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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참새 Mar 25. 2016

외모 컴플렉스

나는 요즈음에는 그냥 되는 대로 살지만, 한창 외모에 관심이 많았던 사춘기 시절부터 20대 후반에 이르기까지 외모에 대한 콤플렉스가 많이 심했던 것 같다.



그땐 콤플렉스를 느꼈던 부위도 참 다양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하면 그저 앳되고 심각할 건 하나도 없었지만, 그 당시 왜소한 몸, 여드름이 자주 났던 피부, 크지 않은 키, 반 곱슬 머리에서부터 목이나 발목, 손 등의 점까지 너무 사소해서 언급하기도 웃긴 것들이 많았다.



또 어찌나 그것들에 집착을 했는지, 아침에 발견한 여드름 하나 때문에 하루 종일 신경이 쓰였던 경우도 많았다. 그러다 그 여드름이 없어지고도 그 다음 날이 되면 또 다른 콤플렉스로 고민하였다. 언제 어떠한 상황에서도, 아마 난 천길 낭떠러지 위에서도 여드름을 쥐어짜면 울상을 짓고 있었을 것이다.



난 왜 그렇게 외모에 콤플렉스가 많았을까? 아마 20대까지만 해도 외모가 내 삶에 끼치는 영향이 크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외모가 뛰어나야 예쁜 여자친구도 만날 수 있고 주위의 많은 사람들에게 좋은 인상을 심어 줄 수 있다고 믿었으니깐..   



지금 내가 외모에 콤플렉스가 별로 없는 것은 아마 내 삶의 관심에서 '외모'가 차지하는 비중이 낮아져서 그런 것 아닐까? 지금의 나는 과거와 다른 것으로 늘 고민하고 있다. 취업, 결혼, 건강 등 확실히 고민의 주제가 바뀌었다. 가끔 만성적인 불안이 자리잡고 있는 지금 이런 삶이 과거의 내가 외모로 콤플렉스를 겪는 것과 무엇일 다를까 생각되기도 한다. 과거나 지금이나 항상 남들보다 불리한 점들만 의식하여 그것을 더 증폭시키고 심각한 수준으로 격상시키면서 살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예전에 내가 사람들은 10가지 중 장점이 9가지라도 굳이 한 가지의 단점만을 바라본다는 내용의 포스팅 한 적이 있는데, 그 말이 맞는 것 같다. 사람들은 조금 틔어 나온 삶의 불리한 점을 억지로 끄집어 내고 아예 없는 단점을 기어이 만들어서라도 고민을 계속 하고 싶은 모양이다.



내 블로그를 가끔 방문해 주시는 이웃 분 중에 꾸준하게 '감사일기'를 쓰시는 분이 있다.

그 내용을 보면



'오늘 친구를 만날 수 있음에 감사합니다.'

'오늘 가족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음에 감사합니다'

'나에게 자유, 시간, 부모님, 건강한 몸, 재미 있는 일이 많기에 너무 감사합니다.'



이렇게 감사한 일들을 적고 해당되는 사건의 사진을 듬뿍 첨부해 포스팅을 하여 블로그에 남기는데, 난 그것을 보기만 해도 한 가득 행복함을 받는다. 그런 느낌이 드는 이유는 그 분이 감사해하는 것들이 사실 나도 가지고 있는 소소한 것들이며, 내가 가지고 있는 것들의 소중함을 새삼 깨닫게 되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었을까?



시간이 지나고 보면 우스울 정도의 작은 콤플렉스로 무한히 걱정했던 나의 모습처럼 사람들 모두 소소한 것으로부터 끊임없이 감사해 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한 가지가 해결되어도 계속 이어지는 콤플렉스처럼 나에게 불리한 것들은 항상 산재해 있는 것 같다. 또한 나에게 감사하고 유리한 것들도 손을 뻗으면 항상 있을 것이다. 어떤 것을 집을 지는 우리의 선택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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