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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참새 Dec 14. 2017

유치한 것이 좋다

농구장에 갔다. 20대에는 농구장도 자주 왔었는데.. 지금은 모든 것이 바뀌었다. 현주엽이 창원 감독이다. 우리 어릴 때는 날아다녔는데 지금은 배가 많이 나왔다. 저 몸으로 예전처럼 덩크슛을 한다면 100% 골대 부서질 것이다. 선수들도 다 바뀌었다. 지금 3점슛 성공하고 포효하는 저 정창영이란 선수는 누구인가? 분명 우리 때는 없던 사람이다. 젊은 선수들 거친 플레이, 숨소리, 고함지르는 모습이 선명하다. 나른했던 내게 활기를 준다.


예전에는 농구 스코어에만 집중했는데, 이젠 사람들 표정이 눈에 들어온다. 아기들 몸짓이 귀엽다. 가족들의 모습이 아름답다. 농구장 이벤트가 신선하다. 그동안 내가 많이 힘들었을까? 왜 소소한 것들이 아름다워 보이는지 모르겠다. 나이 들면 꽃도 예뻐 보인다던데..



치어리더가 예뻐 보인다.



뉴페이스다. 그녀가 가까이 오니 심쿵했다. 나이가 들수록 치어리더에 자꾸 눈이 간다. 네이버에 이름을 검색해본다. 김지혜. 어떤 아저씨는 치어리더 안 볼 때 그녀 뒤테 사진을 찍기도 한다. 나는 그런 짓은 하지 않았다. 추해보일까봐 ㅋㅋ 어쨌든 농구장에는 또 가고 싶을 거 싶다. 하루를 근사하게 보낸 것 같다.


내가 어릴 때는 예뻐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왜 지금에서야 빛이 날까? 문득 궁금해졌다. 나이가 들어서? 내가 20대보다 피부도 안 좋아지고, 흰머리가 나기 시작해서? 그래서 반작용으로 젊고 예쁜 것들이 좋아졌나? 그래서 생기로운 자연도 더 좋아지고? 이건 좋은 걸까? 나쁜 걸까? 그러고 보니 내가 여자들에게 집착했을 때는 내가 결핍이 있을 때였다. 내겐 없던 것을 그녀가 가지고 있을 때, 그녀들을 미치게 원했던 것 같다.


문화센터에서 내가 진행하는 첫 행사가 있었다. 매니저님도, 참가자들도 내가 잘했다고 해주었다. 누군지도 모르는 여성팬 한 분도 찾아와줬다. 하지만 그날 나는 자신에게 실망이 컸다. 잘하고 싶은 마음 때문에 좀 절었다. 사람들에게 잘 보이고 싶어서 정장도 입었다. 그런데 모임 전 거울을 보니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뭔가 의욕이 나지 않았다. 초라한 마음으로 집에 오는데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왜 모든 게 완벽하길 바라지?



남들보다 더 똑똑하고, 어려보이고, 잘생겨 보이길 원했다. 그러다 깨달았다. 그 모임에 온 어느 누구도 다 가진 사람은 없었다. 사람은 누구나 저마다의 콤플렉스가 있을 것이다. 그런데 내가 뭐라고, 왜 나만 완벽해야 하는 것일까? 그건 내 욕심이었다. 만약 신이 정말로 무사공평 하다면 그렇게 한 사람에게만 몰아주진 않았을 것이다. 우리는 완벽함을 추구하기에 불행하다. 우리가 몰라서 그렇지 분명 완벽해 보이는 사람도 단점이 있을 것이다.


내가 젊었을 때에는 외모가 앳되었지만, 지금처럼 지적이진 않았다. 다시 그때로 돌아가라고 하다면 내 지식을 다 포기하고 돌아갈 수 있을까? 아니. 오히려 그때는 하루 한 시간 넘게 거울 본다고 허송세월을 보냈다. 외모 신경 쓸 시간에 책을 읽고, 글을 쓴다면 대학자가 되었을 것이다. 지금 눈에 보이는 젊고, 예쁘고, 잘난 것들도 마찬가지이 다. 그들은 경쟁력이 떨어지는 존재들이다. 이렇게 위안해도 될까? ㅋㅋ



