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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참새 Aug 21. 2015

행복하지 않으면 죽여버리겠다

항상 이렇게밖에 표현 못하지만 10대의 어린 내게 공황은 죽을 만큼 버거운 것이었다. 내가 17살 때도 공황은 자주 일어났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지금 고딩 때를 떠올려보면 힘들었던 기억보다는 친구와의 우정, 첫사랑에 설렜던 추억이 더 선명하게 남아있다. 지금 내 설명이 앞 뒤가 안 맞겠지만, 그때는 내 최고의 고통과 최고의 행복이 공존했던 시기였다. 당시 내 일기에도 이렇게 적혀있다. ‘극과 극은 통한다’고.


행복한 생각을 잠시라도 놓고 있으면 날카로운 불안이 나를 매섭게 파고들어왔다. 당시 내 모든 의무와 미래를 다 버리고 현재에 머무르기 위해서 난 발버둥 쳤다. 그때 나는 이 세상에서 누구보다 하루를 길게 썼을 것이다. 그만큼 매 순간을 음미했다. 마치 괴한이 내 머리에 총구를 겨누고 “네가 행복하지 않으면 쏴 버리겠다고 협박하는 것 같았다.” 난 무서웠지만 살기 위해 약간의 걱정, 잡념까지도 다 버리고 행복해져야만 했다.  


고딩 때 엘리베이터에 갇힌 사고가 있었다. 나는 평소에 폐쇄된 공간에 갇히는 상상을 자주 하곤 했다. ‘만약 좁은 곳에 갇힌다면 답답하고 숨도 잘 안 쉬어지겠지? 추락하면 어쩌지?’ 이런 걱정을 자주했다. 그러다 실제로 엘리베이터에 갇히게 되자 처음 몇 분 동안 정말 기절할 것 같았다. 그 속에서 공황이 올 것 같았다. 머리는 하얘졌고 있는 힘껏 손톱을 깨물었다.


그런데 정신이 번쩍 들면서 그 안에서 얼마나 있어야 할지 모르는데 공황이 일어나면 내가 진짜 위험할 수도 있다고 판단했다. 나는 태어나서 그 시점까지 가지고 있던, 좁은 곳에 갇혔을 때의 안 좋은 이미지를 다 갖다 버렸다. ‘그래 여기는 안전하다. 밖에서 사람 소리도 들리잖아?  곧 누가 와서 구해줄 거야! 괜찮아!’ 한 눈 팔지 않고 오로지 이런 긍정적인 생각들로만 내 뇌를 가득 채웠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그 좁은 공간에서도 평화가 찾아왔다.


공황 때문에 나는 ‘반드시 행복해야 한다’ 는 메시지를 처음 받아들였다. 그 메시지를 받고서야 이전에 내가 한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시간이 거북이처럼 흐르고 새 안경을 쓴 듯 세상이 선명하게 보이는, 흐르는 감정선을 눈 앞에서 주무를 수 있을 정도로 환상적인 시간을 보냈다. 명상을 집중해서 오래하면 얻을 수 있다는 그 ‘열반’을 경험하는 것이 분명하다고 여겼다. 이런 느낌은 공황이 내게 준 선물이었다. 


나는 사람들이 행복하지 않는 이유를 이런 ‘의무’ or ‘협박’ or ‘긴박함’이 없어서라고 생각한다. 프로이트에 따르면 우리에겐 ‘타나토스’가 있어서 사람들은 스스로를 불행하게 만든다고 하였다. 우울증이 있는 사람들은 행복하고 싶다고 말은 하면서도 자기 스스로가 더 우울에 파묻히는 경향이 있다. 주위에서 아무리 긍정적인 말들을 쏟아내어도 스스로 그것을 거부하고 불행하기를 선택하는 것이다. 좀 더 넓게 보면 다이어트를 하고 싶은 사람들이 말만 날씬하고 싶다고 하고 더 폭식을 하는 것과 같다.


다이어트에 성공하는 사람들은 진짜로 살 때문에 숨을 못 쉬고 생명의 위협을 느껴본 적이 있거나 자신의 생존에 다이어트가 반드시 필요한 경우가 많다. 연예인들이 영화 섭외 후에 살을 쉽게 빼는 이유는 그것이 그들의 직업적, 의무적, 생존적인 문제이기 때문이다. 살을 빼야 할 긴박한 필요성이 있기 때문이다. 심리학에서 극단적 우울증을 치료하는 방법도 우울증 환자에게 극단적 심리적 고통을 주는 것이다. 그제서야 사람들은 변할 수 있는 ‘의무’가 생긴다.


우리는 너무 자유방임적이고 느슨하게 살고 있다. 우리에게 자유만이 존재한다면 우리는 타나토스로부터 벗어나지 못한다. 실제로 행복과 건강은 노가다와 같다. 행복 하려면 많은 노동이 필요하다. 사람들은 귀찮아서 그냥 불행하거나 뚱뚱하게 살기를 선택한다. 이렇게 살아서는 우리는 절대 행복할 필요성을 찾지 못한다. 나는 사실 인간이 인간에게 행하는 ‘협박’이나 ‘의무 부여’를 좋아하지는 않지만 단 하나, ‘행복해야 한다’는 협박 정도는 괜찮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사람들이 정신차리고 행복할 수 있다. 불행한 사람들 머리에 총을 겨눌 수는 없겠지만 미래의 사회는 사람들에게 ‘행복해야 한다’는 강한 숙제 정도는 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행복할 필요성을 직접 심어주는 것이다. 미래의 사회는 사람들에게 의무적으로 감사일기를 쓰게 하고, 명상을 하게 하고, 여러 가지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는 미션을 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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