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과후재즈수업] 저는 재즈랑 안 맞는 것 같아요.

한 아이가 자신은 재즈와 안 맞는 것 같다고 했다.

by 이락 이강휘

재즈 수강신청 마지막 날이었던 것 같다. 한 녀석(윤정이라고 하자.)이 찾아와서 ‘재즈 수업 때 뭐해요?’라고 질문했다. 물론 그 정도 정보는 계획서에 적혀 있었으나 글자는 읽어도 내용은 읽지 않는 이 불쌍한 문맹에게 친절하게(!) 안내를 해줬다.

“재즈 듣고, 책 읽고, 글 쓰는 수업이다. 책도 사야 해.”

내가 한 대답 중에 무엇이 윤정이를 망설이게 했는지 모르겠지만 약 3분간 망설였다. 아마 ‘글 쓰는 것’이나 ‘책 사는 것’ 중 하나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더니 아직 의구심을 채 떨치지 못한 표정으로 신청하겠다고 했다. 나는 ‘그렇게 찝찝하면 굳이 신청하지 않아도 되는데.’라는 말을 목구멍으로 삼키며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나 역시도 ‘이 녀석이 끝까지 버틸 수 있을까’라는 의구심을 떨치지 못한 채 첫 수업에 들어갔다.



첫 수업은 간단했다. 재즈음악을 들려주고 ‘이게 재즈란다.’라고 얘기하는 것부터 시작했다. 재즈사를 간략하게 정리하고 시대에 따라 해당하는 음악을 들려줬다. 레그타임부터 퓨전 재즈까지 훑었고 간간히 미국사와 뮤지션들에게 가해진 인종차별에 대한 얘기를 곁들였다.

보통 강의식 수업은 5분 정도 지나면 한 두 명씩 쓰러지기 마련인데 처음 접한 내용이다 보니 다들 초롱초롱하게 잘 들었다. 뉴올리언스가 속한 루이지애나 주를 어떻게 미국이 획득하게 되었는지를 설명할 때는 ‘어, 오늘 영어 지문에 나왔던 내용이에요.’라면서 즐거워했다. 오랜만에 아는 게 나오니 그렇게 흥분들을 한다.

한 시간 가량을 설명하고 나오기 전에,

“시간 나면 오늘 소개한 음악을 들어봤으면 좋겠다. 좀 익숙해져야 듣는 재미가 있거든.”

이라고 했다. 아이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행동으로 옮기는 것은 아이들 스스로의 몫이다.

이 책이 없었으면 수업할 엄두를 못 냈을 것이다.

다음 시간, 루이 암스트롱을 다뤘다. 전진용 씨가 쓴 ‘오감재즈’를 읽고 루이의 음악을 들려줬다. ‘이거 들어왔어.’라는 반응도 있고, 아무 말 없이 심각한 표정으로 음악을 듣는 아이들도 있다. 한참 책을 읽고 음악을 들었다. 중간중간 자신도 모르게 수면의 늪에 빠지는 아이들을 구해야 했지만 대부분 맨 정신으로 잘 읽었다. 이어지는 차시 예고.

“다음 시간에는 루이 암스트롱에 관한 에세이를 써야 해. 다음 시간까지 음악 좀 찾아 듣고 어떤 느낌인지, 어떤 맥락에서 음악을 들었는지, 연주는 어떤지 잘 생각해보고 와.”

수업을 마치고 나오는데, 윤정이가 한 마디 했다.

“선생님, 저는 재즈랑 안 맞는 것 같아요.”

‘응, 대답을 망설이는 니 표정에서 이미 그걸 예측했단다.’라고 생각했지만 그렇게 독하게 말하진 않았다. 그저, “그래? 어쩌지?”했다. 일단 들어보겠단다.


다음 시간, 교실에 들어가니 윤정이가 대뜸 “선생님, 저 매일 밤 재즈 들으면서 잤어요.”라고 한다. 비록 재즈를 틀고 찰나의 시간만에 바로 잠이 들었지만 아무튼 그랬단다. 그래도 바로 저번 시간에 재즈가 안 맞는 걸 깨달은 아이 치고는 잘 견뎌냈다는 것에 기특해했다.


솔직히 말하면 윤정이가 쓴 지금껏 쓴 글은 남에게 자랑스레 보여줄 만한 것은 못 된다. 논리적으로 연결도 안 되고 문맥도 왔다 갔다 정신없다. 글은 사람의 인격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믿고 있는데 윤정이의 글을 보면 그 신념에 확신을 갖게 된다. 그렇지만 재즈를 제법 삶에 가깝게 들여놓고 있다는 것은 알 수 있다. 글쓰기 능력 함양이니 미국사 공부니, 그럴싸한 말들로 수업계획을 채워놨지만 재즈를 아이들의 삶에 들이는 걸로 내 교육목표는 달성이다. 글이야 쓰다 보면 늘 테고, 고치다 보면 더 좋아질 테다. 지금도 처음보다는 많이 좋아지기도 했고.



‘그래서 윤정이는 재즈와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로 끝맺고 싶지만 현실은 디즈니가 아니다. 지금도 수업이 있는 날이면 윤정이가 찾아와 묻는다. “오늘 재즈 수업해요?” 다 알면서 굳이 물어본다. 하기 싫은 거지 뭐.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따라와 주니 대견하고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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