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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욱 Aug 17. 2022

사장님같은 어른이 되겠습니다.

제1부: 칠레 워킹홀리데이

모처럼 산티아고에 비가 오는 날이었다. 칠레로 돌아오고 난 후, 여유가 생겨 전에 일했던 가게로 인사를 가기로 했다. 빈손으로 가는 것이 예의가 아니라고도 배웠고, 같이 일하던 윌슨과 마리아, 실비아랑 같이 먹던 인스턴트커피와 간식이 눈에 밟혀 스타벅스에 들렸다. 맨날 설탕이 가득 들어간 싸구려 인스턴트커피만 마시던 친구들에게 양 많고 맛있는 음료와 간식을 사주고 싶었다.

그래서 스타벅스에서 가장 달달한 메뉴들로 두 손 가득 들고 가게로 찾아갔다.

‘미스타 장! 세뇨르 장!’


오랜만에 만난 윌슨과 마리아는 나를 너무나 반갑게 맞아주었다. 간단한 안부인사를 건네고 사온 음료를 건넸다. 뜻밖의 선물에 친구들은 너무 기쁘게 반응해주었다. 별 것도 아닌 것에 너무 대단한 선물을 받은 것처럼 고마워하는 모습을 보니 오히려 내가 민망했다. 그런데 실비아가 보이지 않았다.

마리아에게 물어보니 비자 문제 때문에 잠시 일을 그만둔 상태라고 한다.

어쩔 수 없이 실바아 몫으로 사 온 음료는 새로운 직원 친구를 주었다.


사장님과 사모님에게도 커피와 함께 인사를 드렸다. 일을 그만두고 나서도 간간히 문자로 안부를 주고받았던 터라, 소식을 미리 알고 계셨다. 잘돼서 너무 기분이 좋다고 말씀해주셔서 다 사장님 사모님 덕분이라고 답했다.

자식 일처럼 좋아해 주시는 사장님과 사모님의 모습을 보며 오랜만에 따뜻한 온기가 느껴졌다.


간단한 근황 소식을 주고받은 뒤, 사장님은 내 시간만 괜찮으면 저녁을 함께 하자고 하셨다. 마침 퇴근 시간쯤 찾아뵈었기 때문에 마감을 하고, 사장님께서 일 할 때 자주 사주시던 인근 한인 식당으로 향했다.


“현욱 씨만 괜찮으면 비도 오는데 술 한잔 할까?”


뜨끈한 순대 국밥과 여러 메뉴를 시키고 조심스럽게 묻는 사장님의 말씀에 나는, 내가 술로 스트레스를 받은 게 언제였냐는듯 흔쾌히 좋다고 대답했다. 사장님과의 대화는 언제나 이처럼 따뜻했고 배려가 넘쳤다.

나는 사모님껜 죄송하지만 오늘 사장님 대리 기사를 해주셔야 할 것 같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원래 술을 잘 안 하시는 사모님이시지만, 오랜만에 만났으니 특별히 허락한다고 내 너스레에 맞장구를 쳐주셨다.


운치 있게 내리는 빗소리에 사장님 내외와 나는 그간 있었던 이야기를  자세하게 나누었다. 함께하던 나의 술잔엔 이제까지 채워지던 술잔과 다르게 사장님과 사모님의 따뜻한 온기가 채워진  

몸도 마음도 훈훈해져 갔다.


 간단한 저녁식사가 끝나고 사장님께서는 밥을 잘 먹고 다녀야 한다면서 국밥을 싸가라고 하셨다. 나는 괜찮다며 손사래 쳤지만, 이미 내 손에는 며칠은 충분히 먹고도 남을 국밥이 손에 들려있었다. 캐셔로 일 할 때도 저녁 식사를 자주 사주시고 굶지 말라고 포장까지 해주시던 사장님이셨는데 내가 또 깜빡한 것이다.


'이번엔 내가 대접해드렸어야 했는데....... 또 선수를 빼앗겼네 '


어쩔 수 없이 죄송스럽고 감사한 마음으로 가게에 나왔다. 밖은 여전히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다. 시간도 늦었고 비가 오니깐 사장님과 사모님은 데려다주시겠다고 하셨다. 지하철을 타고 가면 된다고 말씀드렸지만 절대 안 된다고 극구 만류하시는 사장님과 사모님 때문에 나는 못 이기는 척 또 한 번 신세를 지기로 했다.

"사장님 제가 잘하고 있는 거 맞겠죠?"

집 앞 까지 태워다 주시는 차 안에서 술기운이 조금 올라서인지, 그간 힘들었던 내 속 마음이 불쑥 튀어나왔다. 내가 하는 일이 의미 없는 일이 아니라는 걸 잘 알면서도 어린아이처럼 어른한테 한 번 더 확인받고 싶었나 보다. 갑자기 묻는 내 말에 사장님은 백미러로 나를 쳐다보시며 조용히 말씀하셨다.


"현욱 씨, 인생은 창문에 부딪힌 빗방울이랑 비슷한 것 같아, 결국 내리는 방향은 모두 같지만, 흘러가는 방향은 모두 제각각이잖아. 
하물며 빗방울도 제각각인데, 사람 인생은 오죽하겠어, 
인생이 흘러가는 방향엔 정답이 없고 쓸데없는 경험은 없어"

난 현욱 씨가 정말 멋있고 잘하고 있다고 생각해"


그 말씀에 안도감인지, 감사함인지 영문모를 감정들이 목구멍까지 울컥울컥 차올라왔다. 듣고 게시던 사모님께서도 ‘너무 잘하고 있다. 기특하다’라고 해주시는 모습에 먼 이국땅에서 나에게 잘하고 있다고, 잘할 거라고 따뜻한 말씀을 해주시는 어른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참 감사했다.


“감사합니다. 열심히 해볼게요”


짧게 감사인사를 드리며 속으로 나지막이 사장님께 말씀드렸다.


'제가 어른이 된다면 저도 사장님 같은 어른이 되겠습니다. 능력이 있으시면서 늘 겸손하시던 사장님처럼, 어떻게 성공하실 수 있었냐고 묻던 나의 대답에 늘 ‘아내 덕분’, ‘주변 사람들 덕분’이라고 주위 사람들을 치켜세우던 사장님처럼, 누군가에게 잘 한다고, 잘 할 거라고 응원해주시고 언제나 힘이 되어 주시던 사장님처럼

저도 누군가에게 그런 '어른'이 되겠습니다.'


달리는 차 안에서 그렇게 조용히 사장님께 고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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