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참새 Aug 09. 2017

분명한 인과관계

오랜만에 책모임에서 반가운 사람들과 함께 있었는데도, 행복했어야 할 그 순간을 온전히 즐기지 못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화장실에 가서 거울을 봤는데 헤어스타일이 어색했기 때문이다. 마칠 때까지 계속 머리만 신경 쓰였다. 모임 마치고 밥 먹으러 갔을 때에도 계속 머리가 신경 쓰였다. 분위기 좋은 곳에서 비싼 거 먹었는데.. 그때 화장실에서 거울을 보지 말았어야 하는 건데 아깝다. 그 다음날 다시 머리를 감으니 괜찮아 보였다. 사소한 이유로 어제 하루를 망쳤다.


그때 거울을 보지 않았다면 저녁시간 내내 행복했을 것이다. 너무 큰 손실이다. 어느 순간, 내 행복을 그런 자잘한 것들(헤어스타일, sns구독자 확인 등)이 다 막고 있단 생각이 들었다. 이건 물리적으로도 설명할 수 있을 만큼, 사실인 것 같다.


감사일기를 꾸준히 쓰고 있기에, 마음이 전보다는 평화로워졌다. 하지만 어떤 때는 내 기대만큼 행복이 오지 않아 서운할 때가 있다. ‘자, 이제 좋아하는 사람도 만나고, 맛있는 것도 먹을 예정이니, 행복아 와라 와라. 난 준비가 돼 있어.’ 그런데도 행복은 나를 감질나게 한다.


이제 나의 이 바람이 모순이란 걸 알게 되었다. 외모, 외형 같은 것들에 신경을 쓰면 행복할 수 없다는 것 정도는 알았다. 여러 대상에 집착하면서, 동시에 행복을 바란다는 것이 말이 안 된다. 이건 너무 분명한 인과관계이다. 이제 왜 안 행복하냐고 짜증 안 낼 거다. 그전에 내가 지금 어딘가 집착하는 건 아닌지 확인부터 해야겠다. 행복은 역시 공짜가 아니었다.


창원 반지동 골목



초딩 때 친구의 새 게임기 때문에 친구 집에 놀러간 적이 몇 번 있다. 그때 친구가 짓궂어서 날 계속 괴롭혔던 기억이 있다. 그래도 나는 게임이 재미있어서 참았다. 그러다 도저히 못 참아서 게임이고 뭐고 다 필요 없다. 치사하고 더럽다. 안 한다. 안 해. 하면서 그 집을 뛰쳐나온 적이 있다. 게임 안 하고 맘 편히 사는 게 더 낫지.


그 게임기를 좋아했던 것과 외모에 집착하는 것이 비슷한 것 같다. 외모에 내 호기심이 가지만, 그것 하나로 나는 현재를 잃고, 모욕에 가까운 농락을 당해야 한다. 게임기는 내 것이 아니다. 외모 또한 마찬가지이다. 그건 하나의 이미지일 뿐이고(라캉이 말하는 상상계이다), 매 순간 좋았다 나빴다를 반복하며 나를 농락한다.


그 대상들은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영역이다. 외모에 신경을 쓴다고 하여 근본적인 차원에서 외모가 나아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반면 내가 건강하고 부모님께서 밥 챙겨주시고, 나를 사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런 많은 사실들은 언제든 나와 함께 하는 것이고, 우리 집에 있는 안전한 게임기이다.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이런 부분에 집중하면서, 대상(외모, 구독자 수, 결과..)을 멀리 한다면 행복도 내가 원할 때에 찾아올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사랑, 그 가벼운 것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