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음에 대처하는 자세

by 참새

맥도날드에서 아르바이트 하기 전 친구와 잠깐 통화를 했는데, 친구는 그곳엔 나이 어린 직원들도 많고 텃새도 심하다고 들었는데 나더러 ‘왕따’ 당하지 않도록 조심하라고 일러주었다. 그 당시 나는 친구에게 ‘참새는 어디서든 잘 적응하니 그런 걱정하지 말라’며 큰 소리를 쳤었다.


그런데 막상 와서 일을 해보니 친구가 우려했던 상황이 실제로 벌어졌다. 여기서 일하는 친구들 대부분이 20대 초 중반인데, 30대인 나에게 업무적인 일 외에는 아무도 말을 걸어주지 않았다. 자기들끼리는 엄청 떠들면서 말이다. 누구도 나에게 말을 놓으라고 하지도 않아 그 어린 친구들을 부를 때도 ‘여기요, 저기요, 제가 이것 하면 되나요?’ 하는데 참 어색했다.


반면 나와 동 시간대에 일하는 어리고 잘생긴 한 남자 아이의 혼잣말을 하듯 속삭이는 음성에는 모든 직원들이 반응을 해준다. 솔직히 그 아이는 내가 봐도 반짝 반짝 빛나는 뽀얀 젊음에, 헬멧을 오래 썼다 벗어도 살아있는 머릿발까지, 완벽해 보이는 외모를 가진 듯 보였다. 요즘 그 아이를 보면서 내가 더 초라하게 느껴지고 아무 메리트도 없어 보이는 늙은 내 모습이 의식에 각인되기 시작했다. 심지어 나는 귀엽고 아리따운 소녀들에게 던지는 소소한 추파조차 추악수레 보일까 봐 몸을 사리고 있는 실정이다. 이쯤 되자 나는 갑자기 나이 듦이 서러웠다.


나도 어렸을 땐 저 아이처럼 세상의 중심에 서 있다고 여기던 때가 있었다. 주변 사람들이 내게 ‘동안이다. 귀엽다. 연예인 누구 닮았다.’ 이런 말을 자주 해주었고 내 작은 발걸음에도 귀를 기울이고 시시한 농담에도 함박 웃어주던 시절이 분명히 존재했었다. 그런데 이젠 그런 내 리즈 시절도 다 지나가버린 건가? 내일부터라도 내가 내 외모를 관리한다면 잃어버린 생기, 사람들의 관심을 다시 찾을 수는 있는 건가? 혼란스러웠다.


그런데 여느 때처럼 그런 상념들에 휩싸여 발걸음이 무거워질 때쯤 퇴근 시간이 다가왔다. 침묵으로 짐을 정리하고 어두운 캐비닛을 닫아 버리려는 찰나, 빛과 같은 목소리가 등 뒤에서 들려왔다. ‘저기요. 혹시 작가이세요?’ 돌아보니 한 어린 직원이 내게 성큼 다가와 있었다. ‘점장님께 우연히 들었는데 님께서 글 쓰신다고 하던데요?’ ‘아 네.. 뭐 그렇죠.’ 나는 순간 당황해서 내가 작가인지도 몰랐다. ‘사실 제가 책 읽고 글 쓰는 거 되게 좋아하거든요.’ ‘어떤 책을 쓰시는 거죠?’ ‘어떤 작가를 좋아하세요?’ 등 갑자기 질문 세례가 쏟아졌다. 그 아이는 나와 짧은 대화를 나눈 후 ‘우리 담에 더 자세히 얘기해요’ 하고 다시 일을 하러 갔다. 그 사건은 그곳에서 내가 받은 최초의 ‘관심’이었다.


집으로 오는 길에 나는 저절로 미소가 지어지며 기존의 내 추레함에 대한 생각을 확 바꾸기 시작했다. ‘나는 리즈 시절 때 보다 나이를 더 먹고 외모도 색이 바랬지만, 나에게 다른 관점으로 관심 가져주는 사람들이 있구나! 지금에 이르는 시간 동안 내 젊음을 반납한 대신 내가 읽은 책들, 신중히 쓴 원고들, 숙성시킨 시야, 온라인에서 알게 된 소중한 인연들 등 사실 많은 것들을 얻었구나!’ 하고 말이다.


과거의 나의 앳된 외모를 보고 귀여워해 주던 사람들이 줄어든 반면, 이제 눈에 직접적으로 보이지 않는, 내 노력으로 일군 내향을 좋아해주는 사람들이 확실히 늘고 있다. 어쩌면 사람들이 나이가 들면서 이렇게 사는 것이 자연스러운 게 아닐까? 어차피 우리는 늙음으로, 죽음으로 향하고 있고 그것을 피하는 것도 한계가 있을 것이다. 우리가 궁극적으로 필요한 건 영원한 ‘생기, 젊음’ 그 자체가 아니라, 자신이 늙어감에도 관대한 주위의 ‘사랑과 관심’이 아닐까? 그것이 목적이라면 반드시 젊고 예뻐야 할 필요는 없는 것 아닌가?


우리가 나이 듦에 따라 부서지고 흩날리기 쉬운 외향보다는 쉽게 변하지 않고 축적이 가능한 내향의 매력을 기르는 것이 올바른 재테크가 아닐까? 그래서 언젠가 신이 우리에게 ‘네가 지금껏 이룬 것 다 버리고 다시 10~20대의 젊음으로 돌아갈래?’ 묻는다 해도 ‘아니요! 저는 지난 시간 동안 힘들게 가꾼 내향을 포기하면서까지 그때로 돌아가긴 싫습니다!’라고 단호하게 대답할 수 있는 삶을 사는 것이 의미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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