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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참새 Mar 18. 2018

공황장애의 끝 1 _ 공황의 메커니즘

새마을호를 태어나 처음 탔다. 마지막으로 기차를 탄 게 언제였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10년이 넘었을 것이다. 친구와 대구로 가기로 했기 때문이다. 대구콘텐츠코리아랩에서 하는 독립출판 행사가 있었다. 친구는 인문학을 하는 사람은 기차를 타야 된다면서, 예매를 해버렸다. 공황이 올까 봐 기차 타는 것이 망설여졌지만, 친구에게 내 상황을 구차하게 설명하기가 싫었다. 나는 말로는 공황을 완치했다고 하면서 막상 불편한 시도(여행, 답답한 곳, 낯선 것을 접하는)엔 주저했다. 그래! 이젠 도전해보자.


새마을호는 쾌적했다. 이렇게 좋은 기차가 있다니. 처음엔 긴장했지만, 기차 안에서 아이들이 장난치는 모습을 보니 이내 평화를 찾았다. 아름다운 풍경에 눈이 갔다. 그래! 익숙한 공간을 벗어나도 괜찮았다. 여행이란 설레고 좋은 것이다.


우리는 동대구 신세계백화점에서 현대문물을 보았다. 이렇게 어마어마한 백화점이 있다니 놀라웠다. 백화점 안에 아쿠아리움이 있었고, 옥상에는 쥬라기공원이 있었다. 창원을 벗어나니 새로운 세상이 있었다. 우리는 경북대학교까지 걸어갔다. 예전엔 낯선 것에서 오는 공포가 심했지만, 이것도 여행이라고 생각하니 견딜만했다. 경북대 학생식당에서 밥을 먹고, 교내 박물관을 구경하였다. 행사장으로 가는 길에 비가 오기 시작했다.


동대구 신세계 백화점 옥상
동대구 신세계 백화점 내부


그냥 비가 아니었다. 명암이 더 어두웠다. 세기말적인 느낌이 났다. 바람도 세차게 불었다. 우산이 반대로 접혔다. 그로데스크했다. 공황이 오기 딱 좋은 날씨이다. 하지만 난 참았다. 난 즐겁게 여행을 온 것이다. 만약 여기서 무너지면 다시는 여행을 못 갈 것 같았다. 언젠가 유럽까지 비행기타고 가야 하는데.. 이 정도는 이겨내야 했다.


독립출판 행사는 레크리에이션으로 시작했다. 팀을 나눠서 눈치게임을 했다. 나의 양쪽에 20대 여성들이었다. 손을 잡고 동시에 숫자를 외쳐야 했다. 남녀가 손을 잡다니!! 대구는 창원보다 더 개방적인 것 같다. 오른쪽 여성과 손이 닿았을 때 찌릿했다. 나는 불편하게 손을 잡는 척만 했다. 그러자 그녀가 과감하게 내 손을 꼭 잡았다. 이럴 수가! 얼마 만에 잡아보는 여자 손인가!? 갑자기 예전 여자친구의 손을 잡았을 때가 생각났다. 딱 그 촉감이었다. 어떡하지? 설레었다. 계속 이런 기분을 느껴도 되는 건가? 솔로가 길어져서 이 작은 스킨십 하나에도 마음이 녹아버린 걸까? 게임을 하는 동안 계속 기분이 좋았다.


나는 이렇게 그녀와 헤어지고 싶지 않았다. 전화번호라도 물어보고 싶었지만, 괜히 작업하는 것처럼 보일까 봐 망설여졌다. 나이 차이가 많이 났다. 아니다. 그녀는 내가 동안이라고 해줬다. 만약에 잘 되어도 걱정이다. 그녀를 보러 대구까지 어떻게 오려고. 별생각을 다 한다. 아, 결국 연락처를 못 물어봤다. 우리는 이대로 끝인가요?ㅠ 분명히 그녀의 눈에서도 아쉬움이 보였는데.. 그게 아니라면 내 손은 왜 꽉 잡은 거지? 이 모든 것이 내 착각일 수도 있다 ㅋ


잊고 있었는데 밖의 날씨는 더 악랄해졌다. 거세게 비바람이 쳤다. 사람들과 헤어질 때가 되니 무사히 집에 갈 수 있을지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친구와 나는 지하철을 타고 대구역으로 갔다. 낯선 곳에서 무려 지하철을 타고 시내를 돌아다니다니. 독립책방 구경을 한 뒤, 국밥집에서 밥을 먹었다. 친구가 하필 선지국밥을 시켰다. 나 선지 목 먹는데. 내가 안 시켜서 몰랐다. 국밥엔 손을 거의 안 대고, 밥만 먹었다. 집에 갈 때 또 기차를 탈 것을 생각하니 내 마음이 무너졌다. 공황이 있는 사람들은 이 혼미한 느낌을 알 것이다. 겨우 진정하고, 기차를 타러 갔다. 나는 끝까지 내가 불편하다는 사실을 친구에게 말하지 않았다. 그저 오늘 재미있었다고, 좋은 경험이었고, 좋은 여행이라고 친구에게 감사하다고 말했다. 그래, 어쩌면 좋은 여행일수도 있다. 이 부정적 느낌만 기억에서 제거된다면 말이다. 오늘 있었던 새로운 경험 자체는 좋았다.


