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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참새 Dec 28. 2017

행복은 외부에서 오는 것일까?

멍 때리는 오후, 베란다에 햇빛이 가득한 날이면 생각나는 사람, 고등학교 때 짝사랑에게 전화를 했다. 그녀는 결혼해서 아이가 셋이다. 내 전화를 친절히 받아준다. 그녀는 기억할지 모르겠지만, 어릴 적에도 그녀는 내 말이라면 최선을 다해 들어주려 애썼다. 그녀는 소소한 이야기를 이어간다. 그녀 딸이 끈적한 괴물 장난감을 사달라하여 문방구에 갔단다. 딸의 친구들도 함께 있어서 그 아이들 것까지 사주었단다. 집으로 가려고 하니, 그 아이들이 배고프다하여 다 데리고 맥도날드에서 불고기버거 세트까지 사주었단다. 맥도날드에 가니 내 생각이 났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그녀는 내 책에 사인도 받아야하고, 자기 엄마 책도 새로 나와서 내게 주고 싶단다. 그녀에게 조만간 만나자고 하니, 아이들이 방학을 해서 애 셋과 다 함께 만나면 어떠냐고 한다. 나는 괜찮다고 했다. 과연, 괜찮을까?ㅋㅋ 큰 딸이 12살이라고 한다. 그 아이에게 나는 무어라고 소개를 해야 할까? 이런 아저씨가 애들과 무슨 대화를 할까? 상상해보니 재미있다. 그녀는 우리가 처음만난 17살 때 앳된 시선으로 나를 바라본다. 그녀는 그동안 내가 차가운 사람 틈 사이로 어떤 시선을 받으며 살았는지 알까?



그녀는 20년 전에도 나를 살리고, 지금도 나를 살리고 있다.



나도 그녀처럼 되고 싶다. 사람들에게 따스하게 기억되고 싶다. 단 한명에게라도. 어쩌면 그런 목표가 나를 살리는 희망이 되지 않을까? 2차 세계대전 당시, 아우슈비츠 감옥의 빅터프랭클은 동료들에게 그곳을 탈출하자는 제안을 받았다. 그는 망설였으나, 결국 그곳에 머물며 의사로서 환자들을 한명이라도 더 살리다죽는 쪽을 택했다. 전쟁은 언제 끝날지, 살아나갈 희망도 안 보이는데 왜 살아야 할까? 정체성에 흔들렸을 때도, 주위에 매일 사람이 죽어나가는 그 상황에서도, 자신이 살릴 수 있는 한 사람, 한 사람에게만 집중했다. 그때는 죽음의 두려움도, 정체성의 희미함도 중요하지 않다.



지옥 속에서도 희망은 있었다.



나의 힘듦은 빅터프랭클이 겪은 비극에 비하면 장난이다. 힘들 때마다 죽음에 가까웠던 그를 떠올린다. 일이 안 풀려 불안하고 우울한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죽음명상을 하는 어느 스님처럼 매일 나를 죽이고, 숙주를 죽여 세균이 번식 못하도록 한다. 그리고 좋은 느낌에 집중한다. 계속 반복되지만, 그렇게 버티는 것이 정답이다.


부재중 전화가 왔다. 다른 지점 문화센터 매니저님이었다. 내 강의에 관심이 있고, 다른 곳에도 소개하고 싶다고 했다. 이야기가 잘 되어, 2월부터 다른 지점, 경남을 벗어난 지역에서도 강의를 한다. 글쓰기와 심리학 주제 2개 강좌이다. 어쨌든 잘됐다. 기분이 다시 좋아졌다. 인간은 결국 환경에 따라 생각을 하게 될까? 일이 잘되면 좋은 생각하고, 안 풀리면 나쁜 생각하고?



결국 행복은 외부에서 오는 것일까?



(뒷 이야기도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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