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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참새 Sep 18. 2015

고달픈 생존

‘생존’이란 프로그램에서 대구 지하철 참사 때의 생존자들의 삶을 다뤘었는데, 그 때의 공포에 대한 후유증으로 생존자들 3명이 더 죽고 그들 대부분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로 심각한 정신적 고통을 겪으면서 외출도 제대로 못 하는 등 삶이 마비가 돼 버린 것을 봤습니다. 전 그걸 보면서 이렇게 가정해보았습니다. ‘만약 태어난 지 1달도 안 된 아기가 그 사고 장소에서 그 현장을 목격했다면 그 아이의 삶도 저들처럼 고달파졌을까?’


유럽의 중세 시대 때는 잦은 전쟁과 페스트와 같은 전염병으로 매일 사람들이 죽어나가는, 어떻게 보면 지하철 참사보다 더한 현실 속에서 생활했으나 그들 모두가 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앓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가까운 이웃의 죽음도 그저 매일 보는 일상이라 받아들이고 그들의 생활을 정상적으로 이어갔습니다. 어쩌면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사건은 우리가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큰 재앙이 될 수도 있고 대수롭지 않은 현상이 될 수 있는 것 아닐까요?


부처가 어릴 적 벌레가 새에게 잡아 먹히는 것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는 일화는 유명합니다. 부처는 벌레가 꿈틀거리는 것이 엄청난 고통 속에 몸부림치는 것이라 여겼겠죠. 그런데 그건 신의 영역이고 우리는 정확한 것은 잘 모르지 않나요? 그건 그냥 벌레가 고통 없이 조건 반사적으로 반응한 것일 수도 있죠. ‘벌레가 참 아프겠구나’ 하는 것은 우리의 생각에 불과한 것 아닐까요? 그저 순수한 자연의 섭리일 수도 있는데 말이죠. 벌레뿐만 아니라 인간의 죽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살아있는 동안에는 죽음을 정확하게 경험하지도 못하면서 그저 생각만으로 계속 고통을 만드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그리스의 철학자 피론은 언젠가 배로 여행을 하다가 사나운 폭풍을 만난 적이 있었다. 맹렬한 파도가 선박을 집어삼킬까봐 두려워 승객들은 모두 허둥대기 시작했다. 그런데도 한 승객만은 평정을 잃지 않고 평화로운 표정을 지은 채 구석에 말없이 앉아 있었다. 바로 돼지였다. 생각하는 능력이 인간에게 있는 것은 우리를 고문하기 위해서라고 감히 결론 내려도 괜찮을까? 

– 알랭드 보통의 ‘철학의 위안’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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