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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욱 Aug 10. 2022

"우주에 와 있는 것 같아"

제1부: 칠레 워킹홀리데이

2014년 11월, 서울 왕십리 아이맥스 영화관에서 ‘인터스텔라’를 보았을 때, 너무 몰입한 나머지 영화가 끝나고 다리가 후들거려서 한동안 의자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내가 문과인 것도 영화에 집중하는데 한몫했겠지만 영화의 삽입곡과 거대한 스크린으로 뿜어져 나오는 웅장한 우주의 모습에 압도당해 우주를 여행하는 듯한 기분을 받았다. 블랙홀 가르강튀아를 빠져나가는 씬에서 흐르는 적막감과 공허함에 이유모를 감정이 벅차올라 눈물까지 났었다.


‘또다시 이런 감정을 느낄 수 있을까…….’

우주를 여행하는 이 기분을 언젠가는 꼭 다시 한번 느끼고 싶었다.

영화 인터스텔라 중 블랙홀 가르강튀아


5년이 지나 이 감정이 무뎌질 때 쯤 나는 드디어 칠레 아타카마 사막에서 그 염원을 이룰 수 있었다.


그것도 더 생생하게


2018년 7월, 회사에 본격적으로 합류하기 위해 한국을 들려 비자를 워킹홀리데이 비자에서 워킹비자로 전환해야 했다. 입국까지 시간이 남아 평소 하지 못 하던 여행을 계획했다. 대략 2주 동안의 시간이라 인근 많은 나라를 보기에 촉박해서 세계에서 가장 별이 잘 보인다는 칠레 아타카마 사막을 목표로 했다. 간소하게 가방을 준비하고 외국인 등록증이라는 나름의 칠레 공인 신분증 파워와 6개월간의 칠레 사투리로 다져진 자신감은 65L의 배낭의 빈 공간에 필요한 물건 대신 채워졌다.


칠레 산티아고 공항에서 칼라마 공항까지 두 시간의 비행 후 간편한 통과 절차를 마친 후 출구로 나와 보니 쌀쌀한 공기가 느껴졌다. 7월, 어느덧 칠레에도 겨울이 찾아왔다.

아타카마는 산티아고보다 고산지대라 더 추웠기에 서둘러 옷깃을 여미고 아타카마 마을로 향하는 셔틀에 몸을 실었다.


 새벽 일찍 나와 비행기를 타서 인지, 차 안에 앉아 목 베개를 하자마자 잠이 들었다. 대충 ‘눈을 뜰 때쯤이면 내 눈앞에는 황량한 사막이 펼쳐져 있겠지’라는 기대를 하며 잠에 들었다. 그런데 이게 웬걸 차가 멈춘 듯한 기분이 들어 눈을 떠보니 창문 밖으로 보이는 건 건조한 사막이 아닌 흰색 세상이었다.


"천국인가?"


눈이었다.

아타카마가 유명한 이유는 너무 건조하여 달 표면과 같은 특유의 지형과, 비가 내리는 법이 없어 별을 관측하기에 더할 나위 없기 때문인데, 그런 아타카마에 몇십 년 만에 눈이 와있었던 것이다.


“Sal del auto!”(차에서 내려!)


차에서 왜 내리라고 했나 보니, 눈길에 차가 지나가지 못해서 눈이 좀 녹을 때까지 기다리면서 사진 찍으며 놀자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산티아고에서 진눈깨비만 내려도 온 칠레 사람들이 나와 눈을 구경하는데, 가뜩이나 비나 눈이 안 온다는 이 지방 사람들에겐 밤하늘에 매일 떠있는 수많은 별보다 눈 덮인 풍경이 필시 귀한 광경 일 것이다.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나 보고도 사진을 찍으라고 권유하는데,

“이 사람들은 한국엔 이런 눈이 겨울마다 펑펑 내리는 걸 알까..? 작년 재작년엔 2년 동안 내가 그 쓰레기를 치우려고 새벽마다 일어나야만 했던 걸 알까…….”라는 생각과 동시에 그들의 기대 어린 눈빛의 부흥하고자 나도 몇 장 부탁했다.


‘Por favor’(부탁해)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도착한 아타카마 마을은 정말 사막 한가운데 지어진 황토색 마을이었다.

나는 미리 알아 둔 호스텔에 들어가 체크인을 하고 마을의 한 투어사에 달의 계곡 투어와 별 투어를 신청하고 일찍이 잠에 들었다.


