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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참새 Jul 30. 2015

차마설(借馬說)

황드롱 그림

고딩 때 배운 차마설(借馬說)이 기억이 났다. 

작가가 집이 가난하여 말을 자주 빌려 타는데

여윈 말을 빌렸을 때의 초조한 맘과

날쌘 말을 빌렸을 때의 의기양양함을 경험함을 서론으로

세상사의 본질에 대해 다뤘던 작품이었다.

 

난 아직까지 그 기억을 간직하고 있다.

고려시대의 간략한 수필에 가까운 글이

왜 나한테 그렇게 와 닿았을까??

그 글에는 이런 말이 있다

"사람이 가진것 중에는 빌리지 않은 것이 없다"  


우리는 말(馬)을 다 빌려타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어떤  말을 빌릴 것인지는 우리의 선택이 아니다.

 

우리에게 좋은 말(馬)이 주어질 수도 있다. 

가령 잘 빠진 종마처럼 잘생긴 얼굴, 큰 키..

좋은 외모를 가지고 태어날수도 있다.

게다가 명예로운 집안에 돈까지 많을 수도 있다.

이것은 최대한 좋은 말을 빌리고 세상에 나온 것이다.

 

우리가 이처럼 좋은 말을 빌렸을 때는

아무 어려움 없이 잘 달릴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그런 환경에서 훨씬 잘 달릴 수 있는 것은 부정 못한다.

하지만 그것이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아무리 좋은 말(馬)을 타더라도

말 탄 사람이 조심하지 않으면 넘어질 수도 있는 것이다.

이 세상에 연예인처럼 잘생겼다고 하여

절망하지 않으란 법은 없으며 부자라고 해서 모두가 다 행복한 것은 아니다.

 

반대로 어쩔 수 없이 여윈말을 빌렸더라도

기수가 말을 잘 단련시킨다면 잘 달릴 수도 있는 것이다.

힘들고 어려운 가정에서 태어났다고 하여 그것 때문에 꼭 불행한 삶을 사는 것은 아니다.

 

그런 환경적인 요인은 좀더 유리한 입장이냐 아니냐 하는 것일 뿐이다.

중요한 것은 말을 타고있는 존재이다.

 

우리 대부분은 남들을 볼때,

그의 전체를 직시하는 것이아니라

그들이 타고 있는 말만을보는 경우가 많다.

말 위에 누가 어떤 자세로있는 지는 별로 관심이 없다.

 

심지어 우리가 우리 자신을볼 때도 마찬가지 이다.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보면서 그 모습이 진짜 나라고 착각하고 있다.  

그것이 우리가 빌려 타고있는 말(馬)의 형상이라는 것을 망각한 채 말이다.

 

흔히 우리는 장애인이나늙은 노인들,

병에 걸린 사람들의 외형을보면서 측은지심을 느낀다.  


내가 예전에 장애인시설에서 일을 할 때,

처음에는 그들을 보는 내시선은 동정 밖에는 없었다.

하지만 오랜 세월을 함께하고 나서 내 마음이 점점 바뀌었다.

저는 그들의 진심으로 행복해하는 모습을 가까이 지켜보면서

그들과 삶을 바꾸고 싶을정도로

(그들과 말(馬)을 바꿔도상관없을 만큼)

그들이 부럽게 느껴질 때가있었다.  


만약 그 옛날 부처가 오랜수행 끝에 뭔가를 깨달았다면

바로 그런 것이 아닐까?


이 세상 고통은 우리가 여윈말(馬)을 보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는 것 말이다.  

좀더 눈을 높여 말 위에타고 있는 성숙한 존재를 본다면

우리는 늙고 병들고 심지어죽음을 맞이한 상황 앞에서도

행복함을 느낄 수 있을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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