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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참새 Nov 01. 2017

변해버린 것들

발렛파킹 하다가 어느 외제차 안에서 갑자기 서지원의 ‘내 눈물 모아’ 노래가 나왔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갑자기 눈물이 났다. 이 노래가 나올 당시 나는 짧은 까칠머리의, 키가 쑥쑥 자라던 앳된 중학생이었다. 햇빛이 밝은 창 밖 밖에 자리에 앉아 워크맨으로 음악을 듣고, 가사를 옮겨 적었던 기억이 있다. 그땐 그 어떤 병도, 그 어떤 걱정도 없었던 때였던 것 같다. 그때가 미치도록 그리웠다.     


다 변했다. 이미 변해버린 것들엔 슬픔이 따라다닌다. 오랜 친구들이 나를 간절히 불렀다. 얼굴을 안 본지 꽤 됐다. 그들도 변했다. 피부도, 몸도, 머리숱도 전부 다. 통풍이 어쩌고, 보험이 어쩌고.. 슬펐다. 어릴 땐 내가 변한다는 사실을 몰랐다. 그때는 그저 자라기만 했다. 더 이상 아름답지 않는데 삶이 무슨 의미가 있지? 허무함이 가시질 않았다. 그들은 그래도 삶의 목표가 있었다. 회사에서 진급하고, 월급이 오르고, 아이들을 바라보며 흐뭇해했다. 프로야구 결과에도 화를 내며, 삶에 관심을 보였다. 그런데 난 뭐지? 이 직장에선 19살짜리 애들 월급이 나보다 많다. 난 여태 뭐하고 살았지? 모든 게 다 의미 없고, 시시했다. 정체성이 흔들렸다.     


우울이 위험 수위를 넘을 때가 있었다. 때론 생존을 위해 좋은 생각을 해야 한다. 내가 가진 장점은 무엇일까? 글 잘 쓰는 것. 책 많이 보고, 똑똑한 것. 좋은 부모님을 만난 것. 그리고 지금까지 건강하게 살아계신 것. 착하고 나를 잘 챙겨주는 동생. 내가 좋아하는 라디오와 음악. 나를 응원해주는 친구들. 그리고 얼마 전 비루한 나에게 고백을 해준 한 여성.. 생각해보니 많다. 그래. 부모님이나 친구들은 내가 어떻게 변해도, 어떤 상황이 되어도 나를 사랑할 것이다. 그것은 절대 변하지 않는다. 세상엔 변하지 않는 것들도 있다. 나는 의외로 괜찮은 사람일 수도 있다. 조증이 온 것일까? 그런 생각을 할 때 나는 진심으로 행복했다.     


이 세상은 치열한 싸움인 것 같다. 나쁜 생각과 좋은 생각이 교차하고, 경쟁하여 자리 쟁탈전을 벌인다. 이 싸움이 치열해진 것은 내가 초등학교 4학년 어느 날 때부터였다. 그 전까지 나는 아무 생각 없이, 경쟁 없이, 산에 메뚜기 잡으며 뛰어놀기만 했다. 한 번도 머리에 젤이나 왁스를 바르지 않았다. 그 시절의 공기는 더 맑았고, 폐의 깊은 곳까지 퍼져나갔다. 햇살은 더 따사로웠다. 저녁달은 더 밝았다.     


그 시절 어느 날, 새 옷을 입었는데 거울에 비친 나의 모습은 잘생겼었다. 그때 내가 처음으로 잘 생겼다는 사실을 알았다. 거울 앞에 30분은 서 있었다. 외모에 관심이 생겼다. 중학생이 되면서 첫 시험에 전교생 550명 넘었는데 33등을 하였다. 공부에도 관심이 생겼다. 잠시 잠깐의 행복(옷빨이 잘 받거나, 시험 등수가 잘 나올 때)은 늘어났지만, 세상은 더 복잡해지 시작했다. 그리고 더 이상 햇빛이 선명하지가 않았다. 자연을 응시할 시간이 부족했다. 그때부터 조금씩 삶이 무거워지기 시작했다.     


철학자 라깡은 시험등수나 외모나, 목표 대학이나, 이딴 걸 ‘대상a’라고 불렀다. 이것은 우리가 주이상스(진정한 행복)에 닿지 못하게, 우리를 혼란에 빠트린다고 했다. 나는 대상a의 노예로 살았다. 그리고 모든 행복의 근거를 대상a에서 찾았다. 내가 여자에게 인기가 좋은 이유는 내 외모가 뛰어나서이다. 공부 등수가 높았기 때문이다. 그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유난히 여자를 만날 때에는 거울을 많이 보고, 옷 매무새를 백번도 넘게 고치고, 머리엔 왁스를 남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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