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늘하다. 가슴에 비수가 날아와 꽂힌다. 하지만 걱정하지 마라. 진통제의 흡수는 통증보다 빠르니까.‘
흡수 빠른 이란 단어가 박힌 연질캡슐 진통제를 한 알 먹으며 온몸으로 밀려오는 근육통과 인후통을 견뎌내려 애를 쓰며 일주일을 살아내고 있다. 2년여 만에 두 번째 코로나를 만나며 망각의 바다에 표류하던 몇 해 전 기억들이 두둥실 떠올랐다. 질병에 대한 공포, 고립으로 인한 외로움, 신체의 한계로부터 오는 절망감과 그 뒤에 따르는 우울감 같은 것들 말이다.
두 번째는 처음보다 덜 아프고 수월하다는 사람들도 더러 있다던데, 나는 이번에도 처음처럼 오만 증상을 다 느끼며 꽤나 적극적으로 코로나 치레를 하고 있다. 첫 번째 코로나 당시 통증을 출산에 비유했다면, 이번 코로나 역시 ‘아픈 것을 까먹고 둘째를 낳았는데 왜 산후 우울증이 오는 거죠? ’와 같은 증상이 오고 말았다.
연일 폭염주의보 문자가 울리는 요즘 같은 날씨에 코로나에 걸려 꼼짝 못 하고 끙끙 앓고 있는 내 육체가 몸시도 짜증 나고, 일은 쌓여가는 어쩌지 못하는 상황들에 마음이 몹시도 불안해져 버린 것이다. 입 밖으로 잘 내뱉지 않는 ‘왜 나만..’‘내 팔자는..’ 같은 부정의 말들이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더 이상 그 어떤 것도 할 수 없을 것 같다 생각되니 의욕과 감사의 마음은 온 데 간데 없이 사라지고 할 수 없다는 패배감에 지배당하고 만 것이다.
‘세상이 내 모든 것을 빼앗고, 나에게 최악의 상황을 주었더라도 나에게는 절대 빼앗길 수 없는 한 가지가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그것은 바로 그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에 대한 내 선택권이다.-생각이 너무 많은 어른들을 위한 심리학 / 김혜남 저-‘
생각보다 깊게 파고든 우울감을 이겨내기 위해 이어폰을 꽂고 유튜브 명강의들을 찾아 들으며 마음의 회복에도 심혈을 기울였다. 찰랑찰랑 넘칠 듯 채워진 감정이 울컥 쏟아져 한차례 넘쳐 내리던 날엔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 한바탕 울며 ‘나는 할 수 없는 사람이었어. 이건 내가 감당하지 못하는 일들이야’라고 쏟아 내고 나니 이상하리 만치 평온해져 오는 걸 느꼈다.
정신 분석 전문의 김혜남의 <생각이 너무 많은 어른들을 위한 심리학>에서도 이와 같은 사례를 찾아볼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이제 그만 바꿀 수 없는 것에 대한 집착을 버리기로 마음먹었다. 그 집착으로 내게 남아 있는 것마저 놓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 그처럼 어쩔 수 없이 찾아든 병마를 손님처럼 받아들이기로 마음먹자 신기하게도 어쩌지 못해 터질 것만 같았던 내 안의 분노와 슬픔들이 사그라지고, 불안과 걱정도 잦아들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 지옥과도 같던 마음이 평온해졌다.‘
코로나로 인해 참으로 오랜만에 육체의 고통과 고립으로 인한 외로움, 한계 상황을 느끼며 많은 생각들을 할 수 있게 됐다. 특히나 그동안 스스로를 채근하며 버티기만을 강요하던 나에게 ’ 받아들이기‘ 그리고 ’ 인정해 보기‘라는 강요의 반대되는 감정들을 수용하고 나니 마음의 무게가 한결 가벼워짐을 느낄 수 있었다.
모든 것을 다 해낼 수는 없어.
실수할 수도 있어.
잘하지 못해도 괜찮아.
천천히 다시 시작해도 돼.
문제는 하나씩 해결해 나가면 돼.
혼자가 아니야.
이번 코로나가 나에게 알려준 것들이 시기적절하게 찾아왔다 생각한다. 그럼에도 아직 회복되지 않는 체력에 가능하면 코로나에 걸리지 않고 건강히 살아가는 것이 최고이지 않을까. 부디 모두 건강한 여름을 지내시길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