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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욱 Aug 01. 2022

두 번째 직장: "여기 대빵이 누구라고?"

제1부: 칠레 워킹홀리데이

어느덧 시간이 흘러 공기업 계약이 끝났다. 돈을 잃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모을 수는 없었다. 한 달 110만 원이라는 돈은 50만 원의 월세와 60만 원의 생활비를 제외하면 가져온 돈을 쓰지도, 벌지도 않고 딱 유지할 수 있는 돈이었다. 이직을 따로 준비하고 있었던 것이 아니기 때문에 계약이 끝남과 동시에 완전 백수 상태가 되었다. 할 일 이 없으니 쓸데없이 집 주변 공원도 걷기도 하고, 산티아고 근교 여행도 다녀오고, 해리포터 시리즈도 보고, 미생 드라마 정주행도 하며 3주라는 시간을 흘려보냈다. 한 달이 다 되어가자 슬슬 조급해지기 시작했다. 이러다간 여행은커녕 나도 얼마 안가 한국으로 돌아가야 할 판이었다.


줄어드는 통장 잔액을 보며 초조해하는 찰나, 공기업에서 일하면서 통역으로 오셨던 교민 한분께서 혹시 일자리를 구하고 있는지 물어보셨다. 추천해주신 일자리는 3개월짜리 한인 가게 캐셔로 한인 사장님께서 운영하시는 도소매 가게에서 일하는 것이었다. 나는 처음에는 워킹홀리데이를 오면서 했던 다짐 때문에 거절하려 했다.

 

“워홀러들끼리만 어울리지 않기, 한식당이나, 한인 가게에서 한국어 쓰며 일하지 않기”


추천해주신 일은 떠나기 전 했던 두 가지의 다짐 중 ‘한인 가게에서 한국어 쓰며 일하지 않기’에 저촉됐다. 그래서 제안은 감사하지만 “스페인어도 안 쓰면서 일하고 싶지 않다.”라고 정중하게 거절 의사를 전달드렸는데. 일을 하게 되면 현지 직원 세명과 같이 일하면서 미니 Jefe(대표)로 가게 하나를 맡아서 총괄하는 업무라 월급도 170만 원 정도고 오히려 스페인어만 쓰게 될 것이라고 말씀해 주셨다. 그 이야기를 들으니 사장님이 한국 분이셔서 오히려 임금체불당할 걱정도 없고, 일할 땐 스페인만 사용해야 하니 너무 좋은 기회라고 판단되어서 하기로 결심했다.


지인분께 사장님의 연락처를 넘겨받고 가게에 가서 인사드린 후에 두 번째 취직을 하게 되었다. 두 번째 직장은 내가 일했던 공기업과 반대편에 위치해 있었다. 위치만큼이나 컨디션, 하는 일 또한 사뭇 대조적이었다. 전의 직장의 위치가 여의도였다면 이번 직장은 동대문이다. 동대문에 있는 옷가게처럼, 산티아고의 가장 큰 시장인 Estacion central(중앙역)이라는 곳에 위치한 도소매 가게에서 캐셔를 보며 현지 친구들과 함께 물건을 파는 것이 우리들의 임무였다.

나의 일은 간단했다. 물건을 도매나 소매로 구매를 원하는 손님이 오면, 가격을 안내해주고 직원들이 손님의 요청에 따라 물건을 나에게 건네준다. 그 후에 나는 수량을 체크하고 직원들이 계산한 1차 가격을 확인하고 손님이 치러야 할 값을 계산을 해주고 현금영수증/영수증과 함께 물건을 내어주는 것이었다. 한가할 때는 별 문제없지만, 주말이나 손님이 몰리는 시간대엔 현금으로 계산하는 시장 특성과 위조지폐가 상상 이상으로 많은 남미이기에 정신을 항상 차리고 있어야 했고, 물건이 더 많게, 적게 들어갈 수 있으니 친구들과 합이 정말 중요했다.


시장에 첫 출근을 하니, 도미니카 공화국 출신의 흑인 청년 윌슨, 칠레 출신의 50대 아주머니 마리아. 베네수엘라 출신의 대학생 실비아가 있었다. 사장님은 직원들에게 나를 ‘Señor Jang’이라고 소개하며 직원들에게 앞으로 꼭 세뇨르(신사)를 붙여서 나를 부를 것을 강조하셨다.


세뇨르는 스페인어권 나라에서 원래 결혼을 한 남성에게 붙이는 호칭이지만, 사회적으로 지위가 있거나 자신보다 높은 사람에게 부를 때 많이 쓰는 호칭이다. 따라서 24살인 나에게 세뇨르라고 부르라고 하신 것은 사장님이 평소에 다른 가게에 계시기 때문에 내가 사장님의 역할을 대신해야 하니 24살에게‘세뇨르’라는 호칭을 붙이시면서 나에게 통제권을 쥐어 주신 것이다.


