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점 발렛파킹 알바 이야기 中

by 참새

곧이어 근무가 칼같이 시작된다. 사람들이 백화점으로 몰려든다. 내가 밟고 있는 선은 돈을 벌기 위한, 고되고 기약 없는 영토이다. 반면, 불과 1미터 밖으로 지나치는 고객들은 쇼핑을 위한, 안락한 시간을 만들고 있다. 나른한 아침에 영화를 보러 오는 사람들에게 무슨 걱정이 있을까? 그 선이 너무 가까워 내 정체를 잃을 때도 있었다. 아기를 데리고 나선 가족들의 모습을 보면 미소가 나왔다. 나도 언젠가 저들처럼 평범한 삶을 살 수 있을까? 누군가를 책임지고, 사랑스러운 이들에게 사랑받을 존재가 될 수 있을까?


KakaoTalk_20180130_183202515.jpg 당시 근무복 입고, 사진 못찍어요ㅠ



벤츠, BMW, 아우디, 포르쉐, 마세라티, 링컨, 볼보, 랜드로버 등 수많은 외제차를 운전했다. 페라리, 벤틀리 이상은 내 직급이 올라가야 탈 수 있었다. 처음에 고급 차를 운전할 때에는 설레고 긴장되었다. 그런데 하루에 100대 이상의 차를 토할 정도로 운전하고 나니 별 감흥이 없었다. 소나타나 그랜저가 경차 느낌이 날 정도로 가볍게 느껴졌다.


백화점에는 MVG들이 있다. 수도권에는 연 3천~5천만원 이상 그 백화점에서 물건을 사야 그 자격이 주어진다. 지방에 있는 우리 백화점은 연 2천만 원만 쓰면 된다. 실제로 백화점의 MVG들이 전체 매출의 80%을 이상을 차지한다고 한다. 그래서 그들의 주차를 도와주고, 그들만의 쇼핑공간과 휴식공간을 따로 제공하는 것이다.


MVG들 중 1층에 아무렇게나 주차를 하는 사람이 많다. 좁은 통로를 따라 지하까지 내려가기가 귀찮은 것이다. 그들이 차키를 차에 놔두고 내리면 우리는 그 차를 운전해 지하주차장에 주차한다. 하루에 200~500대의 차를 5명이 운전한다. 고객들이 쇼핑이 끝나고 1층으로 다시 나오면 그 차를 1층 MVG라운지로 옮긴다. 그게 우리 일이다. 그들은 커피를 마시거나, tv를 보거나, 책을 읽으면서 우리가 올 때까지 기다린다.


아침 9시 30분까지 출근해야 했다. 이렇게 규칙적으로 생활해본 지가 얼마 만인가? 일찍 일어나서 명상하고, 감사일기를 쓰고 상쾌하게 하루를 시작했다. 버스를 타고 창밖의 풍경을 눈에 넣으려고 애썼다. 버스에서 같이 내리는 사람들이 많다. 몇몇은 낯이 익다. 같은 템포로 그들과 함께 걸어간다. 반 코스 정도를 더 걸으면 백화점에 도착한다. 그 중간에 넓은 주차장을 지나친다. 항상 그 시간에 청소하는 직원과 마주쳤다. 그 직원은 날씨와 상관없이, 매일 아침마다 주차장을 빗자루로 쓸었다.


우리 회사는 백화점의 하청업체로 수신호, 유도, 안내 도우미, 발렛파킹 등 많은 파트가 있었다. 직원들은 주로 10대 후반 ~ 20대 초반이다. 간간이 나같이 30대들도 있었다. 내 나이가 가장 많은 편이었다. 아침 조회할 때 우리 회사 직원들 다 모이면 30명 정도 된다.


아침 조회 시간은 30분이다. 관리자가 조회를 진행한다. 우리 회사는 하루에도 수많은 일이 일어난다. 어제의 사건, 사고, 컴플레인 등을 아침에 정리해준다. 직원들이 잘못한 일을 질책하고, 잘한 부분에 대해서는 칭찬을 해준다. 중, 고등학교 때 선생님의 훈화 말씀같기도 하다.


20 후반의 예쁜 관리자가 기억난다. 그녀는 똑똑하고 진급도 빨랐다. 운전도 나보다 잘했다. 카리스마도 있고, 어떨 때는 무섭기까지 하였다. 왜 여기서 이러고 있는지 항상 의문이었다. 그녀는 자세를 우리에게 두 손과 다리를 공손히 모으고, 자세를 바로 해라, 목소리를 크게 해라, 자, 그렇게 혼자 생각하고, 판단 내리지 말고 FM대로, 내가 시키는 대로 해라. 그러면 진급하고 상도 받을 수 있다고 설교했다. 가끔 그녀의 말에 빠져들 때가 있었다.


정말 그녀 말만 잘 들으면 인생 잘 살 수 있을까? 아무 생각 없이 그저, 시키는 대로, 착하게 살면 될까? 그런데 왜 그때 눈물이 나려고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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