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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참새 Oct 02. 2016

육체적 피로가 공황을 유발하지는 않는다

공무원 시험이 전혀 가능성이 없었다면 차라리 쉽게 공부를 포기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 시험에 떨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2011년에는 시험 결과를 보니 창원시가 아닌 다른 지역으로 원서를 넣었으면 합격했을 점수였다. 그리고 그 시험 치기 일주일 전에 당시 사귀던 여자친구가 다른 남자가 생겼다고 내게 실토했다. 난 시험범위도 정리해야 하고 마음의 준비도 해야 했는데 그 사실을 감당하기가 무척 힘들었다. 그 사건 자체가 내겐 엄청 큰 트라우마가 되었던 것 같다.


그 시험을 아깝게 떨어지고 다시 독서실에 앉아있는데 공부가 되질 않았다. 주위 사람들의 합격 소식도 들려왔다. 나는 혼자서 쓸쓸이 밥을 먹고 이미 들었던 동영상 강의를 또 듣었다. 이건 정말 사람이 할 짓이 아닌 것 같았다. 이때는 공황보다는 우울증이 더 심했던 것 같다.


그 어두컴컴한 독서실을 나와 사회복지기관에 면접을 봐서 합격했다. 정확히는 장애인의 자립을 돕는 장애인인권센터에 가까웠다. 그곳에서 나는 정신없이 바빴다. 장애인들의 손발이 되어 장애인들 목욕도 시켜주고, 밥도 먹여주고, 집에까지 차도 태워주는 일까지 별의 별 일을 다 했다. 아침 9시에 출근해서 기본이 밤 10까지 일하였다. 감사가 있을 때는 밤을 새기도 하였다. 낮잠 잘 시간도 없었기 때문에 오후 3~4시가 되면 커피를 마셔도 잠이 와서 죽을 것 같았다.


그래도 난 그 일이 좋았다. 바쁘게 살다보니 헤어진 전 여자친구 생각을 많이 안 할 수 있어서 좋았고, 나와 비슷한 또래의 직원들이 많아서 외롭지도 않았다. 그리고 엑셀, 파워포인트 같은 컴퓨터 프로그램을 배우고 보도자료를 만드는 등 다양한 글을 쓸 수 있어서 좋았다. 무엇보다 사회적 약자들을 도울 수 있다는 사실이 내게 만족감을 줬다. 그리고 그곳 대표님이 2012 총선에 국회의원 예비후보였는데 자기가 당선되면 나에게 보좌관 시켜줄 것처럼 말했다. 그래서 더 희망을 가지고 그곳에서 일했던 것 같다. (결국 경선에서 떨어지셨다.)


공무원 준비할 때는 조금만 무리해서 공부하면 공황이 바로 왔는데, 사회복지사 일은 밤을 새어도 공황이 오지 않았다. 나는 그때 육체적인 피로가 반드시 공황을 가져오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 일을 내가 좋아해서 열심히 하는 거라면, 아무리 힘들게 일을 해도 공황은 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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