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낑. 엄마 좋아."
아이가 뒤에서 나를 안아준다.
나보다 키가 큰 중학생. 이럴 땐 10년 전쯤으로 순간이동을 한 것 같다.
참 좋다.
그러나 1시간 후.
“아, 됐다고. 알았다고. 한다고.”
아이의 ‘~고’ 시리즈가 ‘오늘의 대화 끝’을 알린다.
지금 이 상황에선 단 한마디도 더 하면 안 된다.
아이 때문이 아니다.
잔소리를 끊을 수 없는 내 입 때문이다.
단 한마디가,
강둑을 터뜨리고 잔소리 폭포가 되어 아이와 나 사이의 땅을 갈라지게 한다는 것을 알게 된 건 삶의 지혜일까.
강산은 10년 만에 변하는데 아이는 2년 만에 딴 사람이 되었다.
키가 20센티미터도 넘게 크고 목소리가 변해도 엄마는 이 아이가 ‘아기’로 보였다.
누군가에게 아이 얘기를 할 때
“우리 애기가요~”
하면 사람들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애기가 몇 살인데요?”
“아, 이제 중학생이에요.”
겸연쩍은 미소를 띠며 그제야 애기를 ‘아이’로 바꾸어 부르곤 했다.
신체가 변하고 마음이 성장하는 아이를 굳이 ‘애기’라 부르며 붙잡고 싶은 것은,
이젠 다시 돌아가지 못할 것 같은,
아이와 내가 함께했던 시간 때문이다.
그때는 정말 몰랐다. 육아의 시간이 이렇게 찰나일 줄은.
오늘이 어제 같고, 한 달 전도 그 이전도 똑같았던 하루가 내일도 비슷할 거란 생각이 들면
왜 그렇게 서럽고 힘들던지.
그렇게 계속될 줄 알았던 시간 속에서 어느 날 눈 떠보니 아이는 훌쩍 자라 있었다.
29번 벤치. 그냥 지나치려다 잠깐 앉아본다.
‘29번이라는 글씨가 많이 지워졌네.’
혼잣말을 하며 10여 년 전 그날들을 떠올려 본다.
아치형 원목 다리에 쓰여 있는 이름 ‘장목교’
“시장할 때 자~앙, 목요일 할 때 모~옥, 학교 할 때 교~오.”
“와! 어떻게 알았어! 세상에! 세상에!”
뽐내듯 서 있는 아기의 웃음소리와 호들갑스러운 젊은 엄마의 목소리가 들리는듯하다.
팔각형 모양의 정자 마루에 신발을 벗고 올라가 본다.
도시락과 그림책 몇 권이 들어있는 가방 옆 돗자리 위에 나뭇가지를 소중하게 쥐고 있는 아기가 잠들어있다.
젊은 엄마는 등을 기대고 파란 하늘과 초록잎들을 본다.
매일 똑같은 날이어서 갑갑하지만 이렇게 바람이 시원한 날은
그런대로 또 괜찮다는 생각을 엄마는 해본다.
한 동안은 잊고 있던 이곳을 처음으로 혼자 왔던 날, 가슴이 텅 빈 것 같았다.
유모차형 자전거에 작은 아기를 태우고
간식이며 책, 비눗방울, 모래놀이도구, 여벌옷 등을 잔뜩 싣고 하릴없이 걷던 엄마와,
짐칸 구석에 자신의 보물 -나뭇가지, 솔방울, 길바닥에서 주운 구슬, 돌멩이 등- 을 소중히 넣은 채,
때로는 그중 하나를 손에 꼭 쥔 채
“엄마, 엄마.”
하며 재잘대던 아기가 함께 했던 그 길을 혼자 왔던 날, 나는 허전했다.
이제는 더 이상 무거운 짐도 없고 언덕길에서 자전거를 밀어줄 일도 없다.
아이는 잘 크고 있다.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 점점 많아지고,
잠자는 시간을 빼면 집보다 밖에 있는 시간이 더 길어졌고,
엄마보다 친구가 더 좋은 건강한 청소년이 되었다.
그런데 엄마는 잘 크지 못했다.
“아직은 너 미성년자야.”
라며 아이를 내 옆에 붙잡아 놓고 싶다.
잘 가고 있는,
조금씩 세상을 넓히고 있는 아이를 내 품에 묶어두고 싶은 생각은 없다.
그런데,
그래도 아쉽고 허전한 마음 위에 떨어지는 눈물까지 참지는 못하겠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아이의 어린 시절을 마음속에 소중히 간직한 채로 커가는 아이의 등을 바라보며,
한 두 발쯤 떨어져 있으면서,
아이가 힘들고 외로울 때 손 내밀면 항상 그 자리에 있는 엄마이고 싶은데.
후회되는 그동안의 시간들처럼,
이 순간의 정답을 아이가 다 큰 후에야 안다 해도
지금은 이 정도가 나의 최선임을 그저 인정할 뿐이다.
아이와 내가 점점 멀어지는 것만 같아 불안하게 지내던 어떤 날,
나의 작은 한숨 소리를 들었는지 아이가 말했다.
“엄마, 안아줘.”
나는, 그 말이
“엄마, 내가 안아줄게.”
로 들렸고 큰 위로를 받았다.
아이와 나 사이에 있는,
보이지 않지만 단단하게 연결된 끈을 느끼며 안심했다.
아이가 걸어간다. 엄마는 엄마로 있어준다.
언제든 아이가 뒤 돌아볼 때 웃으며 손 흔들어 줄 수 있는 엄마의 자리.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참견도 방관도 아닌 엄마의 자리.
아이의 걸음이 엄마에게 가르쳐준 사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