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부: 칠레 워킹홀리데이
‘Chino!’(중국인!)
빠르게 지나가는 차량 한 대와 함께 갈색 물체가 날아온다.
둔탁한 소리와 함께 맥주병이 내 바로 앞으로 날아와 터진다.
방금 내가 저걸 맞았다면 죽거나, 응급실에 실려갔겠지.
내가 길거리에서 맥주병을 맞을 뻔해야 했던 이유가 뭘까?
이유는 단순하다 내가 동양인 이어서다.
이미 매스컴에도 충분히 많이 나오고 주변 사람들과 인터넷만 뒤져도 수 없이 나오는 일화들을 뒤로하고 내가 굳이 또 좋을 것 없는 인종차별에 대해서 글을 쓰는 이유는 그냥 겪은 '해프닝'만 전달하는 것이 아닌 내 나름의 해결법과 감정들을 공유하고 싶었다.
나는 칠레에 지내면서 정말 다양한 인종차별을 겪었다. 길거리를 걷다가 아무 이유 없이 중국인이라고 욕하던 사람들, 맥주병 테러, 차에서 창문을 내려 손가락 욕을 하던 운전자, 새 똥 테러, 눈 찢으면서 비웃기 등 정말 다양했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많이 하는 인종차별은 ‘중국인’으로 부르거나 ‘니하오’로 나를 부르는 것이다.
저들이 나를 중국인으로 부르는 까닭은 두 가지다. 우리가 외국인을 어느 나라 출신인지 구별 못 하듯이, 저들도 동양인을 중국인과 한국인을 구별하지 못한다. 따라서 칠레에서 상대적으로 인구수가 많은 중국인을 많이 보았을 테고, 자기 경험을 기반으로 이야기하는 경우가 첫 번째 경우다. 보통 이 케이스가 대다수이다.
그래서 아는 ‘동양어’인 니하오로 인사하고 싶어서 말을 거는 것이다. 이런 경우는 나를 부를 때 얼굴에 악의가 없거나,‘Soy Coreano’(나 한국인이야)라고 이야기하면 다시 한국에 대해 아는 것을 나열하기 시작한다.(보통은 Bomba! (핵), Kim Jung eun 등등)
두 번째는 내가 ‘어느 나라 출신이든 상관없이 동양인이면 중국인이다’라는 생각으로 대놓고 인종 차별하는 경우이다. 실제로 내가 칠레에 온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마약을 했는지 눈이 쌀짝 이상한 친구들이 나를‘중국인’으로 부르길래 멋모르고 친절히 가서 ‘Soy Coreano’라고 이야기해주었다.
그랬더니 돌아오는 대답이 가관이었다.
“응 어쩌라고? 난 니가 한국이든, 중국인이든 중요하지 않아.
(눈을 찢으며) 내가 볼 땐 똑같아”
문제는 여기서부터다. 이렇듯 당당한 인종차별주의자들이 섞여 있어서 ‘중국인’으로 불렸을 때마다
화를 낼 것 인지 말 것인지 선택하기가 어렵다는 것.
매번 친절할 수도 없고, 매번 화를 낼 수도 없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이런 인종차별주의자들과 괜한 말다툼을 해서는 위험할 수 있으며 일일이 ‘악의적인’ 인종차별로 받아들이면 본인의 정신건강에 안 좋다는 것이다.
(실제로 인종차별이 너무 힘들어서 남미가 최악이었다고 하는 분과
현지인과 싸웠던 여행자분들도 여럿 만났다.)
결과적으로 나는 숱한 인종차별을 겪으며 친절한 여행자에서, 6개월 만에 현지화가 다 되어버렸다. 조금 씁쓸한 일이지만, 나는 이 모든 상황에서 한국어를 가르칠 자신도, 내가 한국인이라고 말하고 다닐 에너지도 없었다. 그래서 나만의 기준을 세웠다.
1. 길거리에서 ‘니하오’로 불렸을 땐 ‘니하오!’로 대답한다. 곤니찌와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내가 당연히 중국인이라고 생각하고 아는 척하고 싶어 했을 것이고, 나는 그 무지한 선의에 응하기면 된다. 그럼 나야 번거롭게 외국인이 발음하기 어려운 ‘안녕하세요’를 가르칠 일도, 내가 한국인이라고 일일이 설명할 일도 없을 것이다. 실제로 인사에 맞게 대답해주면 엄청 좋아한다. (그들도 자신의 예상이 맞아서 기분 좋고, 나도 쓸데없이 에너지를 쏟을 일 없으니 좋으니 윈윈 아닌가!)
