 내 어깨를 흔든다. 발을 까딱거리며 손가락으로 박자를 맞춘다. 그래, 이게 스윙이지! 앞에서는 카운트 베이시, 듀크 엘링턴이 더 훌륭한 뮤지션인 것처럼 말해놨지만 이때만큼은 베니 굿맨만한 게 없다. 내친 김에 JYP주가도 확인한다. 오르든 내리든 잠은 확 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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