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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욱 Jul 16. 2022

알 이즈 웰

제1부: 칠레워킹홀리데이


중학교 때 영화에 한창 빠진 적이 있었다. 하루에 한 편은 꼭 영화를 보곤 했고, 방학 때는 세네 편은 보고 나서야 잠에 들었다. 그 무렵 보았던 영화들 중에 ‘세 얼간이’라는 인도영화를 매우 재밌게 본 기억이 난다.


영화 내용은 세 청년이 자신들의 꿈을 찾아가면서 역경을 헤쳐 나가는 내용인데, 역경이 있을 때마다 인도 특유의 노래와 함께 “알 이즈 웰”이라는 마법과 같은 대사가 나온다. 영화의 메시지는 단순하다.


부정적으로 생각 말고, ‘모든 게 잘 될 거야’라고 생각하라는 것.



물론 이런 낙관주의는 실질적인 문제 해결에 직접적인 도움은 주지 않는다. 비관주의자 입장에선 대책 없는 낙관주의가 어쩌면 한심해 보일 수 있지만, 낙관주의 장점은 그래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힘을 지니고 있는 것, 그리고 이러한 믿음으로 사회를 변화시켜왔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그런 의미에서 한심한 낙관주의자라도 그쪽에 속하려 하는 편이다.

마음의 고향 까사 아르볼 게스트하우스


“왜 왔어요, 돌아가요”


길고 긴 이동을 마치고 이제 막 도착한 한인 게스트 하우스에선 나보다 몇 개월 일찍 온 워홀러 한 분을 만날 수 있었다. 짤막한 인사와 함께 그분은 나에게 ‘늦지 않았다’며 돌아가라고 했다.


“왜 돌아가요?”


“여기는 스페인어 못하면 직업도 못 구하고, 구한다 한들, 시급이 낮기 때문에 돈만 쓰다 가요. 또 스페인어 사용하는 나라 중에 가장 사투리가 심해서 스페인어 배우기에도 안 좋아요”


그분은 자신도 칠레 워킹홀리데이가 현실과 많이 달라 멕시코로 스페인어를 배우러 떠나려고 준비 중이라고 했다. 짧은 대화를 마치고 블로그에서 보고 미리 연락을 드려 정보를 얻고자 같은 날 찾아간 다른 워홀러 분에게서도 돌아온 반응은 같았다. 모두들 하나같이 칠레는 시급이 3,000원인데 물가는 한국과 비슷하고 치안은 나쁘고 일자리는 없기 때문에 돈만 쓰게 된다고 한다.


“돌아가라고?”


힘든 건 예상하고 왔는데 힘든 걸 넘어서서 이렇게 절망적 일지는 몰랐다. 돈이라도 좀 모아서 여행을 하고 싶었는데, 다들 일자리를 못 구하거나, 구해도 한국보다 비싼 셰어하우스의 월세와 생활비에 쫓겨 결국 한국에서 가져온 돈을 써야 한다는 사실이 착잡했다. 아파트의 방 한 칸을 공유하는 셰어하우스가 그 당시 약 45만 원 정도의 월세였으니, 운이 좋게 일을 구한다 해도 한 달 풀타임으로 근무하고도 생활비를 제외하면 나는 일만 하다가 돌아가야 할 판국이었다.

즉, 나는 일을 구해서 돈을 적게 쓰다가 돌아갈 것 인지, 일을 처음부터 하지 말고 비자에 구애받지 않고 편하게 관광할 것인지 선택해야 하는 것이었다.


한국에선 돈을 모아서 여행하거나, 돈을 모아서 오는 ‘호주 워킹홀리데이’가 유명하기 때문에 보통 워킹홀리데이를 가면 돈을 모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워킹홀리데이 체결 이유 중 하나는 시급이 비싼 나라는 타국으로부터 상대적으로 값싼 노동력을 제공받고, 시급이 싼 나라는 관광객과 비자 해결을 통해 내수 경제를 활성화할 수 있는 윈윈 하는 정책이다. 이런 워킹홀리데이 메커니즘에 따르면 한국보다 시급이 싼 칠레에서는 한국 워홀러들은 ‘일’보단 ‘관광’하는 것이 당연한 섭리이다. 따라서 나 또한 돈을 모아서 여행하기보다 모아 온 돈을 쓰면서 ‘관광’하는 워홀러가 되어야 했다.

나는 깊은 고민에 빠졌다. 일단 하고 나면 ‘모든 게 잘 될 거야’라고 생각하는 엄청난 낙관론자인 나의 근거 없는 자신감 때문에 결국 나를 이런 답이 없는 상황으로 몰아넣은 것인가 싶었다. 선배 워홀러들의 절망적인 이야기를 곱씹으며 게스트 하우스까지 돌아오는 길 건물 벽면엔, 알록달록 정신없는 그라피티가 칠해져 있었고, 그 덕분에 내 마음도 더욱 어지러웠다.


복잡한 마음을 뒤로하고 ‘그래도 잘 되겠지…….’라며 터벅터벅 게스트 하우스로 돌아왔다.


나의 워킹홀리데이 이야기가 극적으로 전개되려면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몇 달을 쫄쫄 굶거나, 현실을 수긍하고 새로운 판로를 찾아서 떠났어야 했지만 아쉽게 그렇게 흘러가지는 않았다. 그다음 날 게스트 하우스에 머물러 있던 남미 여행자분들과 식사하러 한식당에 갔다가 사장님께 일자리를 제안받았다.


나는 이렇게 운 좋게 일자리를 바로 구했다. 뿐만 아니라 그다음 날 게스트 하우스 사장님께서 교민 단톡방에 올라온 ‘한국 공기업 단기 계약직’ 공고가 올라왔다며 지원해보라고 추천해주셨다. 급하게 레쥬메(이력서)를 작성해 지원했고 입국한 지 3일도 안 되어서 면접을 보고 합격하였다. 두 일자리 중에 나는 당연히 더 좋은 근무환경이 제공되는 한국 공기업으로 선택했고 이렇게 나는 얼떨결에 바로‘취직’했다.




덕분에 나는 워라벨도 보장받으며, 현지 시급보다 높은 시급을 받고 일을 할 수 있었다. 후에, 예비 워홀러분들께 어떻게 일을 구할 수 있었는지 많은 질문을 받았지만, 정말 ‘운이 좋았다’라는 말 밖에 못 해 드렸다. 마침 한식당에 자리가 생겼고, 마침 회사에서 인력을 뽑았다. 모든 게 그냥 운이었고, 모든 게 알아서 잘 됐다. 칠레에 와서 고생만 하다, 돈 만 쓰다 가는 워홀러가 되는 불상사 없이 입국한 지

일주일도 안돼서 나는 출근하게 되었다.




역시 ALL is W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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