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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참새 Sep 07. 2017

답은 정해져 있다

돈이 너무 없다. 친구랑 아무 생각 없이 이바돔 감자탕을 먹었던 게 후회된다. 가난한 친구와 더치페이를 했다. 계산할 때 16,000원 달라고 해서 순순히 줬다. 부끄럽다. 친구가 짜장면 먹자고 했을 때 응했다면 이런 죄책감이 있었을까. 평일 한가한 시간에 시원한 가을바람을 맞으며 용지호수를 걸었는데도 마음이 전혀 기쁘지 않았다. 어느 순간 도서관에서 음료수 대신 정수기 물을 마시기 시작했다.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까?



ㅇㅇ마트 면접을 봤다. 카트, 보안 일을 하는 하청업체에 지원했다. 7~8년 전에도 이 일을 한 적이 있다. 월급은 한 달에 135만원. 근무시간은 오후 3시부터 밤 11시까지 주 5일. 돈이 적고 힘든 일이라고 했다. 외곽지역 까지 카트 수거하면 많이 걸어야 하고, 게이트 앞에 하루 4시간 서 있어야 한다고 했다. 그래도 좋다. 혼자 근무하는 시간이 많아서 생각할 여유가 있다. 밤 11시 마치면 돈 쓸 시간도 없다.


소장은 내 나이를 물었다. 나는 37살이라고 대답했다. 그날따라 내 흰머리가 더 눈에 띄었다. 여기 일하는 친구들이 전부 20~25살인데 괜찮겠느냐고 물었다. 난 상관없다고 했다. 그 소장도 많아봐야 30대 초반으로 보였다. 그가 오히려 나를 불편하게 생각하는 것 같았다. 직원들과 상의해보고 연락을 준다고 했다. 마트에서 일을 해도 걱정이다. 게이트에 서 있는데 아는 여자라도 만나면 어쩌지? 피하지도 못하는데.. 결국 마트로부터 아무 연락이 오지 않았다.


ㅇㅇ백화점 문화센터에 이력서와 강의 계획서를 제출했다. 글쓰기와 인문학 강의로 돈을 벌기 위해서다. 스펙을 적는 칸이 있었다. 난 거기에 지방대를 졸업했다는 사실과 블로그, 브런치, 팟캐스트 구독자가 몇 명이다. 이런 걸 적으면서 채용이 안 되겠구나 짐작은 했지만.. 역시 아무 연락도 없었다.


자비출판 하는 회사에서 내 책을 공짜로 출판을 했다. 구차해서 자세히 이야기하기가 싫다. 여기서는 마케팅을 나 혼자 다 해야 한다. 작가 게시판을 보니 일주일에 책 한 권 팔기도 힘들단다. 지금 내가 쓰는 글들을 출판해도 과연 팔릴 수 있을까? 안 팔릴 거 같다. 지금 이렇게 노력해서 글을 쓰고, 팟캐스트 방송을 하고, 논문도 쓰고 그게 다 무슨 소용인가? 어차피 사람들은 관심도 없을 텐데.



할 수 있는 건 다해본 것 같다.



세상을 잘 몰랐을 때는 버티기가 쉬웠다. 그땐 책만 내면 다 잘 될 것 같았다. 이젠 세상이 생각보다 냉정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두꺼운 구름을 걷어내고, 송곳처럼, 세상에 빨리 내 존재를 알리고 싶은데 다 막혀있는 것 같다. 희망은 금고처럼 굳게 닫혀있는 것 같다. 술자리에서 ㅇㅇ님은 이 세상은 원래 기본 베이스가 고(苦)라고 했다. 그 옆에 있던 분은 아기 낳기가 망설여진다고 했다. 내가 뭔데, 무슨 자격으로 아기한테 고통을 주나? 또 그 옆에 있던 분은 삶이 윤회된다는 것이 끔찍하다고 하였다. 고통이 반복되는 것이 싫다고 하였다. 계속 이런 얘기 들으니 진짜로 인생이 고통뿐이란 생각이 들었다. 기분이 끝까지 내려앉았다.


낮에는 공원에 있는 시간이 많다. 농구를 하거나 생각을 한다.


나는 정말 안 되는 건가? 내 능력에 한계가 있는 건가? 작가로도, 강사로도 성공 못하나? 차라리 내 주제를 빨리 알면 이렇게 고통스럽지는 않을 텐데. 이 상황을 타개하려면 빨리 일자리를 구해야 한다. 뭐라도 일을 하고 돈을 벌면 이 쓸데없는 생각의 블랙홀에서 벗어날 것을 알고 있다. 지금 내 느낌과 생각을 믿지 말자. 눈과 귀를 막자. 요즘 안 좋은 상황들이 겹쳐서 일어나서 그런 것이다.



이제 어떻게 할까?



그냥 좌절하고만 있을까? 그건 분명히 아니다. 진짜 진실은 내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렇지도 않게 글을 계속 쓰는 것이다. 결과에 상관없이 꾸준히, 열심히 하면 잘 될 수 있다는 것을 머리로 안다. 이 세상에 답은 이미 정해져있다. 대답만 하면 된다. 나는 언제나 그랬듯, 이 방황을 이겨낼 것이고, 다시 밝은 마음으로 살 것이다. 사람들은 뭐가 옳고 그른지는 이미 알고 있다. 답이 정해졌다는 것은 신비한 위안을 준다. 일단 그렇게 바르게 행동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지금 내 상태가 엉망이라도 말이다.


비록, 희미할지라도 우리가 이미 삶의 답을 머금고 있다는 사실에서 신이 우리 마음 안에 있다는 사실을 확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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