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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참새 Jun 10. 2016

내게 찾아온 공황장애

공황장애      


- 어지럽거나 혹은 기절할 것 같은 느낌     

- 호흡이 가빠지고 숨쉬기가 힘들다     

- 맥박이 빨라지거나 심장이 마구 뛴다     

- 죽을 것 같은 공포     

- 미칠 것 같은 혹은 자제력을 잃게 될 것 같은 공포      


공황장애. 요즘엔 정말 흔한 병이다. 이경규, 차태현, 김장훈, 휘성, 남희석, 김하늘 등 많은 연예인들이 줄줄이 이 병으로 진단을 받으면서 이젠 그 이름도 온 국민이 다 아는 것 같다. 공황장애는 심리적 스트레스가 육체적 피로 등과 겹치면서 발생할 수 있는 병으로 경쟁에 쉽게 노출 돼 있는 연예인들이 많이 걸리는 병이라고 한다. 이렇게만 보면 그 당시 나는 발병요소를 모두 가지고 있었지만 조금 이상한 점은 있다. 이상심리학 책을 보니 공항장애는 보통 30대 이후 빨라도 20대 초반에 오는 것이 대부분이라고 한다. 그런데 나는 왜 16살에 그 병이 찾아왔을까? 한창 성장하고 대학 입시까지 준비해야 할 인생의 꽤 중요한 시기에 말이다.      


심리학자 마틴셀리그만 박사는 공황장애를 DSM(정신질환의 진단 및 통계 편람)에 분류된 병들 중에 가장 치료효과 좋은 병이라고 하였다. 또한 얼마 전 통계치를 보니 미국인구 30%는 살면서 한번 이상은 공황 증세를 겪어본 적이 있고 이 병으로 정기적으로 병원치료를 받는 사람도 전체 인구의 4% 내외라고 했다. 이렇듯 이젠 이 병은 특이하지도 심각하지도 않다.     


하지만 16살 어린 나에겐 그것은 감당할 수 없는 무게였다. 그 시기 90년대는 지금과 달리 그 병에 대해서 접할 수 있는 아무런 매체도 없었고 사실 정신과 의사를 제외하고는 그 병명도 모르는 의사들도 많았다. 의학계에서도 2000년대 이후에 활발히 논의 된 병이니까. 아무튼 나는 10대 후반을 그 병에 대한 치료도 받지 못한 채 그냥 견뎌야 했다.           


사실 나는 그것이 병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냥 신이 나를 시험하고 있는 것 같았다. 저주에 걸린 것 같다는 비현실적인 생각을 했고 힘들 때마다 기도를 했다. 솔직히 지금 생각해보면 나도 내가 왜 병원에 가지 않았는지 좀 이해가 안 가기도 한다. 병원에 가는 것도 무서웠고 그럴 경황이 없었다고 밖엔 설명이 안 된다.     



16살 그 당시를 회상하면서 적은 글이다.     


내가 처음으로 공황증상을 보인 것은 중학교 3학년 9월로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다. 그때 만화책을 보고 있었는데 책 내용에 주인공이 바다 한가운데서 배가 표류하고 장면이 있었다. 나는 그 상황을 공포스럽게 생각했다. ‘어떻게 주인공은 아무도 없는 망망대해에 저렇게 있을 수가 있을까? 무섭지도 않나?’ 그런 생각을 5분 정도 지속하다가 갑자기 처음 느껴보는 느낌 - 세상이 완전 까맣고 다 닫혀 버려서 빠져나올 수 없다는 - 을 받았다. 한 10분 정도 지속되었던 것 같은데 수년이 지난 지금도 첫 번째 공황이 왔던 그날의 기억은 생생하다. 그 때 나는 어쩔 줄 몰라 (집에 부모님은 없었고) 할머니방으로 달려가서 할머니 옆에 누워서 껴안고 있었다. 무조건 좋은 생각을 해야 할 것 같아 가족들과 친한 친구 생각만 했다. 그렇게 해서 겨우 진정이 되었는데 문제는 그 다음 날부터였다. 학교를 가야하는데 불안이 계속 남아 있어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래도 학생이 학교는 꼭 가야된다는 생각 때문에  꾸역 꾸역 억지로 걸어가는데, 상상하기도 힘든 기억이었다.      



나는 공부를 정말 열심히 하는 학생이었는데 모든 것이 ALL STOP 되었다. 그런데  이 사실을 아무한테도 말을 못했다. 병이라는 생각도 못했고 모든 것이 공포스러워 객관적인 생각을 할 여유도 없었다. 말 그대로 '공황상태'가 된 채로 보냈다. 내가 하는 행동은 무의식적인 방어기제에서 나오는 살기위한 어떤 것들밖엔 없었다. ( 숨 크게쉬기, 야경 응시하기, 자극적인 냄새 맡기 등) 예를 들어 그 증상이 올 조짐이 보이면 야자시간인데도 밖으로 뛰어나가서 숨을 고르고 야경을 계속해서 10~20 정도 응시하면서 좀 진정해지면 교실로 들어오곤 했다. 그러면서 조금씩 증상을 다스리는 노하우를 터득하기는 했지만 너무나 급작스러운 생각이 갑자기 치고 올라올 때는 걷잡을 수 없었다. 예를 들어 빌딩 지하에 갔는데 이 폐쇄적 공간에서 빠져나갈 시간적 여유가 없다는 강박관념이 갑자기 올라와 나를 힘들게 한 적도 있었다. 또 하루는 생물시간에 인체 내부를 보고 이유 모를 공포가 너무 심하게 올라와서 교실을 뛰어나가 집으로 그냥 무작정 걸어간 적도 있었다. 그렇게 심한 공황을 겪고 나면 한 3일 정도는 정신 못 차리고 보내곤 했다.  지금 그 때를 생각하면 그냥 하루하루를 오로지 살기위해 살았던 것 같다.  경험해 보지 못한 사람은 절대로 알 수 없는 무한한 고통의 연속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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