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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참새 Mar 22. 2016

건축학개론 _ 시간의 분절성

어느 날 라디오를 켰는데 영화 ‘건축학 개론’의 이용주 감독이 게스트로 나왔다. 그 영화의 비하인드스토리를 이야기하는 과정에서 감독은 엄태웅이 먼저 섭외되었을 때, 한 가지 고민이 생겼다고 하였다. 영화 속 현재와 과거는 15년의 갭이 존재하는데, 엄태웅은 자신이 35세의 승민(남주인공)과 20세의 승민을 다 연기할 수 있다고 어필하였다. 그 세월을 무시하고 그냥 같은 캐릭터를 쓸 것인가? 아니면 다른 어린 배역을 구할 것인가? 고민 끝에 감독은 ‘15년 전의 승민과 현재의 승민은 어쩌면 완전 다른 사람일 수도 있겠다’ 싶어 독립된 캐릭터를 쓰기로 결심했다고 하였다.



예전에 무심히 카톡을 흘려 보는데 기억도 가물가물한 대학 때 처음 사귄 아이의 배경화면이 눈에 스쳤다. 그녀의 아이와 남편의 이미지가 의도치 않게 인식되었고, 순간 그 남편을 부러움 혹은 약간의 시기심으로 한동안 바라보았다. 과거 내가 그토록 원했으나 결국 가지지 못했던 그녀를 이 남자는 이렇게 보란 듯이 소유하고 있는 건가? 순간 조금 심란했지만 그것도 잠시, 이용주 감독의 말이 떠오르며 ‘저 남자는 30대의 그녀와 결혼한 것은 맞지만 캠퍼스 새내기 소녀 같은 그녀를 한번도 느껴보진 못했으리라’ 란 생각이 들었다. 나는 최소한 20살 그녀의 전부였고, 현재였던 시, 공간을 독점한 적이 있다. 우리는 대부분 시간의 ‘연결성’을 굳은 진리라 여기지만 내가 사랑했던 소녀가 지금 내 눈앞의 이 아줌마와 전혀 상관없는 캐릭터이듯 어쩌면 시간의 ‘분절성’ 이 더 현실적이지 않을까?



울라 카린 린드크비스트의 ‘원더풀’ 이란 책을 보면서 다시 한번 시간의 분절성, 현재의 독립성에 대해서 공감했다. 루게릭 병에 걸려 시한부의 인생을 사는 책의 주인공은 웃으면서 이렇게 이야기 한다. ‘내게 밝은 미래란 없다. 그러나 밝은 현재는 있지 않은가? 그러므로 나는 어린 아이처럼 웃는다. 주체할 수 없을 만큼.’ ‘오늘을 온전히 살아내지 못하는데 며칠 더 살거나 덜 사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이런 작가의 말을 가만히 들여다 보고 있으면 누군가 말했던 ‘내일 지구가 멸망한다 해도 나는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 라고 말했던 이의 심정도 이해가 될 것 같기도 하다. 결국 과거, 현재, 미래는 서로 아무 관련성이 없는 것 같다. 우리는 오직 이 순간만을 살고 있으며 그 독립된 공간 속에 우리가 느낄 수 있는 모든 행복이 다 스며들어 있는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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