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이 너무 없다. 친구랑 아무 생각 없이 이바돔 감자탕을 먹었던 게 후회된다. 가난한 친구와 더치페이를 했다. 계산할 때 16,000원 달라고 해서 순순히 줬다. 부끄럽다. 친구가 짜장면 먹자고 했을 때 응했다면 이런 죄책감이 있었을까. 평일 한가한 시간에 시원한 가을바람을 맞으며 용지호수를 걸었는데도 마음이 전혀 기쁘지 않았다. 어느 순간 도서관에서 음료수 대신 정수기 물을 마시기 시작했다.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까?
ㅇㅇ마트 면접을 봤다. 카트, 보안 일을 하는 하청업체에 지원했다. 7~8년 전에도 이 일을 한 적이 있다. 월급은 한 달에 135만원. 근무시간은 오후 3시부터 밤 11시까지 주 5일. 돈이 적고 힘든 일이라고 했다. 외곽지역 까지 카트 수거하면 많이 걸어야 하고, 게이트 앞에 하루 4시간 서 있어야 한다고 했다. 그래도 좋다. 혼자 근무하는 시간이 많아서 생각할 여유가 있다. 밤 11시 마치면 돈 쓸 시간도 없다.
소장은 내 나이를 물었다. 나는 37살이라고 대답했다. 그날따라 내 흰머리가 더 눈에 띄었다. 여기 일하는 친구들이 전부 20~25살인데 괜찮겠느냐고 물었다. 난 상관없다고 했다. 그 소장도 많아봐야 30대 초반으로 보였다. 그가 오히려 나를 불편하게 생각하는 것 같았다. 직원들과 상의해보고 연락을 준다고 했다. 마트에서 일을 해도 걱정이다. 게이트에 서 있는데 아는 여자라도 만나면 어쩌지? 피하지도 못하는데.. 결국 마트로부터 아무 연락이 오지 않았다.
ㅇㅇ백화점 문화센터에 이력서와 강의 계획서를 제출했다. 글쓰기와 인문학 강의로 돈을 벌기 위해서다. 스펙을 적는 칸이 있었다. 난 거기에 지방대를 졸업했다는 사실과 블로그, 브런치, 팟캐스트 구독자가 몇 명이다. 이런 걸 적으면서 채용이 안 되겠구나 짐작은 했지만.. 역시 아무 연락도 없었다.
자비출판 하는 회사에서 내 책을 공짜로 출판을 했다. 구차해서 자세히 이야기하기가 싫다. 여기서는 마케팅을 나 혼자 다 해야 한다. 작가 게시판을 보니 일주일에 책 한 권 팔기도 힘들단다. 지금 내가 쓰는 글들을 출판해도 과연 팔릴 수 있을까? 안 팔릴 거 같다. 지금 이렇게 노력해서 글을 쓰고, 팟캐스트 방송을 하고, 논문도 쓰고 그게 다 무슨 소용인가? 어차피 사람들은 관심도 없을 텐데.
할 수 있는 건 다해본 것 같다.
세상을 잘 몰랐을 때는 버티기가 쉬웠다. 그땐 책만 내면 다 잘 될 것 같았다. 이젠 세상이 생각보다 냉정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두꺼운 구름을 걷어내고, 송곳처럼, 세상에 빨리 내 존재를 알리고 싶은데 다 막혀있는 것 같다. 희망은 금고처럼 굳게 닫혀있는 것 같다. 술자리에서 ㅇㅇ님은 이 세상은 원래 기본 베이스가 고(苦)라고 했다. 그 옆에 있던 분은 아기 낳기가 망설여진다고 했다. 내가 뭔데, 무슨 자격으로 아기한테 고통을 주나? 또 그 옆에 있던 분은 삶이 윤회된다는 것이 끔찍하다고 하였다. 고통이 반복되는 것이 싫다고 하였다. 계속 이런 얘기 들으니 진짜로 인생이 고통뿐이란 생각이 들었다. 기분이 끝까지 내려앉았다.
나는 정말 안 되는 건가? 내 능력에 한계가 있는 건가? 작가로도, 강사로도 성공 못하나? 차라리 내 주제를 빨리 알면 이렇게 고통스럽지는 않을 텐데. 이 상황을 타개하려면 빨리 일자리를 구해야 한다. 뭐라도 일을 하고 돈을 벌면 이 쓸데없는 생각의 블랙홀에서 벗어날 것을 알고 있다. 지금 내 느낌과 생각을 믿지 말자. 눈과 귀를 막자. 요즘 안 좋은 상황들이 겹쳐서 일어나서 그런 것이다.
이제 어떻게 할까?
그냥 좌절하고만 있을까? 그건 분명히 아니다. 진짜 진실은 내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렇지도 않게 글을 계속 쓰는 것이다. 결과에 상관없이 꾸준히, 열심히 하면 잘 될 수 있다는 것을 머리로 안다. 이 세상에 답은 이미 정해져있다. 대답만 하면 된다. 나는 언제나 그랬듯, 이 방황을 이겨낼 것이고, 다시 밝은 마음으로 살 것이다. 사람들은 뭐가 옳고 그른지는 이미 알고 있다. 답이 정해졌다는 것은 신비한 위안을 준다. 일단 그렇게 바르게 행동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지금 내 상태가 엉망이라도 말이다.
비록, 희미할지라도 우리가 이미 삶의 답을 머금고 있다는 사실에서 신이 우리 마음 안에 있다는 사실을 확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