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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욱 Aug 09. 2022

칠레에서 스타트업

제1부: 칠레 워킹홀리데이


“오~그게 잘 될까요? 재밌네요 결과 나오면 알려줘요!”

 

아직 돗자리 장사를 하기 전 일이다.


칠레를 첫 목표시장으로 중남미에서 한국형 배달 서비스를 준비 중이신 스타트업 대표님이 나의 돗자리 장사 계획을 듣고 흥미롭다는 듯이 말씀하셨다.

대표님은 칠레에 법인을 세우고 본격적으로 서비스를 론칭하기 위해 한국과 칠레를 자주 오가셨는데, 칠레에 오시면 보통 내가 묵던 게스트하우스에서 지내셨다. 내가  당시 공기업에서 근무를  때였으니 나는 자연스럽게 대표님과 많은 시간을 같이 보냈다.


평소 스타트업에 관심이 많던 나는 대표님과 같이 출퇴근을 하며 회사스타트업 생태계에 대해 이것저것 여쭤보았다. 대표님과의 대화는 언제나 유쾌했고 흥미로웠다. 게스트 하우스에서 같이  마시는 날이면 대화의 마무리는언제 한번 같이 일하자였다.  당시에는  이야기가 스쳐 지나가는 장난이   알았다.


대표님의 출장 기간이 끝나고 대표님은 한국으로 돌아가시고 나는 돗자리 장사를 시작했다. 결과가  괜찮게 나왔기 때문에    , 대표님께 안부 연락과 동시에 이제까지 모았던 데이터를 정리해서 공유드렸다.

그 당시 만들었던 자료 일부


‘정말 하실지 몰랐다. 대단하네요. 결과도 매우 좋게 나왔네요’라며 축하해주시며, 데이터에 대해 궁금하신 것들을 물어보셨다. 그리고 몇 주 뒤 한국시간으로 이른 아침 대표님께 연락이 왔다.


간단한 안부를 주고받고 대표님이 조심스럽게 운을 떼며 나를 부르셨다.


"현욱 씨, 혹시 현욱 씨만 괜찮다면 칠레 필드 플레이어로 같이 일 하는 거 어때요?”


우리는 이제 서비스 론칭만 앞두고 있고, 준비는 다 된 상태라, 칠레에서 필드 플레이어로 뛸 인재가 필요하다’며 ‘현욱 씨가 들어와서 같이 일하면 너무 좋을 것 같다’고 말씀하셨다. 이미 팀 이사님들한테는 미리 나에 대해 말을 해 놓은 상태라고.


당연히 평소에도 스타트업에 관심이 많던 나이기에 바로 ‘하겠다 답하고 싶었지만 팀원 격인 필드 플레이어로 일하게 되면 조건이 짧게는 3, 길게는  이상 중남미에 있어야 한다는 말씀에 고민이 되었다. 갑작스러운 대표님의 제안에 어안이 벙벙해진 나는너무 감사하지만 제가 생각할 시간이 필요할  같습니다라고 정중하게 말씀드렸다.


당연히 나의 사정을 아는 대표님은 천천히 생각해보라며 기업 IR자료와 사업계획서, 그리고 회사 자료들을 보내주셨다. 전화를 끊고 나서 노트북에 회사 자료를 띄워놓은  진지하게 고민을 해보았다. 워킹홀리데이를   어느덧 반년이 지난 상태고,  번째 일자리도 어느덧 마무리가 되어가던 시기였다. 일을 하게 되면 학교는 휴학을  해야 하고 일이 바빠진다면 2 이상 휴학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학교는 포기해야  것이다.


학교가 걸린 일이기 때문에 섣불리 결정할 수가 없었다. 실제로 반년 동안 칠레에 있으면서 다른 회사에서도 일할 기회가 있었지만 3년은 일해야 하는 조건 때문에 포기한 곳도 꽤 있었다. 하지만 이 회사는 달랐다. 대표님을 만나 사업 설명을 들을 때도 흥미로웠고 중남미에 꼭 필요한 비즈니스라고 생각했다. 시장의 문제점에 공감하고 대표님과 나누었던 비전에 공감했기 때문에 욕심이 났다.


도저히 나 혼자 결론을 내릴 수 없다고 판단해서 주변 사람들에게 나의 고민을 털어놓았다. 하지만 역시 주변 사람들 의견도 분분했다.‘그런 기회는 한국에서도 있을 것이다. 한국에서 대학교 졸업장은 크다.’라는 반대 의견과 ‘좋은 기회고 하고 싶다면 하는 것이 맞다. 하고 나서 후회해도 늦지 않는다’로 의견이 갈렸다. 결국 선택은 내 몫이었다.


결론적으로 나는 스타트업을 선택했다. 사실 전화를 끊으면서 이미 선택했을지도 모른다. 말로는 동일선상에 놓고 비교하고 있는 것 같았지만, 나 역시 ‘하고 나서 후회해도 안 늦는다’ 쪽이었기 때문에 내 마음이 스타트업 쪽으로 기울어졌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반대의견이 말하는 최악의 상황에 대비해 부모님을 설득할 방법을 고민했다.


마음에 결단이 서자 부모님께 연락을 드리고, 스타트업에서 일을 하고 싶다고 말씀드렸다.


‘어머니 아버지가 20년 키우시면서 대학을 보내 놓으셨지만 불효자식이 그 대학 졸업장을 못 받을 수도 있다고, 그런데 그 경우는 내가 엄청 잘 될 경우라고, 어차피 잘 먹고 잘 살자고 대학 다니는 건데, 대학 안 나오고 잘 되면 오히려 좋은 것 아니냐’


라는 식의 궤변을 늘어놓았다.


사랑하는 방식이 다른 아버지와 어머니는 반응도 달랐다. 아버지는 언제나 내가 고생하지는 않을까 힘들지는 않을까 걱정하시는 분이었기에 이번에도 고생할 것 이라며 반대하셨다. 어머니는 언제나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다 할 수 있게끔 응원해주시는 분이었기에 이번에도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하셨다. 각자의 사랑 방식이 다르지만 이기는 쪽은 언제나 어머니였다. 내가 청주로 고등학교를 갈 때도, 해병대에 자원입대한다고 할 때도, 칠레 워킹홀리데이를 떠난다고 했을 때에도 언제나 늘 그랬다.


당연히 이번에도 아버지의 뒷목은 어머니가 담당하셨다. 나도 아버지께 ‘1년 안에 만족할 만한 성과가 안 나오거나 일이 생기면 바로 돌아오겠다’고 조건을 달았다. 끝까지 ‘잘해봐라’라는 응원의 말씀은 없으셨지만 아버지는 더 이상 나를 말리지는 않으셨다.


부모님을 설득하고 난 뒤, 나도 내 나름대로의 기준을 세웠다. 1년 안에 내가 나 자신에게 떳떳할 만한 성과를 내지 못한다면 돌아오겠노라고, 갖은 변명을 대며 질질 끌지 않겠노라고.


답을 주겠다고 약속드린 날, 대표님께 전화를 걸었다. 어색한 안부인사가 끝난 후에 대표님께서 조심스럽게 ‘결정을 내리셨냐’고 물어보셨다. 마음의 결정을 내린 나는 더 이상 걱정할 것이 없었다.

이번의 선택으로 또 다른 세상이 열릴 것이라는 기대감과 긴장감만 남아있을 뿐이었다.

 

최대한 흥분된 마음을 억눌렀지만, 차마 다 감출 수 없어 격양된 목소리로 말씀드렸다.

 

“대표님 저 할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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