(스몰 토크 정도나 길게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경우는 ‘안녕하세요’를 가르쳐준다.)
2. 중국인으로 불렸을 땐 그 사람 행색에 따라 정정해주기로 했다.
나는 내 목숨이 제일 소중하기 때문에 내가 중국인인지 한국인인지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을 것 같은 자들이라면 그냥 무시하고 재빨리 자리에서 뜬다. 그런데 만약 정상으로 보이는 친구들이 나를 중국인으로 부른다면 나는 한국에서 왔다고 정정해준다.
이런 나만의 원칙이 누군가에겐 정의롭지 못할 수 있다. 누군가는 나 때문에 있을 또 다른 인종차별 피해자들은 생각하지 않느냐고 물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한국에서도 비일비재하게 벌어지는 동남아인과 흑인에 대한 인종차별에 앞장서서 잘못되었다고 말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오히려 나에게만 피해 가지 않는다면 신경 쓰지 않았다. 하지만 칠레에 와서 인종차별을 겪으면서 인종차별에 대해 깊게 생각해보며 내가 현실적으로 실천할 수 있는 행동 양식에 대해 합리적으로 고민해보았다. 그것이 위의 행동 양식이다.
변명으로 들리겠지만 이것이 내 나름의 정신건강과 신체적 안위를 챙기며, 개선 의지가 있는 이들에게‘정정’해주는 것. 그것이 내 건강과 실천을 동시에 할 수 있는 방법이었다.
그렇지만 한국인에 대한 인종차별에만 기민하게 반응하는 선택적 반 인종차별주의자가 되고 싶지는 않았다.
인종차별이 분명 잘 못 된 것임을 느꼈기에 더 이상 한민족 국가가 아닌 다문화 사회로 접어들고 있는 대한민국 사회에서 우리가 혹시 의도하지 않게 ‘인종차별’적인 실수를 하지는 않는지, 글을 쓰면서 나의 사례로 반면교사 삼길 바라면서 이 글을 쓰기로 결심했다.
해외 생활을 하면서 다 똑같은 '중국인' 취급을 받는 인종차별을 겪으니, 반대로 한국에서 우리가 생활을 하면서 지나가는 외국인을 보며 출신을 알기 전에 얼굴이 피부색이 검다고 다 같은 아프리카(심지어 나라도 아닌 대륙) 출신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는지, 동남아 사람들이라고 어느 한 두 나라로 지레짐작하지는 않았는지 나 자신을 돌이켜봤다.
지금 생각해보면 부끄럽지만
나 또한 그 사람은 모르게 속마음으로 '어디 나라'에서 왔다고
지레짐작하는 '짓'을 했던 것 같다.
민족이 다양해지면서 한국 전체 다문화 학생만 3%가 넘어섰고, 서울의 모 중학교는 10명 중 4명이 다문화 가정이라고 한다. 그 이야기는 더 나아가서 외모만 보고 ‘출신’을 묻는 행위 자체도 누군가에겐 상처를 줄 수 있는 행위가 되고 있다는 소리다.
이렇듯 변해가는 사회에서 우리의 마음가짐 또한 '한 민족'이라는 구시대적 슬로건에서 벗어나
이제는 '다문화'를 생각할 때가 되지 않았나 싶다. 그런 의미에서 이 글은, 못난 짓을 당한 내가 못난 짓을 했던 나에게 쓰는 글이기도 하다.
혹시라도 나처럼 외모만 보고 그 사람의 출신을 판단하는 '짓'을 했다면 이제는 추측은 할 지라도 그 추측의 범위가 한 두나라가 아니기를, 하나의 대륙이 아니기를,
그리고 그 선택지에 다양한 국가가 있기를 바라본다.
그것이 동양인이 중국인이든, 한국인이든, 혹은 칠레에서 태어난 한국 출신 칠레인이든
중요하지 않는 저 인종차별주의자들과 우리가 다른 이유이니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