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그대 품 안에>라는 드라마가 있었다. 지금은 분노의 양치질로 유명한 차인표 씨가 꽃미남 이사님으로 나온 신데렐라형 드라마로 당시 엄청난 인기였다. 잘생긴 얼굴로 검지를 세워 왔다 갔다 하는 포즈나 그 검지를 여주인공 신애라의 입에 갖다 대 장면은 뭇 여성의 마음을 연신 흔들어댔다.(잘생긴 사람은 검지조차 잘생긴 줄은 그때 처음 알았다.) 대한민국에 색소폰 열풍이 분 것도 그때였지 싶다. 차인표의 색소폰 연주를 혼이 빠진 듯 바라보던 여인들의 눈에 들고 싶었던 남성들은 일사불란하게 악기점으로 향했다. 물론 대부분의 남성들은 ‘차인표 색소폰’을 구입해 전시하는 것만으로 뿌듯해하는 자린고비적 행태에 만족했지만 진지하게 접근한 몇몇 분들로 인해 현재 색소폰 동호회가 다른 악기에 비해 비교적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게 아닌가 한다. 누가 뭐래도 우리나라 색소폰 동호회 발달사에서 차인표 씨를 빼면 섭섭한 일이다.
90년대 꽃미남은 현재 화가 많이 났습니다.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인기를 발판으로 ‘차인표 1집’을 내놓는다. 결과는? 뭐, ‘차인표 신드롬’이라고까지 불리던 때였으니 실패할 리 없었다. 정확한 집계는 기억이 안 나지만 30만 장은 족히 팔렸지 싶다. 내 인생에서 ‘잘 생긴 사람은 뭘 해도 된다.’라는 삶의 교훈을 처음 알게 해 준 사건이자 잘 생긴 것(!)들에 대한 근원을 알 수 없는 반감을 가지게 된 계기도 그때였다.
쳇 베이커 Chet Baker를 처음 만난 건 음악이 아니라 사진이었다. 선이 굵은 얼굴형에 우수 어린 눈망울. 무심한 듯 그러나 샤프하게 빗어 넘긴 머리. 마치 ‘나는 음악으로만 말해.’라는 듯 굳게 다문 입술. 꽃미남이다. 내 속에는 ‘쳇, 얼굴만 믿고 나온 샌님인가.’하는 반감이 솟구쳐 올랐다. 만약 쳇 베이커의 삶을 다룬 글을 읽지 않았다면 어쩌면 내 속의 열등감이 그의 음악을 지속적으로 밀어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제임스 딘을 닮은 생김새에 반항적인 이미지까지 비슷하니 소위 말하는 ‘먹히는’ 스타일이었다. 레이블은 그걸 적극적으로 활용해서 영화에도 출연시키기도 했다고 하니 사실 쳇 베이커 역시 대중음악에서 피할 수 없는 스타마케팅으로 소비된 것은 인정할 수밖에 없는 모양새다. 이쯤 되면 <Chet Baker sings>이라는 앨범을 말하지 않을 수 없겠다.
일명 '오빠 믓찌나'샷
쳇 베이커를 다룬 영화 <본 투 비 블루 Born To Be Blue>를 보면 쳇의 아버지가 쳇에게 이렇게 말하는 대사가 있다. “꼭 그렇게 계집애처럼 노래를 불러야 했니?” 이 장면에서 혼자 피식했다. 역시, 나 혼자 그렇게 생각한 게 아니었어! 그가 원래 그런 목소리로 노래를 불렀는지 상업적 계산에서 나온 결과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앨범에서 쳇의 음성은 매우 여성스럽다. 가냘프고 안타까워서 심지어 분명히 남성인 나조차도 숨겨진 모성본능을 느끼게 된다. 과연 다음 음을 부르는 게 가능할까 싶을 만큼 한 음 한 음이 아슬아슬하다. 음역대도 굉장히 좁아서 ‘이 부분은 좀 올려줘야 할 텐데…’라고 생각할 때 즈음이면 자기도 그걸 아는지 그냥 낮춰서 불러버린다. 특히 ‘My Ideal’의 첫 부분은 너무 불안해서 ‘진짜 얼굴 믿고, 인기 믿고 발매한 거구만!’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1954년 이 앨범의 베이스를 연주했던 카슨 스미스 Carson Smith가 ‘이걸 왜 하는 거지.’라며 중얼거렸다는데 음반을 들어보면 카슨의 답답한 마음에 충분히 공감할 수 있다.
