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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참새 Apr 12. 2018

행복의 공식

도서관 커피숍에서 토스트를 먹고 있는데 한 여성분이 내게 인사를 했다. 누군지 기억이 나질 않았다. 나중에 물어보니 어떤 모임에서 내 강의를 들었단다. 최근 특강에 16명이 왔다. 수강생 중 한 분은 내 독서모임에도 신청했다. 나를 알아보는 사람들이 은근히 보인다. 최근 기쁜 일은 10여년 전 같은 과 대학교 후배가 내 글을 보고 나를 기억해준 일이다.


한 신문사에서 전화가 왔다. 5월부터 새로운 계약을 한다. 서평 하나에 10만 원씩 받게 됐다. 다음 달에는 4번의 특강이 있다. 대구 칠성, 율하점, 울산 문화센터에도 간다. 6월부터는 두 군데 문화센터에 정규강좌를 개설한다. 드디어 돈 문제가 해결되어 간다. 새로운 시도도 계속한다. 유튜브 개정을 만들었다. 앞으로 라이브 방송을 통해 독서모임, 심리상담, 인문학 강의도 할 예정이다. 사람들은 이미 내가 훌륭하다고 한다. 구독자가 꾸준히 늘고 있다. 암튼 다 좋은 일뿐이다.



하지만 나는 분명히 행복하지 않았다.



대니님을 만났다. 우리는 한 달에 한 번 만나 철학을 이야기한다. 이번엔 ‘행복의 공식’이 주제였다. 어떻게 하면 우리는 행복할 수 있을까? 수 세기 동안 이어진 이 논쟁의 결론은 무엇일까? 나는 잘 버티고 있고, 대체로 잘살고 있다고 말했다. 그래, 나쁘지 않다. 행복의 공식도 찾았다. 하지만 완전히 행복하기엔 20% 정도가 부족하다고 말했다. 그 답을 찾기 위해 다시 만나기로 했다.


대니님은 과거 때문에 힘들었다고 하였다. 그분은 불행의 원인은 과거에 대한 집착과 후회에서 나온다고 하였다. 미래를 생각하는 사람들은 행복하단다. 그런 면에서 항상 미래를 이야기하는 나는 행복한 사람이라고 하였다. 심리학자 윌리엄글래서도 같은 말을 했다. 그는 환자들에게 항상 이런 말을 했다. ‘그래서 내일은 무엇을 한 건가요?’ 그 질문에 답을 하기 위해서라도 환자들은 할 일을 생각해야 했다. 물론 계획이 있다는 것 자체로 기분 좋은 일이다.


민수가 찍어준, 진짜 나 같은 사진. 


집 앞 공원에서 할아버지들이 테니스를 치는 것을 바라보았다. 거의 제자리에서 오는 공만 받아치셨다. 저분들은 무슨 고민이 있을까? 저 연세에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한다는 고민이 있을까? 그저 오늘 하루 건강하게, 즐겁게 보낸다면 그게 전부이지 않을까? 마치 우리 어릴 때처럼.


그때 내가 어떤 압박에 시달리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누구도 강요하지 않았다. 내가 다 자초한 것들이다. 나는 밝은 미래를 두고도 행복하지 않았다. 불안과 강박이 더 컸다. 내 멘탈이 원래 약하기 때문일까? 요즘 현재에 집중이 잘 안 되었다. 명상할 때에도 딴생각이 나고 집중이 안 되었다. 이것은 모두 최근에 일이 잘 풀려서 미래만 생각했기 때문일까? 윌리엄글래서의 말에 의문이 들었다.


걷기 명상이 답일까?


지워지지 않는 이 불안을 없애기 위해서는 단순한 명상만으로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젠가 틱낫한 스님이 걷기명상을 하는 것을 보았다. 산속을 걸으면서 명상하는 것이다. 세 걸음 걸으면서 숨을 들이마시고, 세 걸음 걸으면서 숨을 내뱉었다. 집으로 오는 길에 다시 불안해졌다. 원인을 알 수 없어 답답했다. 그때 오늘만큼은 행복하기로 했다.



나는 모든 것을 멈추었다. 브레이크



그래, 나는 지금부터 2시간 안에 행복해질 거야. 오늘 하루만, 아니, 지금 이 순간만이라도 행복했으면 좋겠다, 오늘 밤에 잠이 들 때는 긴장을 풀고 편안히 잠들었으면 좋겠다. 간절했다. 한 코스 먼저 내렸다. 가로등에 달빛이 새어 나왔다. 그 빛은 나무를 비추었고, 연두색 나뭇잎은 바람에 흔들렸다. 천천히 걸었다. 숨을 들이마셨다. 천천히 내쉬었다. 팔을 뻗어 바람을 느꼈다. 두 시간 동안 어떤 의무도, 미래도 다 찢고, 구겨서 버렸다. 지금 이 순간만 의식했다. 자연만 응시했다. 인간은 자연 일부다. 물아일체의 경지까지 집중했다.



나는 분명히 행복해졌다. 오전에 먹은 프로작 때문인지, 걷기 명상 때문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확실한 것은 오랜만에 깊은숨을 쉬며, 편안히 잠들었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최근에 단 한 번도 현재를 바랐던 적이 없었단 걸 깨달았다. 이렇게 작정하고 현재를 바랐던 것이 얼마 만인가? 내가 공황이 심했던 때는 노숙자처럼 벤치에서 몇 시간씩 머물며 현재만 바랬던 적도 있었다.


대니님에게 행복의 공식을 설명했다. 그 답은 ‘현재를 바라야 한다는 것’이다. 좋은 미래에 대한 기대도 좋지만, 내가 현재를 기대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내가 좋은 일이 생긴다는 것 자체로는 내 정체성을 설명할 수 없다. 진짜 나는 현재에 있으며, 현재 내 시선이 머무는 것에 있다. 우리가 바라는 미래의 것은 다 신기루이며 공(空)이다. 노트에 이렇게 적어 대니님에게 보여줬다.



‘지금 이 순간만 행복할 수 있다면, 미래의 모든 일이 잘 풀릴 것이다.’



내가 걷기명상을 하며 되뇌었던 말이다. 사람은 본성적으로 두 가지를 바란다. 하나는 미래의 행복, 그리고 현재의 행복이다. 우리는 두 가지를 다 추구해야 한다. 하지만 현재는 절대 미래의 수단이 될 수 없다. 이제 현재에 불안해하면서 미래의 행복을 추구하지 않을 것이다. 나의 우선은 현재이다. 현재가 행복해야 미래의 일이 잘 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비효율적으로 보이더라도 먼 거리를 돌아, 한 시간이 걸리든, 두 시간이 걸리든, 행복해질 때까지 걸으면서 명상을 할 것이다. 어차피 지금 행복하지 않으면 미래의 성공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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