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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욱 Jul 20. 2022

칠레에서 살아남기

칠레 워킹홀리데이

어디가 앞인지 보이지도 않는 줄


새벽 4시 30분. 나는 그래피티가 가득한 경찰청 건물 앞에 줄을 서있다.

그것도 내 앞에 수백명은 더 있는 줄을 앞으로 하고서.


워홀러가 입국해서 해야 할 중요한 과제는 ‘신분증 신청하기, 집 구하기, 일 구하기’다.

여기서  가장 시급한 건 신분증 신청이다. 입국한지 한달 이내에 입국 신고를 하지 않으면 벌금을 내야한다.


 그런데 내가 새벽 4시에 온 까닭은 이렇다. 남미에서 잘 사는 편인 칠레는 여러 인근 국가들로부터 이민자들을 받고 있다. 그 덕분에 칠레 공공기관은 상상이상으로 언제나 사람들이 미어 터지고, 칠레 공공기관은

답답할 정도로 천천히 그리고 비효율적으로 일한다.


해외에서 체류를 해본 분들이라면 공감하겠지만, 공공기관이 한국처럼 일처리가 빠른 곳은 매우 드물다.

칠레 경찰청 문은 8시 30분부터 열리지만 업무 마감은 12시부터 하므로 문 열릴 때 줄을 서면

당연히 들어갈 수 없다. 때문에 돈 많은 외국인들을 위해 줄 대신 서주기 아르바이트도 있고,

오랜 시간 기다리는 사람을 위해 의자를 빌려주는 사람도 있다.

도착해서 보니 맨 앞 줄은 콘크리트 바닥에서 자고 있는 걸로 보아 밤을 새서 줄을 선 듯 하다.

새벽 일찍 왔지만 막상 건물을 둘러싸고 몇 바퀴 둘러져 있는 줄을 보고 오늘 신청 할 수 있을 지 걱정됐다.

오늘 못하면 다른 날 와서 이‘짓’을 또 해야 한다는 사실이 끔찍했다.

앞으로 4시간을 더 기다려야 해서 미리 준비해온 스페인어 단어책을 폈는데 당연히 머리에 안 들어왔다. 앞을 스윽 훑었는데 앞에 있는 친구도 혼자와서 심심해 하는 것 같았고 먼저 말을 걸고 친구가 되었다. 브라질에서 이민와서 우버(택시) 기사를 하고 있던 친구의 이야기를 듣다 친해졌다. 친구가 생활하다 힘든 일이 있으면 자기가 도와주겠다고 해서 연락처도 교환했다.

8시 30분이 되자 우리까지는 다행이 들어갈 수 있었고 12시 전에 업무를 봤다. 경찰청 신고를 마치고 다음날, 시청에 가서 신분증 신청을 위해 한 번 더 ‘신분증 오픈런’을 반복하고 나는 신분증 신청을 끝냈다.


힘겹게 받은 신분증, 진짜 몰골이 말이 아니다.


이제 마지막 남은 해결 과제는 집 구하기다. 언제까지 게스트 하우스에서 지낼 수 없었고,

지금 일하고 있는 직장과 게스트하우스가 멀리 떨어져 있어 나는 매일 새벽 6시 30분 지하철을 타야 했다.


참고로 칠레 산티아고는 세계에서 집 값이 비싸기로 유명한 도시 중 하나이다. 따라서 남미라고 집 값이 쌀 것이라 기대하면 오산이다. 당연히 한국형 원룸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고, 아파트 형식의 집 들만이 존재한다. 그 집값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에 나는 당연히 쉐어하우스를 선택했다. 하지만 여러명이서 생활하는 쉐어하우스임에도 불구하고, 산티아고의 쉐어하우스 평균 월세는

25만 peso(한화로 약 45만원, 2018년 당시)정도 한다.

 

학생들이나 나같은 외국인들은 보통 페이스북 그룹을 통해서 집을 구하는데, 집 주인들은 그룹을 통해 자신을 소개하고, 자신이 원하는 룸메이트 조건을 올려 놓는다. 그러면 나와 같은 사람들은 집 컨디션과 조건을 확인하고 연락을 한다.


내가 출근하는 회사는 산티아고 업무 중심지인 Manquehue에 위치해 있다.

한국 서울로 치면 산티아고의 여의도나 강남으로, 월세 또한 산티아고에서 가장 비싸다.

따라서 쉐어하우스라도 월세를 감당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나마 최대한 가까이 있는 매물들을 확인했다.

싸고 좋은 조건의 집들은 올라오자마자 바로 나가므로, 처음에 여유롭게 확인하다가 몇몇 좋은 조건의 집 들을 놓쳤다. 그 후 며칠을 알람을 설정하고 주기적으로 매물을 확인한 끝에 맘에 드는 집을 예약할 수 있었다. 회사에 휴가를 쓰고, 하루 날을 잡아 Tobalaba역 근처에 올라온 칠레 친구 집을 방문하기로 했다.



Whatsapp(해외 채팅앱)으로 약속을 잡고 약속 당일, 혹시 몰라 칠레에서 만난 워홀러 기영이형에게 같이 가달라고 부탁드렸다. 도착하고 보니 멀끔하고 잘생긴 친구가 나왔다.

집은 전반적으로 매우 깔끔했고 관리도 잘 되어 보였다.


내가 쓸 예정이었던 방은 침대 하나가 들어가면 꽉 차는 공간이었지만 어차피 잠만 잘 것이기 때문에 만족했고 인상이 너무 좋아보이던 룸메이트 곤잘로를 보고 더 고민 하지 않고 그 집으로 선택했다.

휴,,어찌저찌 칠레에 온지 한 달만에 당장 해야 할 모든 일을 다 끝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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