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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참새 Jun 17. 2016

공황장애의 원인

공황의 원인은 무엇이었을까? 그때 나는 연합고사가 코앞인 중 3 모범생이었다. 한 학원 선생님이 나보고 조금만 열심히 하면 서울대 갈 수 있다고 했다. 그래서 나도 엄마도 내 미래에 대한 기대가 컸었다. 도대체 왜 바쁜 내게 이런 시련이 온 것일까? 공황이 왔을 당시에는 나는 병원 원인을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살아남기에만 집중했으니깐.      


시간이 조금 지나서야 내 병에 대해 '왜'라는 의문을 조금씩 가졌던 것 같다. 우선 내가 어떤 잘못을 해서 벌을 받는 것일 수도 있다. 어렸을 때 곤충을 잔인하게 죽였던 기억, 동물을 학대했던 적, 친구를 때리거나 상처를 줬던 일들이 떠올랐다. 그래서 (종교는 없었지만) 내 잘못을 용서해달라고 신에게 빌었다. 처음에 공황이 오면 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 같다.      


고딩 때 책을 많이 읽기 시작하면서 나도 합리적으로 변해갔는데, 그때는 내 공황의 원인이 내 마음에 내재된 '트라우마'라고 생각했다. 초딩 때 마루타(2차 세계 대전 당시 일제의 인체실험를 소재로 한 영화)를 본 이후로 폐쇄공포증이 약간 생긴 것도 같았다. 그때 사람들이 가스실에 갇혀서 죽는 장면을 봤었다.      


또 중 3때 '접시꽃당신(주인공이 위암에 걸림)'이란 영화를 보고난 뒤, 어느 날 새벽에 자다가 배(위)가 그것이 위암일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어 무서웠다. 그때 너무 걱정을 심하게 해서 며칠 동안 밥을 제대로 못 먹은 적도 있다. 나는 그 모든 일들이 내 안의 불안을 만들고 그 불안이 화산 폭발하듯 터져서 공황이 왔다고 믿었다.           


심리학자 아론벡은 '잘못된 믿음'이 공황의 원인이라고 한다. 배가 아프다고 다 위암은 아니며, 갇힌 공간에 있다고 해서 다 위험한 것은 아니다. 배가 태평양 한 가운데 표류하고 있다고 해서, 그 자체만으로는 위험하다고 볼 수 없다. 내가 당시에 지나치게 비약적(나는 배가 아프다는 단순한 사실만으로 위암에 걸린 거라고 판단했다.)이고, 부정적으로 생각을 했던 것이 공항의 원인이라는 거다.           


그리고 초딩 4~5학년 때 나를 심하게 괴롭히 친구들이 있었다. 그때의 상처가 계속 남아서 공황이 된 것일 수도 있다. 프로이트에 따르면 우리가 트라우마, 상처들을 덮어 버리거나 피하려고만 해서 불안이 더 커지는 것이라고 한다. 원래 우리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다시 하루를 시작하기 위해 애써 과거의 기억을 지운다.  

    

1년 전까지만 해도 나는 어릴 적 받은 상처들은 그냥 다 지난 일이고 사소한 거라고 믿었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정신건강에도 좋다고 여겼다. 그런데 의문이 들었다. 만약 내 상처가 정말 별 거 아니라면 이렇게 강박적으로 그것들을 피할 이유가 있었을까?


몇 달 전 나는 내 내면을 정면으로 들여다보았다. 너무 쪽팔리고 내 마음이 아려왔다. 그래도 참고 다시 나를 보았다. 그랬더니 내가 힘들어했던 그 어떤 일이 실제로 그때 일어났음을 알았다. 그리고 어릴 적 몇 가지 장면들이 항상 나를 따라다니고 있었다. 프로이트가 시키는 대로 나는 내 자신을 안아주려 했다.


정신분석의 핵심은 ‘인정’이라고 한다. ‘그때 그랬었어. 그런 일이 있었고, 나는 그렇게 했고, 그 사람은 그런 말을 했어.’ 내가 나를 이해하고, 그 창피하고 부끄러운 느낌들을 견뎌줄 수 있어야 한단다. 그렇게 하면 괴로운 반복을 끝내고, 상처를 떠나보낼 수 있단다. 이런 과정을 거쳐야 과거가 다 지난 일이 되고 사소한 것이 될 수 있다.                


트라우마가 생겼을 당시 심각하게 불안했다는 것을 알겠는데, 그때는 가만히 있다가 왜 하필 중3, 9월달에 공황이 터졌을까? 대학에서 심리학을 공부하면서 알게 된 심리학자 '윌리엄 글래서'는 공황은 자기 자신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서 발생한다고 하였다. 도대체 공황은 내게 무슨 도움을 준 것일까?     

 

공황이 처음 올 당시, 학교 마치면 바로 학원을 갔고 수업 다 마치면 밤 11시였다. 난 경쟁에 시달렸다. 학원에서도 소수정예 반이었다. 항상 남들에게 뒤쳐지면 안 된다는 생각에 강박적으로 공부를 했다. 피곤한 밤이면 바람도 안 통하는 좁은 교실에 억지스런 형광등이 쏟아지고, 차가운 회색 벽과 뾰족한 책상, 화이트 보드, 샤프가 나를 사정없이 찔러댔다.


어리고 약한 내가 그 무게를 너무 무리해서 끌고 갔던 것일까? 공황으로 인해 내가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드니깐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단 하루 만에 나는 시험, 공부, 성적, 진학 등 나를 사방에서 쥐어짜던 모든 것들을 집어 던졌다. 그때는 이 사실이 정말 원망스러웠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공황이 어쩌면 나를 살린 것일 수도 있다. 어쨌든 나는 공부라는 부담에서 벗어날 수 있었으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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