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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욱 Jul 24. 2022

나는 K-pop 아이돌

제1부: 칠레 워킹홀리데이

워킹홀리데이 협정국들 중, 선진국들 말고 하필 칠레를 선택한 또 다른 이유는 워킹홀리데이라는 기간 동안 내가 상대적으로 ‘기회의 땅’인 칠레에서 주체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있지 않을까 생각해서다.


그래서 떠나기 전 학교 친구를 통해 칠레에서 살다 온 교민 출신 동생을 소개받아 칠레에 대한 이야기를 물어보았다. 동생은 한국인이 칠레에서 잘하고 있거나, 유명한 것은 섬유 의류 산업, 치킨, 케이팝이라고 말해주었다. 나는 그 이야기를 듣고 섬유, 의류시장은 이미 중국 자본이 들어와 포화 상태고 내가 치킨집을 차릴 수 없는 노릇이니, 나는 그나마 친구들 중 아이돌 활동을 하던 친구들이 있는 덕분에 케이팝으로 ‘무엇인가’ 해보자 결심했다.


칠레에 와서 직장과 집이 안정되자 나는 즉시 실행에 옮겼다. 주말에 현지 친구들의 도움을 받아 칠레 수도 산티아고에서 K-pop의 성지라고 불리는 San Borja 공원을 찾아갔다. 공원 초입에 들어서는 순간 여기저기서 한국 아이돌 노래가 들려왔고 길게 펼쳐져 있는 K-pop 굿즈 플리마켓이 보였다.

단체로 K-pop을 들으멸 춤을 추는 칠레 친구들
공원 전체가 칠레 K-pop 굿즈를 파는 벼룩 시장

이른바 'K-pop 공원'은 내가 예상했던 규모보다 더 컸다.

축구장보다 큰 공원이 한편에선 아이돌 굿즈 플리마켓이,

한편엔 K-pop춤을 추는 곳으로 되어있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K-pop팬들의 성지에 동양인이 온 걸 알아차린 팬들이 하나둘씩 다가오기 시작했고, “혹시 한국 사람이야?”라고 질문했다.


내가 “맞다”라고 대답하자 팬들이 갑자기 소리를 지르며 사진을 찍어 달라고 했고 그 광경을 보던 다른 팬들도 모이면서 나는 순식간에 수많은 인파에 둘러 쌓였다. 나는 칠레 케이팝 팬들에게 사진을 찍어주며, 스페인어로 정말 많은 질문을 받으면서 순간 게릴라 인터뷰를 하는 아이돌이 된 듯 한 기분을 받았다.


(이 사건이 칠레 케이팝 팬들에게 꽤 큰 사건이었는지 그들이 커뮤니티로 이용하는 팔로워가 몇십만이 넘는 인스타그램 공식 계정에 내 이야기가 올라올 정도였다.)


어쩔 수 없이 인파들과 함께 공원을 구경하던 중, 나는 플리마켓 물건이 다 조잡하게 집에서 프린트하거나 짝퉁 굿즈가 많다는 걸 알아차렸다. 또 몇 개 안 되는 공식 굿즈는 터무니없이 비싼 가격이 판매되는 걸 보고 가능성을 보았다. 한국은 굿즈를 구입하기 쉬웠고, 중고 물품이나, 대량으로 구입하면 가격을 낮춰서 가져올 수 있었다. 나는 그날 숙소로 돌아가서 한국에 있는 친구의 도움을 받아 물품들을 사서 칠레로 보냈다.



그리고 약 2주가 흘러, 기영이 형과 함께 케이팝 굿즈가 담긴 박스 두 개를 들고

다시 한번 San Borja 공원에 찾아갔다.


우리는 또다시 케이팝 팬들에게 둘러 쌓였다. 돗자리도 없이 박스만 들고 가서, 내려놓을 만한 잔디밭을 찾아 걸어가는데 박스를 내리기도 전에 안에 들어 있는 정품 굿즈를 본 팬들이 너도 나도 사겠다고 했다. 당연히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저렴한 가격에 정품 굿즈를 처음 본 팬들은 너도 나도 구입했고, 나는 1시간도 안되어서 박스 안에 있는 물건을 다 팔고 약 120만 원의 돈을 벌었다.

우리는 그날 숙소로 돌아와 소소한 파티를 즐겼다.

첫 장사는 성공적으로 끝났지만, 이렇게 매번 장사가 잘 된 건 아니었다. 장사를 계속하자 생각보다 안 팔리는 아이돌들의 굿즈들이 쌓이기 시작했다. 분명 공원에 가면 ‘이 아이돌 굿즈를 가져와달라’고 부탁하는 팬들이 많았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팔아보니 실제로 구매까지 이어지지 않는 아이돌 굿즈가 있었다. 즉, 이제까지 데이터도 없이 순전히 ‘감’으로 물건을 가져왔던 것이다.


나는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서 인스타그램으로 비즈니스 계정을 만들어서 팬들에게 팔로잉을 요청했다. 인스타그램을 게시글을 통해 어떤 굿즈를 올렸을 때 반응이 좋은지 살피고, 원하는 굿즈가 있으면 DM으로 주문을 받았다.


그리고 두 번째로 이벤트를 준비했다. 굿즈를 구매하는 팬들과, 공원에 있는 케이팝 팬들에게 종이와 펜을 나누어 주고 나이, 성별, 연락처, 좋아하는 그룹을 적어서 박스에 넣어 달라고 했다. 그리고 그다음 주에 인스타 라이브(실시간 방송)로 무작위 6명을 뽑아 BTS 앨범을 선물해주겠다고 말했다. BTS인기 덕분에 짧은 시간 동안 약 150명의 팬들이 참여해주었고 나는 쪽지를 성별, 나이별, 그룹별 등으로 엑셀 파일 안에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랬더니 실제로 어떤 아이돌이 인기가 많은지, 내 주 소비자층은 누구인지, 어떤 그룹을 선호하는지 데이터로 보이기 시작했다.


이벤트는 실제로 150명 참여했지만 인스타 라이브는 약 200명의 팬들이 함께했다. 덕분에 내 칠레 비즈니스 계정도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고 팔로워도 덩달아 올라갔다. 데이터를 통해 실제 소비가 있는 그룹의 굿즈를 더 많이 가져오고, 인기가 많을 것이라 착각했던 그룹의 굿즈는 물량을 줄였다.

데이터를 기반으로 장사를 하기 시작하니 장사가 수월해졌다.


 그 뒤로 나는 평일에는 일, 주말에는 돗자리 장사를 병행하며 조금더 수월하게 돈을 모으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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