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by 참새
포맷변환_father.jpg 가족 / 황드롱 / 2014


동생 작품 중에 ‘가족’이란 제목의 이 그림을 보면서 어떤 기억이 스쳤다. 몇 달 전, 겨울이었다. 새벽 6시 여느 때처럼 건너편 부모님 방에서 알람이 울렸다. 밖은 아직 깜깜했고 내 방 창문엔 빗줄기가 사선으로 그어져 있는 것 확인했다. 거실과 부엌의 불이 차례로 켜졌다. 5분 뒤, 나는 얼떨결에 잠에서 깨 소변이 마려워 화장실을 가려다 거실에서 아침 뉴스를 보시는 아버지의 분명하지 않은 음성을 개관하고 딱 10도 정도의 목례를 한 후, 다시 방 안 이불 속으로 파 묻혔다.


모두가 분주해도 내 방 밖의 세상엔 관심이 없었다. 나는 백수이고 무적이고 침대는 온전히 아늑한 공간이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현관문의 삐리릭 거리는 기계음 소리와 함께 ‘빗길에 조심해서 잘 다녀와요!’ ‘어, 갔다 올게’ 하는 낮은 음역대의 소리가 들렸다. 예전에는 이런 인기척에 항상 벌떡 일어나서 반쯤 감긴 눈으로 “아버지, 잘 다녀오세요!” 하는 형식이라도 확고했지만 이젠 그것도 자연스레 사라졌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날따라 이불 안에서 꿈틀대던 백수도 ‘빗길’이라는 소리에 아버지께 미안함이 일었던지 현관문이 닫히기 전에 출근 인사를 드려야 한다는 사명감에 힘을 내어 일어난 적이 있다.


아버지는 26살에 결혼을 해 지금 환갑이신데, 그동안 몇 번의 아침 출근을 반복했을까? 만 번은 넘게 이런 의식을 치렀을까? 저 그림자에 비친 짐의 무게는 몇 kg일까? 이런, 아무것도 짐작 안 된다. 우리 집에 아들만 둘 있는데, 하나는 그림을 그리는 작가가 되겠다 하고 하나는 글 쓰는 작가가 되겠다 했다. 덕분에 이번 어버이 날에도 남들 다 받는 용돈도 제대로 받아보지 못한 아버지, 분명 그날엔 당신의 직장에서는 동료들의 자식들 자랑이 무성했을 텐데 내색도 안 하신다.


아들과 아버지 사이는 왜 이렇게 어색한가? 얼마 전, 가족 회식을 하는데 아버지께서는 내 접시에 잘 익은 고기 한 점을 놓아주시며 ‘우짜든지 힘내라!’ 내게 했던 그 한마디가 그날의 전부였다. 술이라도 드셨다면 우리에게 잔소리라도 하셨으려나? 그런데 그 흔한 술도 안 드신다. 담배도 피울 줄 모르신다. 그저 묵묵히 저 무거운 군장을 메고 하루도 빠짐없이 행군하듯 출근을 하신다. 주말에는 쉴 법도 한데, 빨간 날에 수당이 1.5배라 근무 빼먹으면 큰 손해라고 또 짐을 챙기신다.


얼마 전 아버지 휴대폰에 저 그림을 보내 드렸더니 친구분들께 ‘우리 아들이 그린 그림’이라며 또 그렇게 자랑을 하셨단다. 물론 나는 아버지께 ‘저기 고양이처럼 생긴 애가 원식이고 저 애기가 동생이라고, 그리고 저 예쁘게 생긴 사람이 엄마라고’ 살짝 억지를 부렸다. 나도 안다. 우리 가족이 이렇게 우거진 삶을 헤쳐 나갈 수 있었던 것도, 나와 동생이 아직까지 이렇게 철 없이 저 하고 싶은 것 하면서 자유롭게 살 수 있는 것도 아버지 당신의 희생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었음을. 아버지도 좋은 곳 많이 다니고 싶고 하고 싶은 일도 많으실 텐데.. “죄송해요. 지금은 제가 해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어요. 언젠가는 큰 은혜 꼭 갚을 거라는 무기력한 약속 밖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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