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부: 칠레 워킹홀리데이
내가 스타트업에 끌리는 이유는 멘땅에 헤딩하는’ 느낌 때문이다. 아무것도 없는 멘땅에 헤딩하며 만들어 나가는 것. 내 특유의 허세 일지는 모르겠지만 그게 스타트업만의 특징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업력 3년 미만의 스타트업이면 정말 아무것도 안 갖추어진 ‘멘땅’ 일 가능성이 높다. 그 덕분에 멘땅에 내가 뭔 짓을 해도 할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반대로, 밭을 갈고, 씨앗을 뿌리고, 물을 주고 하는 모든 걸 ‘내가’, 그것도‘혼자서’해야 한다는 단점 또한 있다.
그런 ‘멘땅에 헤딩’을 위해서 한국에 도착 후 나는 곧장 본사인 대구로 내려갔다. 모 창업센터에 입주해 있는 회사에 도착해서 팀원분들께 인사드리고 우리들은 다 같이 회식을 하러 갔다. 스타트업이지만 대표님을 포함해서 팀원분들은 모두 대기업에서 오랫동안 일하시다가 나오셔서 여러 사업체를 운영해보신 베테랑들이셨다.
따라서 여느 스타트업처럼 젊은 분위기와 패기로만 뭉쳐있는 스타트업의 이미지와는 다르게, 대기업의 노련한 성숙미가 느껴지며 동시에 기민하게 움직일 수 있는 스타트업의 장점을 가진 회사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리가 무르익자 사실 대표님을 제외하고 팀원분들은 나를 채용하시는 데 반대하셨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아무 교집합도 없는, 그것도 팀원들의 아들 뻘 되는 사람을 뽑는다고 했을 때 대표님이 너무 섣부르게 사람을 뽑는 게 아닌가 생각들을 하셨다고 한다. 그렇지만 내가 이제까지 해왔던 것과, 오늘 같이 시간을 함께 하면서 회사와 잘 맞고, 잘할 것 같다며 대표님을 포함해 이젠 전부가 현욱 씨를 환영한다고 말씀해주셨다. 특별히 숨기지 않고 터놓으시던 비하인드 스토리에 오히려 더 감사함을 느껴 앞으로 잘하겠다고 대답했다.
다음날부터, 나는‘마케팅 팀장’이라는 직책을 받았다. 물론 5명밖에 안 되는 팀 안에서 마케팅 팀원은 존재하지 않았다. 오히려 CMO 직책을 가지신 사수 한 분이 계셨다. 그래도 마케팅 ‘팀장’이라는 직책을 달아야, 미팅을 갔을 때나 메일을 주고받을 때 무시를 당하지 않는다며 이사님들이 적극 추천해주신 결과 마케팅 팀장의 자리를 받은 것이다.
‘멘땅의 헤딩’이라는 말이 정말 잘 어울리게 내가 해야 할 일이 정말 많았다. 나는 팀원의 막내이면서 동시에 마케팅 팀장이기 때문에 동시에 두 가지 롤을 소화해야 했다. 팀원의 막내로서는 사업계획서를 읽으면서 회사가 갈 방향과 어떤 비전을 가지고 있는지 파악하고, 회사의 자료들을 리뉴얼하는 역할을 했다. 동시에 구두로만 진행되고 있는 회의를 회의록을 쓰며 정리해서 자료화시키고, 기타 회사의 필요한 표준화된 양식을 만들었다. (‘표준화된 양식’을 만들고 자료화시키는 업무는 회사에 입사하기 전에 한국 공기업에서 일했던 경험이 정말 많은 도움이 됐다. 역시 ‘양식’은 한국 공기업이 최고다.)
그다음으로 칠레 필드 플레이어로서 마케팅 팀장으로서는 회사가 칠레로 법인을 세우는 과정에서 필요한 서류 조사 및 번역, 칠레 오피스와 연결고리 역할을 했다. 또한 칠레 내에서 어떤 식으로 초기 사용자들을 모집할 것인지 향후 액션플랜과 마케팅 플랜을 수립하고 프로젝트를 지속적으로 CMO분과 논의했다.
액션플랜을 다 설정하고 난 뒤, 홍보영상을 만들기 위해 영상 제작 업체와 컨택하여 콘티를 짜고 홍보 영상 제작을 진행했다. 풀어쓰니 5줄도 안 되는 일이지만 실제로 3 개월이 넘게 걸렸다. 심지어 초기 스타트업 특성상 퇴근이라는 개념이 모호하여 저녁도 같이 먹으며 회의를 했고 그러다 보면 새벽이 되기도 했다. 그 정도로 온 힘을 다해 칠레 서비스 성공적 론칭에만 매달려서 준비를 했다.
이렇게 예정대로 잘 흘러가다 론칭할 수 있을 것 같던 첫 서비스에 문제가 생겼다. 개발이 거의 다 완료된 상태에서 중요한 파일이 ‘날라’ 간 것이다. 마케팅의 특성상 서비스 론칭에 맞게 시시각각으로 변화하는 시장의 환경을 파악해서 진행해야 하는데, 서비스 론칭이 조금씩 딜레이 되기 시작했다. 따라서 우리는 지속적으로 프로젝트를 수정해야만 했다. 자연스럽게 나의 출국도 밀렸다. 본래 한 달 이내로 다시 출국할 계획이었지만 서비스 론칭이 딜레이 되면서 해가 바뀌었다.
심지어 사업 초기에 칠레 내에선 경쟁사가 존재하지 않는 비즈니스였는데 서비스가 딜레이 되면서 해외 스타트업 경쟁사들이 먼저 치고 들어왔다. 경쟁사가 생겨난 만큼 우리들은 액션 플랜을‘1등 전략’에서‘2등 전략’으로 수정했다. 1등이 시행착오를 겪는 것을 보고 2등인 우리는 최소한의 비용으로 빠르게 시장을 공략하는 전략을 세운 것이다. 오히려 잘 됐다고 서로를 다독이던 우리였지만 마음속엔 불똥이 떨어진 것을 알았다.
그래서 나는 서비스는 준비가 안됐지만 경쟁사들과 시장을 재조사하기 위해 다급히 칠레로 출국했다. 약 4~5개월이 지나 칠레로 돌아오니 당연히 칠레는 달라진 게 없었지만 나 자신의 컨디션이 많이 바뀌었다. 1년 전엔 칠레에 오자마자 8인실 게스트 하우스에서 지냈는데, 회사 측에서 1인실로 임시숙소를 마련해주었다. 그리고 숙소 렌트가 확정되자 회사 주변 칠레에서 가장 좋은 동네의 아파트로 숙소를 렌트해주었다. 6개월 전엔 조그마한 아파트에 정말 작은 방하나를 받아서 살았는데 말이다.
봉급도 한국 급여 기준으로 받았고, 한국 기업을 지원해주는 공기업의 사무실에 1인 오피스를 지원받아 출근하니 감개무량했다. 더 이상 싸구려 소시지와 빵만 먹으면서 안 지내도, 두 시간이 넘는 거리를 안 걸어 다녀도, 충분히 통장에 돈이 모이기 시작했다. 이제 퇴근 후 나의 삶이 있고, 조그마한 방 하나를 쓰고자 외국인 친구들과 같이 살면서 월에 50만 원씩 안내도 됐다. 이 모든 게 1년 사이 일어난 일이라는 걸 깨닫자 이제까지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면서 참 신기했다.
그렇게 그때는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도 모르고 마냥 행복하게 칠레에서의 미래를 꿈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