문제는 이 호칭 때문에 직원들과 사이가 애매해지기 시작했다. 우리나라는‘현욱님’, ‘현욱 씨’등 서로 존칭으로 부르는 한국 사내 문화가 있지만, 칠레에선 직장 동료는 그냥 ‘현욱’이다. 그런데 24살짜리(심지어 결혼도 안 한)에게 ‘현욱님’으로 부르라고 하니, 현지 친구들이 적잖이 당황해했다.


그렇게‘세뇨르 장’이라는 어색한 호칭과 함께 우리들의 어색한 근무가 시작됐다.


직원들은 저마다 다른 반응을 보였다. 윌슨은 첫째 날부터 나에게 이것저것 물어보며 나와 한국에 대해 궁금해했고, 금방 친해져 나중엔 세뇨르 장 대신‘미스타 장’으로 나를 불렀다. 단기로 일하는 베네수엘라 출신 실비아는 쿨한 친구였다. 그냥 양(베네수엘라에서 J는 Y발음이다)으로 불렀다.


칠레 아줌마 마리아는 부르는 걸 포기하고 나를 대놓고 무시하기 시작했다. 가게에서 8년 넘게 일한 마리아는 배테랑이었고, 단골손님들과도 친했으며 실질적인 가게의 실세였다. 따라서 사장님과 오랜 시간 같이 일을 했기 때문에 사장님의 말을 거역 하기엔 애매했던 것 같다. 그래서 마리아는 나를 부르는 걸 포기했다. 나도 50대 아주머니에게 ‘세뇨르’라고 듣거나 대접받고 싶지도 않았지만, 대놓고 이름을 안 부르고 종이만 휙 던지고 가버리고 나와 이야기도 일절 하지 않는 모습에 조금 얄밉기 시작했다.


며칠간 마리아와 보이지 않는 기싸움을 통해 점점 스트레스를 받았다. 마리아는 계산 실수를 해도 인정하지 않았고, 내가 물어봐도 귀담아듣지 않았다. 사장님이 오시면 그제야 ‘세뇨르라고 부르며 말을 거는 마리아의 모습에 가끔 기가 차기도 했다. 어떻게 하면 마리아와 친해질  있을까 고민하다가 마리아와 윌슨, 실비아가 간식을 자주  먹는 것이 생각이 났다.


마리아와 윌슨, 실비아는 손님이 없을 땐 밖에서 파는 인스턴트커피와 길거리 음식을 자주 사 먹었는데, 손님이 몰리면 정신이 없고 몸이 고된 탓에 잠깐의 짬을 내서 마시는 커피와 간식이 그들에겐 소소한 행복이었다. 인스턴트커피와 군것질을 안 좋아하는 나지만, 나도 그들과 같이 고생하는 사람인데 같은 ‘식구’로 생각하게끔 하려면 그 소소한 시간에 같이 껴서 즐겨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집에서 미리 마트에서 장을 봐서 간식을 준비했다.


다음날 준비해 간 도넛을 나눠주며 마리아에게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마리아 또한 갑자기 친한척하는 나의 모습에 당황해하며 애매한 표정과 함께 잘 먹겠다며 인사를 보냈다. 그다음부터는 나도 얄밉게 보던 시선을 조금 내려놓고 일부러 더 친한 척을 하기 시작했다. 커피도 같이 마시고, 간식도 함께 먹으며 조금씩 조금씩 친해지려 노력했다. 이런 노력을 거쳐서 한 달쯤 되자 아침인사도 안 해주던 마리아가 어느 날 출근하며 ‘Buenos dias  Señor Jang’이라며 인사해주었다.

나와 기싸움을 벌였던 마리아 아줌마

그 순간, 묵혀있던 스트레스가 싸악 내려가는 듯한 기분을 받았다. 마리아가 마음을 열어준 순간이 새 직장을 일하면서 가장 기분 좋은 순간이었다. 마리아까지 친해지고 나니 우리 네 명은 조금 더 끈끈한 전우애가 생기기 시작했다. 간식도 같이 나누어 먹고, 누군가 실수하면 웃으면서 넘어갔다. 내가 스페인어를 몰라 잘 못 알아듣거나 어쩔 줄 몰라하고 있으면 마리아나 윌슨 실비아가 도와주었다. 일하면서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들을 세명의 현지 친구들이 도와주며 나의 스페인어 실력은 점점 더 늘어갔고 업무도 점차 적응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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