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바를 마치고 오후 3시쯤 집에 왔다. 하늘은 유난히 예뻤고 베란다 화창한 빛 사이로 엄마는 열심히 손빨래를 하고 있었다. 엄마가 나를 보며 “원식이 왔나?” 하는데 갑자기 그 광경이 나 아기 때부터 이어왔던 익숙하고 포근한 그림같이 느껴졌다. 잠시 이 시간이 영원히 멈추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맥도날드에서 바쁜 일상을 끝내고 집으로 오는 길이 고요하지만은 않았다. 불안한 듯 분주한 사람들 틈 사이에서 나도 여러 골치 아픈 상념에 휩싸여 있었다. 알 수 없는 미래, 앞으로 책은 어떻게 쓸 것이며 사업은 어떻게 진행할 것인가? 따위를 고심하며 나를 자해했다. 그런데 우리 집 문에 들어서고 내가 본 따스한 엄마의 모습에 나도 모르게 내 의식이 ‘현재’라는 공간으로 들어섰다.
가끔 내일이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엄마가 앞으로 몇 년이나 매번 집으로 돌아오는 나를 평범하게 맞이할까?’ 이런 염려도 싫다. 그저 이 순간을 기점으로 미래를 다 부정하고 나면 주체 못할 평화가 찾아오는데, 나는 그것을 음미하려 자주 노력한다.
그럴 때는 버스를 타더라도 창문 밖의 풍경이 천천히 눈에 들어오고, 시계 바늘에 탄력이 부족한 듯 모든 시공간이 것이 길게 늘어진다. 저녁 라디오 프로가 특별하게 기다려지고 거기서 나오는 소소한 음악들이 내 가슴에 크게 각인된다. 우리가 현재를 누리는 연습을 하지 못한다면 자신이 꿈꾸던 미래가 기적처럼 내게 전부 오더라도 그것을 제대로 향유할 수 있을까? 2005년(당시 25살) 어느 날도 나는 가족들 품에서 행복한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그 당시 미니홈피에 적었던 글이 생각나서 여기 옮겨본다.
2005년 10월 1일 저녁,
요즘 학교 생활 땜에 좀 바빠서 여기 신경을 잘 못쓰고 있네요^^ 어제 새벽에 집에 들어와서 늦게 일어나서 밥 먹고 또 자고, 할 일도 많은데 또 나태의 연속이네요. 이렇게 스스로 짜증내는 와중에도 어머니는 가족들 밥 차려주려고 식사 준비하고, 아버지는 피곤한지 주무시고, 동생은 대구에서 잘 지내고 있다고 전화 오고 평범함의 연속이네요.
옛날에 '파랑새'라는 만화영화 시리즈가 있었는데, 이 만화 기억하세요? 저랑 같은 나이대면 기억할 건데
. 어떤 두 남매가 행복의 파랑새를 찾아서 긴 모험을 떠나가는 이야기죠. 그들은 언제나 결정적인 순간에 파랑새를 놓쳐서 우리 맘을 졸이게 했었죠. 남매는 그렇게 힘들고 긴 여정에도 결국 파랑새를 찾지 못하고 지친 몸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그런데 자기 집 한구석의 새장에서 그들이 그토록 바라던 파랑새를 찾게 되죠.
갑자기 그 만화를 생각하니깐 현재의 짜증이 싹 없어졌습니다 ^ ^ 지금 이렇게 평범한 곳에 행복의 파랑새는 지저귀고 있는 것 같아요. 저는 왜 계속 그걸 잊어버리고 사는 살까요? 물론 리포트도 써야 되고 공부도 해야 되는데, 당연히 걱정할 게 많죠. 그런데 지금 너무 행복한데 그런 걱정들이 다 무슨 소용이죠? 엄마가 밥 먹으러 오라고 난리네요. 지금 밥 먹으러 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