그런데 왜 그런 거 있지 않는가. 뭔가 어설픈 건 분명한데 이상하게 끌리는 것. 쳇 베이커의 노래가 그렇다. 객관적으로 전혀 좋은 목소리도 아니고 대단한 기교를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다.(심지어 남부 악센트도 있다고 한다. 나야 뭐, 영어는 표준어조차 잘 모르니 그건 별 문제가 되진 않는다.) 그렇다고 감정을 담아 부르는 것도 아니다. 딱히 대단한 감흥이나 감동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끌린다. 그게 참 묘하다. 그 앨범에서 쳇 베이커의 트럼펫 역시 마찬가지다. 8마디에서 16마디 정도의 그리 길지 않은 연주를 들려주는데, 루이 암스트롱이나 마일스 데이비스에 비하면 그리 대단할 것도 없다. 하지만 놀랍게도 대단할 것도 없는 쳇 베이커의 연주는 딱히 대단할 것도 없는 목소리와 만나 대단한 매력을 보여준다. 특히 비 오는 날 차 안에서 듣는 쳇 베이커는 무척 근사하다. 어떤 자동차 광고가 있었다. 파노라마 선루프를 열리고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이어지는 이병헌 씨의 멋진 목소리. ‘쏘OO은 이렇게 타는 겁니다.’ 아니다. 비가 오는 날에는 차 안에서 괜한 선루프를 열어젖히는 게 아니라 오디오를 켜고 쳇 베이커의 ‘My Funny Valentine’을 듣는 거다. 비 오는 날 꼭 들어보세요.
사실 잘 생긴 것들은 뭘 해도 잘 된다는 것은 사실 삶의 교훈이 아니라 질투 섞인 푸념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TV를 봐도 외모가 출중한 연예인이야 얼마든지 있지만 그중에 괄목할 만한 주목은 받는 것은 소수 중에 소수이다. 요즘 차인표 씨는 아내 신애라 씨와 함께 많은 선행을 베풀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수많은 잘생긴 배우들이 반짝하고 사라진 것을 생각해보면 멋진 외모만큼이나 인품도 훌륭하니 지금도 톱스타 자리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리라. 쳇 베이커 역시 수려한 외모만으로 지금까지 재즈 팬들 사이에서 회자될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앞니가 빠진 상태에서도 음악으로 재기하기 위한 몸부림이나 자신의 연주를 비웃었던 마일스 데이비스의 인정을 받기 위해 트럼펫을 손에서 놓지 않았던 노력이 있었기에 많은 이들이 망설임 없이 그를 쿨 재즈의 대표자로 추대하는 것이다.
최근 퀸의 삶을 다룬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가 엄청난 인기를 끌어 퀸을 잘 모르는 우리 학생들도 ‘레디오 가가 레디오 구구’를 외치고 다닌다. 그런데 사실 나는 그 영화만큼이나 <본 투 비 블루>도 잘 만들어진 영화라고 생각한다. <본 투 비 블루> 속 재즈에 담긴 특유의 애수와 록 공연장의 박진감의 차이 정도만 제외하면 서사구조 상으로도 크게 다를 것도 없다.(물론 그 차이가 관람객의 차이로 이어졌겠지만) 아무튼 이 영화에서 쳇 베이커 역할을 맡은 에단 호크 Ethan Hawke의 연기는 너무나 훌륭하다. 특히 ‘I’ve Never Been in Love Before’를 들을 때면 나는 이 곡을 부르는 에단 호크의 퇴폐적이고 우수 어린 눈빛이 생각나서 도무지 이 곡이 쳇 베이커의 것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다. 고인에게는 죄송한 일이지만 이 곡만은 에단 호크에게 양보해야 하는 것 아닌가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에단 호크의 수려한 외모를 떠올리며 ‘사람은 역시 잘 생기고 볼 일이야.’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아, 뼛속까지 어린 이놈의 열등감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