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 오래된 노래이지만 가수 이소라의 ‘청혼’을 가끔 찾아듣는다. 중학생 때인 걸로 기억하는데 그 노래에 빠져 내 생애 처음으로 콘서트라는 곳을 가봤다. 작은 소극장 무대 위에서 노래하는 이소라 씨의 모습은 무척이나 근사했다.(무려 춤도 췄다.) 이 황홀한 경험 때문인지 ‘이 곡은 보사노바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판단 기준은 한동안 ‘청혼’이었다.
이 기준이 업데이트된 건 <Getz/Gilberto>를 듣고 난 이후이다. 대학교 때 학교 앞에 ‘스탄 게츠’라는 호프집을 발견하곤 ‘가게 이름 한번 멋들어지게 지었네.’하며 들어가 봤다. 벽에 곳곳에 붙어 있던 색소폰 불고 있는 배 나온 아저씨 사진에는 어김없이 ‘Stan Getz’라고 쓰여 있었고 나는 그제야 비로소 스탄 게츠 Stan Getz가 사람 이름인 줄 알았다. 한참 웃고 떠들며 맥주를 마시고 있는데 익숙한 리듬의 노래가 흘러나온다. 보사노바였다. 영어는 아니고 스페인어인가, 프랑스어인가 하면서 의미 없는 토론(그 자리엔 스페인어, 프랑스어를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으니까)을 벌이다가 한동안 대화를 잊고 음악만 들으며 맥주를 홀짝거렸다. 알아듣지 못하는 노랫말이었지만 나지막이 읊조리는 목소리가 제법 운치가 있었고 현을 쓰다듬는 듯한 기타도 일품이었다. 게다가 사이사이에 들려오는 부드러운 색소폰은 곡을 공중으로 붕 띄우고 있어 편안하고 푸근한 느낌을 주었다. 색소폰이 기타와 그렇게 궁합이 잘 맞는지 그 음악을 듣고 처음 알았다.
노래의 정체는 다음날 검색해서 알았는데, 그 곡을 찾는 건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스탄 게츠의 대표 앨범 수록곡이기도 했거니와 그만큼 대중적이었기 때문이었으리라. 그 곡의 제목은 ‘Desafinado’였고 프랑스어나 스페인어가 아닌 포르투갈어로 부른 노래였다. 그 길로 음반을 구해서 질릴 때까지 열심히 들었다. 들어도 들어도 좋았다. 특히 ‘The Girl From Ipanema’에서 아스트루드 질베르토 Astrud Gilberto의 그 청량한 목소리는... 어휴, 그녀가 노래를 부르는 것에 대한 후앙 질베르토 Joao Gilberto의 반대가 아내의 목소리가 뭇 남성들의 마음을 흔들 수 있다는 본능적인 불안감 때문이라는 것을 단번에 확신할 수 있다.(그리고 실제로 둘은 이혼을 하게 된다. 왜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나.) 그렇게 보사노바의 선별기준이 업데이트되었다. 그때 이후 나는 보사노바라고 하면 이 앨범을 떠올린다.
아스트루드 질베르토의 목소리를 한 번만 들어봐도 후앙 질베르토의 마음을 대번 이해하게 된다.
이 기준에는 문제가 있다. 음, 엄밀히 말하면 기준 적용에 문제가 있는 거라고 볼 수 있겠는데, 웬만한 보사노바에는 만족하지 못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 앨범의 여파가 너무 강렬해서 다른 보사노바를 듣기가 어렵다. 후앙 질레르토의 앨범도 찾아봤지만 뭔가 석연찮고, 안토니오 카를로스 조빔 Antonio Carlos Jobim의 <Wave> 역시도 이 앨범에 비하면 만족도는 떨어진다. 심지어 스탄 게츠의 <Jazz Samba>라는 앨범도 이 앨범과 비교하면 ‘야, 이거 아닌데.’하는 생각이 든다. 이것저것 다른 음악을 찾아봐도 결국 ‘역시 이것만 한 게 없지.’하면서 이 앨범으로 돌아오게 된다. 이 부작용은 꽤 심각해서 심지어 처음 보사노바를 알게 해 준 ‘청혼’을 들어도 이 앨범이 듣고 싶어 진다.
후앙 질베르토, 안토니오 카를로스 조빔, 스탄 게츠를 모아 작정하고 만든 앨범이니 좋을 수밖에.
모든 대중음악이 비틀스와 비틀스가 아닌 것으로 양분되는 시대가 있었다. 재즈의 시대는 이미 저물어가는 듯 보였고 재즈 뮤지션들에게는 프리재즈라는 극단적인 선택만이 남은 것 아닌가 하는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었다. 그들에게 보사노바는 재즈의 부활이라는 희망의 씨앗이었으며, 그들에게 스탄 게츠는 새로운 선택권을 선물한 메시아였다. 그리고 그 영향력은 현재를 살아가는 나에게까지 미쳐서 ‘뭐 들을 거 없나?’할 때는 재즈 음반을 뒤적인다거나 ‘재즈로 수업하면 재밌겠는데?’라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나는 절대(!) 스탄 게츠를 '약쟁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호프집 ‘스탄 게츠’는 얼마 가지 않아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가게가 되었다. 가게는 이름 따라간다고 가게 이름을 스탄 게츠보다 오랫동안 꾸준하게 활동했던 ‘소니 롤린스’나 ‘아트 블레이키’라고 지었으면 더 좋았을 뻔했다는 아쉬움이 있다. 요즘은 재즈 연주자의 라이브를 들을 수 있는 좋은 재즈바들이 많이 생겼지만 그래도 가끔씩은 친구들끼리 삼삼오오 모여 맥주를 홀짝거렸던 스탄 게츠가 생각난다. 사실 그 가게가 그리운 건지, 20대 초반의 싱그러움이 그리운 건지 정확히는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