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과 후 수업으로 재즈 수업을 기획했다. 요즘 방과 후 수업은 교사가 아이들에게 일괄적으로 시키는 것이 아니라 대학 수업처럼 수업 선택권을 주고 수강신청을 받는 형식이라 수업계획서를 게시해둬야 한다. 작년 겨울부터 ‘재즈 수업해야지.’라고 생각한 터이지만 워낙 계획적으로 사는 타입이 아니라 생각해놓은 걸로 투박하게 계획서를 작성했다.
재즈의 역사를 배우며 미국의 역사, 인종차별의 문화적 배경 등을 이해하고, 재즈 감상문을 작성하며 글쓰기 역량을 강화함. 수업 후 재즈 감상문을 엮어 책자로 제작하여 배부함.
재즈를 들려주고 재즈 에세이를 써서 책으로 묶어내는 것이 목적이었고, 미국사나 흑인 인권운동에 대한 내용은 부수적으로 다룰 예정이었다. 인원이 너무 적으면 책으로 만들 때 볼품이 없어지니까 내심 10명 정도 신청하면 좋겠다 싶었다.
수강 수요조사 첫날, 한 아이(은정이라고 하자.)가 찾아왔다. 재즈 수업계획서를 봤노라고 그런데 질문이 있다고 했다.
“선생님, 왜 재즈예요?”
그럴싸한 대답을 해주고 싶었지만 그럴 깜냥이 안 되니 볼품없는 대답을 하고 말았다.
“그냥, 내가 좋아해서.”
의도와 달리 은정이는 아주 흡족해하며 그럼 신청하겠다고 한다. 역시 아이들 마음은 모르겠다.
‘좋아한다’라는 말이 나왔으니 하는 말인데 나는 ‘나’에 대해 아는 것을 가장 중요한 교육적 가치로 여긴다. 특히 청소년들은 ‘나’에 대한 이해가 매우 떨어지는 편인데, 주위로부터 영향을 많이 받을 수밖에 없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나’에 대한 이해 중 가장 우선적으로 고려되어야 할 것은 ‘나의 기호’에 대한 성찰이다. 대개 아이들은 ‘네가 제일 좋아하는 게 뭐야?’라는 질문을 받으면 코마에 빠진다. 학교생활기록부에 취미나 특기란을 채우는 걸 가난한 자가 곳간 채우는 것보다 힘들어한다. 취미가 뭐냐는 질문의 답을 찾아오라고 하면 사나흘을 고민한 끝에 ‘음악 감상’을 써 온다. 그래도 요즘 애들은 양심은 있어서 ‘독서’는 잘 안 쓴다. 생각해보면 뭐, 나는 안 그랬나. 악기를 배운 것도 아니고, 운동을 썩 잘하는 것도 아니니 학창 시절 ‘취미나 특기’라는 말이 보이면 괜히 주눅이 들었다. 아, 게임을 좋아했는데 취미에 ‘게임’이라고 쓰면 혼날 것 같아서 그건 자기 검열했었다.
이게 다 개인의 기호에 대해 생각해보는 기회가 부족해서 그런 거라고 생각한다. 내가 뭘 좋아하는지, 뭘 싫어하는지 깊게 생각해 본 적이 없어 잘 모른다. 그러다 보니 주위에서 좋다고 하면 ‘와~’하고 따라가고 이건 싫다고 하면 ‘우~’하고 야유한다. 주위 눈치를 보며 편승하기에 바쁘다. 그러니 주위 의견을 모두 제거하고 오롯이 홀로 ‘기호’에 대한 질문을 대면하면 적절한 답을 찾지 못하고 방황하게 된다. 자신의 기호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할 기회를 갖지 못했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다.
어쩌면 은정이는 ‘좋아한다’라는 말이 마음에 들었을는지 모르겠다. 재즈가 자신의 기호와 맞았거나 기호를 찾을 수 있겠다는 희망 같은 것을 보지 않았을까? 은정이 말고도 생각보다 많은 아이들이 재즈 수업에 수강신청을 해서 지금은 19명의 학생들과 재즈를 듣고 글을 쓰고 있다. 이 아이들 모두에게 ‘재즈, 생각보다 좋은데?’라는 반응을 기대하는 것은 아니다. ‘재즈는 역시 내 취향이 아니야.’라는 반응도 의미 있다고 본다. 싫어하는 것을 발견하는 것도 개인의 기호를 살펴보는 과정이니까.
“그냥, 내가 좋아해서.”
내가 재즈를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 시작한 수업이다. 교사라는 직종이 참 위험한 게, 교사가 무언가를 좋아하면(거기에서 교육적 가치를 찾을 수 있다면) 그걸로 수업을 하고 아이들은 그 수업에 어떤 방식으로든 영향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지금 함께 하는 아이들도 마찬가지일 테다. 무방비로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 아이들에게 도움은 못줄지언정 적어도 해는 되지 않는 수업을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