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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참새 Mar 25. 2016

진짜 목적

아빠가 내게 복사 좀 해오라고 심부름을 시켰다. 우리 집과 가까운 도립 도서관에서 복사하면 되는데 월요일이라 거기가 쉰다. 어쩔 수 없이 버스로 네 정거장 되는 거리를 더 가야 했다. 차를 타고 갈까 하다가 최근 내가 살이 많이 찐 것 같아 운동할 겸 자전거를 타고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가는 길에 날씨도 덥고 오르막도 있어서 땀이 많이 났다. 그래도 이렇게라도 몸을 좀 움직이니 기분은 좋았다. 내리막 길에는 바람을 힘껏 가르며 시원하게 고함도 질러보았다. 



‘정글의 법칙’이란 프로를 가끔 본다. 거기에 다양한 연예인들이 아마존에 가서 생고생을 한다. 그냥 놀러 간 건 아닌 것 같고 아이돌 가수부터 중년 배우까지 저마다의 목적이 있는 것 같다. 자신의 가수 팀이나 작품의 홍보를 위해 나온 것일 수도 있다. 아무튼 연예인들은 서로 의지해가며 그 거친 정글 속에서 많은 추억을 쌓아간다. 여러 상업적 계산 속에서 정글에 갔지만 대자연 속에서 진한 추억을 얻었을 수도 있다. 출연자들은 그 시간들을 그저 참아내는 것일까? 아니면 때론 같이 즐기기도 하는 것일까? 



난 꿈이 엄청 크다. 이 사회도 바꾸고 싶고 사람들의 내적인 안녕에도 관심이 많다. 지금은 내 모든 이상을 실천하기 위해 정체 불명의 사무실도 오픈 했다. 그 과정에서 단체 카톡방도 만들고, 오프라인으로도 사람들을 많이 만나게 되었다. 그 온, 오프라인 사람들과 오래 이야기를 하다 보면 ‘내가 지금 여기서 뭐하나? 나는 지금 빨리 성장해야 하는데. 이럴 시간이 없는데..' 이런 생각이 들기도 한다. 원래는 사업 때문에 사람들을 만나는 건데, 이게 정확히 사업과 연관성이 있는 지도 애매하다. 정글에 가서 고생하는 연예인들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그런데 신기한 것은 막상 누군가를 만나서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하다 보면 재미가 있다. 요즘 웃게 되는 일도 많다. 같이 하는 그 시간 자체가, 최소한 그 순간이 진실되게 느껴질 때가 있다.



알퐁스도데의 ‘별’이 갑자기 생각났다. 그 순수한 목동과 주인집 딸은 무수한 별들이 쏟아지는 밤에 나란히 앉아있다. 그들은 전혀 다른 배경과 삶의 방향을 가지고 살지만 그 순간에는 같은 공간에서 다정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복잡한 이유들이 빚어낸 공통분모가 눈 앞에 아름답게 펼쳐지고 있다. 가끔 나도 현실의 일 따위는 잊고 우연적으로 허락된 순간들에 몰입하고 싶다는 충동도 느낀다.



나는 내가 하는 일이 투쟁을 하는 것만큼이나 비장하고 사회적으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접촉하는 사람들과 소소한 일상 또한 가치가 있다. 다소 엉뚱한 생각을 했다. ‘내가 살을 빼기 위해서 자전거 풍경을 본 것이 아니라. 이 예쁜 경치를 보기 위해서 다이어트 핑계를 댄 것은 아닐까? 정글의 법칙 속 연예인들이 자신의 작품을 홍보하기 위해 아마존에 간 것이 아니라, 아마존에 가기 위해 작품 활동을 한 것이 아닐까? 내가 사업을 하기 위해 사람들을 만난 것이 아니라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 사업을 한 것이 아닐까?’ 뭐 이런 요상한 논리 말이다. 그래도 난, 어쩌면 후자가 정말 사실일 수도 있단 생각이 든다.



우리가 너무 목적 의식에만 집착하면서 이 세상을 대한다면 매일 주어진 그 과정이 귀찮거나 시시하다고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다. 인생이란 결국 순간의 연속인데, 매번 그 순간들을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만 대한다면 우리는 한 순간도 집중할 수 없을 것이다. 삶의 치열한 목적보다 그것이 허락한 지금 이 ‘순간’을 더 음미하려고 노력 한다면 매 순간 행복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순간을 온전히 즐길 수 있어야 궁극적 목적에도 더 잘 도달할 수 있지 않을까? 어쩌면 신이 의도한 진짜 목적은 돈이나 명예나 투쟁이나 이런 것보다는 오히려 그것들이 파생시킨 ‘지금 이 순간’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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