어떤 연말 모임에 가니 사람들이 요즘 유행하는 춤을 추고, 노래를 불렀다. 이들은 뭐가 그리 즐거울까? 그 에너지도 대단하다. 그들은 자기 꿈을 이야기했다. 그 꿈이란 부장 승진이고, 어디 시험합격이고, 뭐 그런 것들이었다. 그들의 표정에는 활기가 넘쳤다. 그런데 나는 왜 이런 꿈들이 소소하게 느껴졌을까? 나는 내가 뭔가 대단한 사람인 것처럼 생각하는 것 같다. 대통령에 출마하거나, 독립운동을 하는 것도 아닌데.


이 비슷한 감정을 느껴본 적이 있다. 초딩 때 친구들이 선생님에게 ‘참, 잘했어요’ 도장을 받기 위해 길게 줄을 섰다. 나는 (이미 숙제를 다 했으므로) 줄서서 검사를 잘 받지 않았다. 귀찮았다. 운동회 때도 마찬가지였다. 청군, 백군 팀을 나누어 목이 쉬도록 응원을 하고, 1등 하기 위해 죽자고 뛰었다. 도대체 왜 저렇게까지 하는 것일까? 그게 무슨 의미가 있다고.. 친구들이 작은 것에 성의를 다하고, 기쁨을 느낄 때 나는 그들과 거리를 둔 채로 냉소를 띠었다.


그 모임을 나온 후 내가 우울해졌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 나도 공무원 시험이나, 취업이나, 연애에 목숨을 걸었을 때가 있었다. 중고차라도 한 대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기대도 있었다. 그래도 그때는 적어도 지금보다 더 부지런하고, 에너지가 넘쳤던 것 같다. 어쩌면 그때가 더 좋았다. 그래, 그런 세속적인 것들이 유치하지만, 그래도 작은 것에 행복해하는 이 사람처럼,



나도 유치하게 살자!



작은 것에도 최선을 다하고, 소소한 것에 행복을 느끼자, 말로만 감사하지 말고, 내 팬 한명 한명에도 감사하는 삶을 살아보자. 청군, 백군 응원도 하고, 친구따라 줄도 길게 서보자. 


나는 채사장을 부러워했다. 나와 동갑인데 그는 벌써 성공했고, 돈 걱정도 안 할 것이다. 그저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요즘은 생각이 달라졌다. 그는 결핍이 적기에 팬 한 명에 나보다 감사함을 덜 느낄 것이다. 돈 1억이 주는 의미도 나와 다를 것이다. 성공한 의사나 판사가 길거리 붕어빵맛을 음미하고 먹을까? 그들은 헤어진 여친을 얼마나 추억했을까? 평범한 사람은 평범한 사람을 자세히 사랑할 수 있다.


사람이 나이가 들수록 꽃도 예뻐 보이고, 젊은 선수들이 좋고, 치어리더가 좋아 보이는 것처럼, 결핍은 더 풍성한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무미건조한 대상들이 어느 날 꽃이 되어 내게 왔으니 얼마나 기적인가. 이것은 신이 정한 형평이다. 그래서 내가 아직 성공하지 못했다면, 세상의 더 큰 아름다움을 누릴 확률이 높아진다. 그래서 나의 결핍에도, 나이 듦도, 그래서 누리는 삶의 소소함에도 더 감사하자.


나는 더 큰 실패에도 글을 계속 쓰고, 팟캐스트 녹음하고, 책을 낼 것이다. 요즘 든 생각은 ‘버티는 사람이 성공한다!’ 이다. 그래 버티기만 하면 어떻게든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현재를 즐길 수 있어야 한다. 이 유치하고, 소소한 현재라도, 만족하면서 버티면 되는 것이다. 그게 최선이고, 다른 길은 없다.


‘왜 빨리 성공하지 않는 거지?‘ 짜증내면서 현재를 죽일 필요가 없다. 우리가 사는 진짜 목적을 생각하자. 인생은 과정이다. 결핍을 음미하며 앞으로 나아가자. 빨리 게임 퀘스트 다 깬다고 좋은 게 아니다. 삶의 진짜 고수들은 저렙을 오히려 즐길 줄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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