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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휘연 Aug 19. 2024

어싱이 좋아지는 이유

최근 바다 어싱(earthing)을 하기 시작했다. 섬에서 살아온 지 4년이 되었어도 바다 활동보다는 숲으로 다니길 선호했던 이유는 어릴 적 바다에서 사고를 당할뻔한 일이 트라우마로 남았기 때문이었다. 바다는 나에게 거칠고 두려운 존재이다. 바다 모래가 발톱 사이에 끼는 기분도 싫고, 발바닥에 스티커처럼 붙어 있던 모레 알갱이가 방바닥에서, 때로는 철 지난 샌들 바닥 어딘가에서 발견되는 순간을 소름 돋아하던 내가 어싱이라는 신체 활동을 하게 된 계기는 아빠의 죽음 이후일 것이다.


거대한 신체가 한 줌 재로 변하는 과정을 눈으로 목도한 후 삶의 모든 것들이 다르게 느껴졌다. 내가 좋아하고 싫어하던 모든 일들 또한 내가 만들어낸 허상은 아닐까, 난 이런 사람이니 그렇게 살아야 해라는 틀에 나를 끼워 넣고 살고 있는 건 아닌가 자주 반문해 보게 됐다. 삶이 이처럼 허무하게 사라질 수 있는 것인데 바다에 발을 담그는 일이 뭐 그리 대수일까. 매일 바라만 보던 바다에 발을 담가 보는 일은 어쩌면 나에겐 공포이던 바다와 죽음이라는 존재를 마주하는 일이기도 했다. 


어싱은 지구접지, 그라운딩(grounding)이라 고도 불린다. 의미를 더 찾아보니 신체를 지구의 자연 전자장과 연결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한다. 죽음을 가까이 느끼고 나니 그 어느 때보다 살아 있음을 증명받고 싶어졌다.

나의 발을 플로그 삼아 지구의 생명력을 충전받기 너무도 좋은 신체 활동이지 않은가!

모든 생명이 가장 생생할 이른 아침 바다로 나가 모레를 밟고 바닷물에 발을 담가 걸어보는 행동만 으로도 무척이나 많은 감정을 불러일으킨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박사박, 찰방찰방. 모레를 지르밟고 바닷물을 살살 차며 발바닥으로 지구의 기운을 흡수해 본다. (너무 사이비 같은 표현일까? 아무튼 그렇게 생각하고 걸으면 왠지 발바닥이 뜨끈뜨끈 한 기분이랄까..)




그렇게 한참을 걷다 모레에 박힌 엄지 손가락만 한 물고기를 발견했다. 이미 숨을 거둬 흙으로 돌아가려 하는 녀석을 물끄럼히 바라보며 '너는 좋겠다. 지구와 하나가 되어서'라고 속삭여 본다. 불현듯 재가 되어서도 갑갑한 단지 안에 들어가 있는 아빠가 떠올랐다. 옛날 사람들은 죽으면 땅에 묻혀 자연의 일부가 되어 가는데, 요즘은 자연으로 돌아가는 과정도 모두 생략된 채 순식간에 화로에서 재가되어 버린다. 그리고는 작은 단지 안에 담겨 아파트 같은 납골당에 줄지어 보관된다. 그 과정안에 어떠한 자연적 발화도, 지구의 일부로 돌아가는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너무 서글픈 생각이 들었다. 


살아 있음을 증명받는 일도, 죽음을 겸허히 받아들이는 일도 우리는 인위적인 매뉴얼처럼 실행하는구나. 서른이 넘어 마흔이 되고 꽃이 이쁘고, 숲이 좋고, 바다가 좋아지는 그 모든 이유는 결국 자연으로 다시 돌아가야 하는 예행연습을 무의식 중에 행하고 있는 것임을 깨닫게 되었다. 그런 생각이 들고 나니 살아있는 내가 앞으로 해야 할 계획 같은 것들도 떠올랐다. 


'10년 뒤 소담한 땅을 하나 구매해 붉은 벽돌로 집을 지어야지, 널찍한 마당에 건강한 묘목을 여섯 그루 사서 심어야지. 훗날 그 나무 밑에 우리 아빠, 엄마, 시아버지, 시어머니 모시고 자연의 일부로 남겨드려야지. 그리고 그 옆에 우리 낭군과 내가 잠들어 큰 나무로 울창하게 자라야지. 우리 애들의 애들이 나무 밑에 앉아 쉬고 놀다 가게 나무 그늘 되어줘야지'


마흔 중반의 오늘을 사는 나는 지구를 지르밟고 바닷길을 걸으며 지구의 일부로 돌아가는 먼 미래의 계획을 세워본다. 너무 황홀한 계획이라 두근거리기까지 하다. 그러기 위해 오늘을 충실히 살고 나름의 열심을 부려 일도 해야겠다. 나의 몸 지구에 남겨두고 내 영혼은 우주를 유영하는 그날을 위해.



https://youtu.be/fXr3NL1l-60?si=JwpDtKmdoA18DXDD

#어싱할때 성시경의 '태양계'라는 곡을 들으면 정말 우주를 떠도는 기분이 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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