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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참새 Mar 23. 2016

집착의 본질

분주한 대학 새내기 시절, 시작은 분명 그녀가 먼저였다. 수업이 끝난 후 나를 쫄래쫄래 따라왔다. “너 어디가?” “그냥 너 따라서..” 그녀의 마음이 내게 향하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예쁘게 생긴 애가 내가 좋다고 말하며 손을 잡았다. 그렇게 우린 우리 과 1호 cc가 되었고 예쁜 사랑이 시작되었다. 난 누군가를 짝사랑 한 적은 있었지만 사귀어 본 적은 처음이었다. 난 사랑을 할 줄 몰랐다.



그녀의 얼굴, 말, 행동, 향기가 좋았다. 하루도 빠짐없이 그녀에게 이끌렸다. 아침 1교시부터 밤 10시까지 계속 같이 있었지만 항상 그녀가 보고 싶었다. 시작부터 잘못된 것일까? 그녀의 행동이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난 그녀에게 말을 거는 모든 남자들을 경계하며 불안해하기 시작했다. 내 온 에너지를 그녀에게 집중시키면서 기진맥진 한 채 하루를 마감했었다.



이미 정상이 아니었다. 하지만 난 내게 불리한 점들을 다 모른 척했다. 그녀에게 맛있는 밥도 사주고 영화도 보여주면서 내 용돈을 다 털었다. 그녀에게 사랑과 관심을 받으려면 내 자신을 희생시키는 수밖에 없었다. 항상 돈이 많이 필요했다. 내 옷, 신발, 액세서리, 취미, 친구들까지 다 포기하려고 하였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녀는 더 반짝반짝, 나는 거지처럼 초라해져 갔다.



공강 시간 빈 강의실에서 우리는 시험 공부를 하고 있었다. 그녀는 열심히 공부를 했고 나는 옆에서 엎드려 자고 있었다. 그녀가 나를 깨우더니 커피 한 잔 하자고 하였다. 그녀가 말했다. “나 아까 너 때문에 울었다.” 난 가슴이 철렁하였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녀를 사랑하는 게 전부인데, 이제 어찌해야 할지 몰랐다. 내 영혼에 ‘나’는 없었다. 자존심 같은 것도 없었다. 내 삶에 무게 중심을 상실하여 난 불안하게 흔들렸다. 그 재미있던 당구, 포트리스를 해도, 친구들과 술을 마셔도 그 모든 것이 다 시시했다. 이 세상에 의미 있는 것은 그녀가 전부였다. 



한참을 힘들게 그녀의 뒤를 쫓아다닌 어느 날이었다. 커피숍에 앉은 그녀는 아무 말 없이 눈물만 흘리더니 한 마디 하였다. “나 너무 힘들어” 한참 뒤 내가 말을 이었다. “그래. 알겠으니깐 울지 마라. 우리 이제 그만하자” 이제 더는 계속할 수 없었다. 내가 널 얼마나 좋아했었는데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 있지?’ 프로이트는 사랑과 증오는 한 끗 차이라고 하였다. 사랑은 매우 빠르게 증오로 변한다. 그녀를 잊기까지 내 찌질한 삶은 생략한다. 어찌되었든 시간은 무조건 흘러가고 지옥같은 기억도 아무 것도 아닌 것이 되었다.  




제러미 리프킨의 ‘공감의 시대’를 읽었다. 책에서는 유럽에서 18세기까지도 사람을 공개화형 하였고, 근대에는 8세의 아이들이 10시간 넘는 가혹한 노동으로 죽기도 하였으며, 장애인이나 동성애자, 여자, 외국인 차별이 당연시 되었다고 한다. 우리가 사람을 잔혹하게 죽이는 것을 ‘잔인하다’고 느끼며 아이들을 측은히 여기고, 나와 다른 이들의 아픔을 조금이라도 이해하는데 어마어마하게 오랜 시간이 걸린 것이라고 한다. 내 바로 옆에 있는 사람의 마음까지는 수세기의 갭이 있단다.



‘그녀는 왜 그때 힘들다고 말 했을까’ 이 질문을 하기까지 나도 참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녀는 모든 혜택을 보았고 난 희생만 했는데 왜 그녀는 힘들다고 했을까? 이제서야 알 것 같았다. 나는 사실 그녀를 만날 때 도파민에 한껏 취해있었다. 그 과격하고 예쁜 호르몬에 행복하고 설레는 일이 많았다. 그녀도 나만큼 행복했을까? 


같은 공간 속에서 cc라는 이름표가 어디라도 따라다녔을 것이다. 매일 사랑을 확인하려는 내게 지치지 않았을까? 나는 임팩트 강한 감정의 얻음과 잃음의 변화라도 있었지만 그녀는 나에 대한 미안함과 부담감만 쌓였을 것이다. 어찌 보면 최소한 사귈 당시에는 내가 감정적으로 이득이었을 수도 있다.  



나는 이기심만 채우려 했던 것일까? 내가 만약 그녀를 진심으로 좋아했다면 그녀가 펑펑 울 정도로 괴롭히지 말았어야지. 난 정말 공감의식이 하나도 없었다. 그녀를 배려하지 않았다. 오로지 내 감정에만 충실하였다. 어떻게 하면 상대가 행복할 것인지 한번도 생각하지 않았다. 어떻게 그럴 수 있지? 그때 나는 거의 사이코패스 급이었던 것 같다. 사랑은 원래 매우 어렵고 복잡하고 모순적이다. 그녀에게 하염없이 향하는 내 마음이 그녀를 위한 것이 아니라 그저 내 이기심이었단 걸 깨달았어야 했다. 오늘 14년 전 그녀를 위해 기도를 했다. ‘그땐 내가 진심으로 미안했다. 그리고 좋은 경험을 하게 해줘서 고맙다. 어디에 있든 잘 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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