둘째 날, 날이 밝고 간단하게 조식을 먹은 후 달 표면처럼 생긴 사막 지형을 구경하러 떠났다. ‘달의 계곡’은 화성이나 달과 관련된 영화 촬영지로 종종 나오던 곳답게 확실히 지구의 모습보단 달이나 화성의 이미지와 어울렸다.

언덕을 올라가는데 고산지대라 숨을 쉬기가 어려워 가쁘게 내쉬었다. 그런데 세상에서 가장 건조한 곳이어서 그런가 코와 입이 쩍쩍 갈라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얼른 주머니에서 바쉐린을 꺼내 발랐다.

힘겹게 언덕에 도착하니 눈에 보이는 건 어떻게 이런 모양이 되었는지 신비한 붉은색의 암석들의 모습과 푸른색 하늘이 전부였다.


놀라운 광경을 바라보며 석양이 질 때까지 기다렸다. 시시각각으로 변화하는 하늘의 색이 땅의 색과 비슷할 무렵이 되자, 정말 달 어디 한가운데에서 태양을 바라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꽤나 감격적이었던 달의 계곡 투어에서 돌아와 사막 먼지를 씻기 위해 샤워를 하는데 게스트하우스의 물탱크가 동파되었는지 따뜻한 물이 나오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물만 대충 묻히고 나오는데 이때부터 고산증세가 나타나더니 머리가 터질 듯이 아팠다. 몸에 오한이 오고 움직일 수가 없었다. 밤 11시에 별 투어를 가야 하는데 몸 상태가 말이 아니었다. 비상약이 들어가야 했을 배낭 빈 공간에 자리 잡은 자신감이 이렇게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나 자신을 원망하며 이불속 안에서 사시나무 떨듯 바들바들거리며 밤에 출발하는 별 투어를 가야 할지 고민했다.


이불속에서 패딩까지 입고 최대한 따뜻하게 하고 있으니 투어 시간이 다가올 때쯤 컨디션이 괜찮아졌다. 힘겹게 몸을 일으키고 약속된 장소에 찾아가 투어사 차에 올라탔다. 마을을 벗어나  세상의  빛이 모두 사라져  때쯤 투어사 차가 멈추었다.


 문이 열리고 앞에서부터 먼저 차에서 내리는 사람마다 약속이라도  듯이 탄성을 내질렀다.  차례가 되자 나도 서둘러 벤에서 내렸다. 그리고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나도 마찬가지로 소리를 질렀다. 믿을  없었다. 하늘에서 당장 쏟아질  같이 무수히 수놓은 별들, 그리고 은하수가 펼쳐져 있었다.

안 좋은 미러리스로 열심히 카메라에 담고자 했던 사진
“우주에 와 있는 것 같아”


마음속의 말이 입 밖으로 나도 모르게 튀어나왔다.


처음 밤하늘을 바라보았을 땐 별이 너무 많아 하늘에서 금방이라도 쏟아질 것 만 같은 느낌이 들더니 어느 순간 내 몸이 붕 떠올라 우주 한가운데 놓인 기분을 받았다. 주변의 아무것도 안보였고 아무 소리도 안 들렸다. 나 혼자서 지금 우주 한가운데 놓여 있는 기분이 들었다. 아타카마 사막의 차가운 공기를 들이키며 내 시야를 방해하는 지구 표면의 방해물 없이 온전히 지구 밖의 별들과 나만이 이 세상에 존재했다. 


나는 그 별들과 적나라하게 서로를 마주 보고 있는 중이었다.

수 많은 별들이 있었지만 다 담지 못한 내 미러리스의 한계


인터스텔라의 영화 속 별들이 아닌, 그 보다 더 생생하고 더 많은 별들이 내 눈앞에 쏟아지고 있자, 인터스텔라를 보았을 때보다 더 진한 감동이 치밀어 올랐다. 우주 한가운데 나 혼자만 놓여 있을 때의 외로움과 공허함, 동시에 거대한 우주의 모습에 압도되어 형용할 수 없는 황홀감이었다.


투어가 끝나고 게스트 하우스로 돌아오면서

또 다시 살면서 가장 우주 같은 공간에서 별들을 마주할 수 있는 일이 앞으로도 있을까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나는 이 장면을 평생 잊지 못할 것이라고 확신했다.


칠레의 보물, 아타카마 사막의 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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