두 가지 결론이 있을 수 있다. 이 여행이 트라우마로 남는다면, 나는 한동안 밖을 못 나가고 집에서만 있을 것이다. 반대로 이 상황을 좋은 추억이라고 여긴다면, 다음에는 비행기 타는 것까지도 도전할 수 있을 것이다. 자, 이 두 가지 결론 중에서 우리 무의식은 무엇을 선택하게 될까? 심리학자 윌리엄 글래서는 우리의 감정은 다 우리 무의식이 선택한 것이라고 한다.


우리 마음속에는 우리의 의사를 물어보지 않고 자기가 원하는 대로 스토리를 쓰는 작가(무의식)이 있다. 결말을 선택하는 기준이 있다면, 어떤 결말이 더 강렬하고 인상적인지, 더 매혹적이고 여운이 있을지를 고려한다는 것이다. 이건 힘의 논리처럼 보인다. (20대 여성과 손잡고 있을 때는 내 무의식은 공황을 선택하지 않았다.) 그 작가에게 매력적이라고 해서 우리가 좋은 것이 아니다. 소설 소나기와 같은 일이 우리 자신에게 일어났다고 생각한다면 엄청난 비극이다. 하지만 작가(무의식)는 비극도 좋아한다.


우리는 자신을 파괴하는 선택을 자주 한다. 그것이 가져다주는 쾌락적인 요소도 있다. 가령 공황이나 우울을 선택하고, 다이어트도 포기한 사람이 있다고 치자. 그 사람은 이제 잠을 많이 잘 수 있어서 좋고, 술을 많이 먹고, 야식도 먹어서 좋을 수도 있다. 우리는 그게 싫을 수도 있지만, 또 다른 내 마음은 편한 것이 좋을 수도 있다.

또 우울이나 공황을 선택하는 요소는 뭐가 있을까? 아들러는 우리가 나쁜 감정을 선택하는 이유가 사람들에게 관심받기 위해서, 복수하기 위해서, 남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서, 아무 것도 하기 싫어서 등의 이유로 설명한다. 이것은 우리의 무의식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여자 후배가 아직도 꿈에 나온다. 그녀는 공무원 시험에 먼저 합격하고 조금씩 멀어지더니, 결국 나를 차단하였다. 나는 어쩌면 (무의식적으로) 그녀에 대한 복수의 마음을 가질 수도 있다. 나를 더 파괴시킴으로써, (그녀가 나를 떠나서) 내가 엉망이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그녀는 미안함을 느낄 수도 있다. 그것도 하나의 유혹이다. 프로이트 식으로 설명하면 조민기가 자살한 것도 무의식적으로 제자들에 대한 복수의 마음도 일부 있을 수도 있다. 프로이트는 자살은 180도 돌아선 살해라고 했다.


나 자신을 우울하게 만들고, 공황장애에 시달리게 만듦으로써 다른 사람들에게 나를 바라보게 만들 수 있다. 그리고 내가 아프다고 호소하면 나를 더 잘 돌봐준다. 나는 하기 싫은 일을 안 해도 된다. 술을 마셔도 된다. 그리고 내가 원하는 관계를 만들 수도 있다. 무엇보다 내게 상처를 준 사람들에게 복수를 할 수 있다. 물론 너무 유치하지만, 우리의 분명한 무의식이다. 혹~시나 나에게 이런 마음이 있지는 않은지 분석이 필요하다.


그녀에 대한 진짜 복수는 무엇인가? 나를 망가뜨리는 것? 아니다. 나는 능력이 있고, 뭐든지 할 수 있는 사람이다. 내가 더 멋진 사람이 되어서 그녀 앞에 나타나는 것(그 정도되면 그녀 앞에 나타날 필요도 없다)이 더 멋진 복수가 될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합리적으로 생각을 조금만 해봐도 알 수 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더 성장하지 않으면 근본적으로 아무것도 변화시킬 수 없다. 자신을 파괴 시킨다고 남들이 과연 우리를 얼마나 애도할까? 얼마나 관심 가질까? 차라리, 우리가 더 성장해서 앞으로 나가는 것이 그들에게 더 관심받는 행동이 아닐까?


자 다시, 선택해보자. 무의식아, 공황을 선택할래? 아니면, 새로운 도전을 선택할래? 자, 이제 뭐가 더 좋은 선택인지 알겠지? 우리는 이렇게 좋은 선택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윌리엄 글래서가 우울증 환자들에게 가장 많이 하는 말은 그런 (부정적) 감정의 선택이 당신에게 진짜 도움이 됩니까? 하고 물어보는 것이다. 실제로 그런 것들이 나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면 우리는 그때부터 변하게 된다.


나는 대구에 다녀 온 다음 날에도 아무렇지도 않게 농구를 하고 도서관에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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