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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참새 May 05. 2018

사랑 같은 건 없다

에리히프롬의 '사랑의 기술'을 읽고 

길을 가다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커플을 봤다. 남자는 잘생기고 키가 크다. 여자는 아담하고 예쁘다. 둘 다 패션이 장난 아니다. 빛이 난다. 내 친구는 그 커플이 좋아 보인다고 했다. 나는 아니다. 나는 시기, 질투한다. 장담컨대, 저 커플을 보고 힘들어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얼마 전에는 한 선남선녀 커플이 공공장소에서 뽀뽀를 하였다. 저런 짓도 하면 안 된다. 이 세상에 모쏠도 많은데, 저런 모습은 솔로에게 자괴감을 준다. 저런 거는 법적으로 처벌할 수 없을까? ㅋㅋ 우리는 좋은 커플을 보면 나도 저렇게 예쁘고, 잘생긴 사람과 사랑을 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상상한다. 그리고 언젠가는 그런 일이 자신에게 일어날 수도 있을 거라고 기대한다.


친구에게 전화하였다. 이 친구는 대기업 다니고, 좋은 아파트도 가지고 있다. 다 가졌는데, 여자가 없다. 내가 질문을 했다. “만약 누군가 너를 좋아한다면, 너는 그 사람과 결혼할래?” 그러자 친구는 “니 너무 비현실적인 질문을 하는 거 아니가? ㅋㅋ 그런 일은 없다. 진짜 만약에 그런 사람이 있다면 당연히 잡아야지!”


이 친구는 100번이 넘는 소개팅을 했을 것이다(과장이 아니다). 만약 운명적인 이성이 있는 거라면 상황이 이렇게까지 될 리가 없다. 친구는 만약에 너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면 무조건 잡으라고 했다. 친구는 “네 나이도 낼모레 마흔이다. 이 세상에 이상적인 사람과 사귄다는 것은 없다. 딱 두 가지다. 그 사람을 잡든가, 아니면 혼자 살든가. 내를 봐도 모르겠나?”


내가 본 젊은 커플은 그저 환상이다. 많은 이들에게 고통을 주는, 헛된 기대를 하게 만드는 공공의 적일 뿐이다. 현실에 저런 사랑은 없다. 저들이 어리기 때문에 저런 사랑이 가능한 것이다. 스무 살들이 하는 사랑은 원래 그렇다. 자본주의가 뭔지 모른다. 그저 눈에 보이는 예쁜 모습만으로 사랑한다.


창원의 빌딩 숲을 걸었다


좀 더 복잡한 사회로 들어서면 현실이 보인다. 못생겼지만 성공해서 돈이 많은 남자는 예쁜 여자를 찾을 것이다. 여자도 마찬가지이다. 나이를 먹으면 이성을 대할 때 돈뿐만 아니라 보는 것이 많다. 집안, 지위, 교양, 건강, 사주, 성격, 형제 관계, 종교, 취미, 직업, 나이.. 이런 다 맞추다 보면 소개팅을 100번 넘길 수도 있다. 서로 마음에 드는 사람은 없다. 내가 그 사람이 마음에 들면, 그 사람이 나를 싫어한다. 그 사람이 나를 좋아하면 내가 그 사람이 싫다. 시간이 더 지나면 나를 좋아하는 사람도 없어진다. 서로 싫어한다. 이게 레알 현실이다.



“사랑 같은 게 있긴 있나요?”



에리히프롬의 ‘사랑의 기술’ 모임에서 나는 갑자기 이런 말을 했다. 솔직히 그날 나의 결론은 ‘사랑은 없다’였다. 에리히프롬은 진정한 사랑은 목발 없이 걸을 수 있는, 자립적인 상황에서 나온다고 하였다. 그래, 나도 사랑을 했다. 그땐 내가 결핍이 있을 때였다. 내가 부족해서, 자존감이 낮고, 그래서 그녀를 간절히 원할 때 사랑을 느꼈다. 그땐 그녀에게 집착했고, 부담을 주었다. 그녀의 서운한 행동에 삐지고 화를 냈다. 그건 사랑이란 이름의 폭력이었다. 진짜 사랑이 아니었다.


그러다 잘못을 깨닫고 나 자신을 찾았다. 자립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자존감도 회복했다. 누구에게도 의지하지 않게 되었다. 그런데 그렇게 되자 외로움은 있었지만, 예전처럼 간절히 누군가를 원하지는 않았다. 사랑이 잘 느껴지지 않았다. 에리히프롬은 자립할 때에야 남에게 부담을 주지 않는, 성숙한 사랑을 할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막상 자립하고 나면 내가 결핍이 없으므로 사랑 또한 존재하지 않는다. 누군가를 탓하고, 집착할 때의 진한 감정은 일어나지 않았다. 이건 모순이다. 어쩌면 사랑이란 프로이트가 말한 대로 정상적인 것이 아닐 수도.


내가 존경하는 작가님도 사랑 따위는 없다고 했다. 처음엔 외모에 반하고, 사랑해서 결혼했지만, 결혼하고 나니 그 감정이 사라졌다고 했다. 그냥 한 인간으로서, 정(情)으로 산다고 하였다. 서은국 교수는 감정은 필요성에 의해서 생긴다고 했다. 그 사람을 필요로 할 때는, 그것이 나의 유전자를 퍼트리거나 생존에 더 유리하다면, 뇌하수체에서 도파민이 나온다. 그 호르몬이 상대를 간절히 원하게 만든다. 그것이 사랑이다. 하지만 결혼하고 나면 상대를 더 이상 유혹할 필요가 없기에 도파민이 잘 나오지 않을 것이다. 결국, 사랑은 사라진다. 부부나 연인이 밀당하는 이유는 자신을 유혹할 필요성이 남아있음을 애써 어필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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