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부: 칠레 워킹홀리데이
워킹홀리데이를 갔다 오면 모두가 비약적으로 실력이 느는 것이 한 가지 있다고 한다. 그게 언어면 좋으련만 모두들 공통적으로 말하는 건 바로 ‘요리’다.
여행을 하면서 어떤 나라 워홀러를 만나든 워킹홀리데이를 통해 요리 실력이 가장 많이 늘었다고 말했다.
나 또한 마찬가지다. 고등학교 때부터 집에서 나와 자취생활을 오래 했지만, 내가 요리를 직접 해 먹었던 건 손에 꼽는다. 보통은 사 먹거나 자취생 정식으로 불리는 스팸, 김치, 계란 간장밥, 이 정도가 내 요리의 전부였다. 하지만 칠레 워킹홀리데이를 하면서 정말 많은 요리를 시도하고 만들어 먹었다.
칠레는 외식물가는 비싸지만 식재료는 싸기 때문에 요리하기에 매우 좋은 환경이기도 했다.
출근을 하기 시작하면서 요리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가 되었다. 우리 회사 직원분들은 모두 점심 도시락을 싸오셨고, 나 또한 매번 혼자 밖에서 사 먹을 수 없는 노릇이니 자연스럽게 도시락을 싸게 되었다. 처음엔 퇴근하고 집에 도착하면 8시가 다 되었기에 밖에서 파는 페루식 볶음밥을 사서 반은 저녁으로 먹고 나머지 반은 도시락으로 해결했는데 계속 먹자니 물리기도 했고 가격도 어느 정도 있는 편이어서 계속 그렇게 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백종원 님의 유튜브 채널과 인터넷을 보고 따라 하기 쉬운 요리부터 시도했다. 처음에는 8시에 도착해서 밥을 먹고 도시락을 싸면 어느덧 10시가 다 돼서, 씻고 일기 쓰고 누우면 하루가 다 가 있었다. 하지만 하면 할 수 록 손이 빨라지고 적응됐고 마구잡이로 샀던 재료들도, 나름 식단표를 짜서 장을 보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나는 다양한 메뉴를 시도했고 점차 자신감이 붙었다.
얼마나 자신감이 붙었는지, 한국에서 보낸 물건들이 제 때 도착하지 않아 팔 물건이 없자, 주말에 기영이 형과 함께 굿즈 대신 한국 음식을 만들어 팔기로 했다. 인스타그램 계정으로 배송 문제로 이번엔 굿즈를 팔지 못할 것 같다고 친구들에게 공지를 하고, 대신 김밥과 김치전, 그리고 코코팜 음료를 같이 팔 예정이라고 했다. 칠레에도 한식당이 많지만, 한국인의 ‘진짜 김밥’과 ‘진짜 김치전’을 맛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될 것이라 홍보하고, 가격도 한식당보다 훨씬 저렴하게 책정했다. 김밥 종류는 돼지고기 김밥과 참치김밥으로, 아침 일찍 한인 마트에 가서 식재료를 구매했다. 만드는 과정을 모두 인스타그램 스토리로 올려서 실시간으로 올려서 최대한 위생에 신경 써서 만들고 있는 모습을 공유했다.
그런데 여기서도 만드는 과정에 문제가 생겼다. 첫 번째로 우리는 김밥을 싸 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통 단무지를 사서 일일이 잘랐는데 이게 여간 손이 가는 게 아니었다. 또 재료 손질하는 속도도 느렸다. 두 번째로 우리나라를 제외하고 찰기가 있는 쌀을 쓰는 나라가 몇 안 된다는 사실을 간과했다. 칠레는 날리는 기다란 쌀을 먹는 나라였기 때문에, 칠레 쌀로 김밥을 말았더니 말자마자 ‘푸다닥’ 소리와 함께 해체되었다.
우리는 이렇게 실패의 문턱에서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게스트하우스 사장님께 연락드렸다.
다행히도 그 소식을 들은 게스트하우스 사장님께서 남아있던 한국 쌀을 주셨다. 덕분에 감사히 김밥 약 50줄과 김치전 50장을 만들 수 있었다. 이런 우여곡절 끝에 우리는 판매시간으로 공지했던 12시를 훌쩍 넘어 3시가 다 돼서야 준비를 마칠 수 있었다.
공원으로 서둘러 도착해서 친구들이 맡아 놓아 준 자리에 우리만의 ‘부스’를 차렸다.
반응은 어느 때보다 대박이었다. 10분도 안되어서 김밥 50줄과 김치전 50장이 ‘완판’되었다. 맛있다고 소문이 났는지, 어떤 친구들은 우리를 찾아와서 남은 건 없는지, 또 언제 파는지 물어보았다. 우리는 9시부터 오후 3시까지 약 6시간 동안 만든 음식을 10분 만에 팔아치우고 집으로 복귀했다.
결과는 어땠을까? 아이러니하게도 적자였다. 패착의 원인은 ‘코코 X’이었다. 우리는 음식에서 마진을 빼고 음료로 마진을 남기려고 했는데, 세트 상품으로 팔지 않아서 인지 모두들 김치전과 김밥만 구매했다. 한인마트에 가서 흔히 살 수 있는, 심지어 우리 부스 얼마 지나지 않아 다른 친구에게 더 시원하게, 더 싸게 살 수 있는 코코팜은 그들에게 매력적인 상품이 아니었다.
기영이 형과 대박 신화를 꿈꾸고 파티를 즐기고자 다짐했는데 본전도 못 뽑았다. 남겨진 코코팜을 안주로 삼아, 우리는 씁쓸한 소주를 마셨다.
나는 이 사건 이후로 내 인생에서 요식업은 없는 걸로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