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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참새 Jan 04. 2016

나 자신에게 솔직해지자

나는 초딩 때 왕따를 당한 적이 있다. 친구에게 맞은 적이 있다. 예쁜 애를 좋아한다고 애들에게 놀림을 당한 적도 있다. 그리고 말하기 힘든 어떤 일이 있었다. 그 어떤 일은 장면이 끊겨 있어 실제 일어났는지 확신이 안 선다.


‘프로이트의 환자들’이란 책을 읽었다. 책에서 ‘우리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다시 하루를 시작하기 위해 애써 과거의 기억을 지운다’는 말이 있었다. 나도 내 상처들을 지우려 애써 노력했던 것 같다. 사실 나는 트라우마가 존재한다는 프로이트의 말을 믿고 싶지 않았다. 어릴 적 받은 상처들은 그냥 다 지난 일이고 사소한 거라고 믿었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정신건강에도 좋다고 여겼다. 그런데 의문이 들었다. 만약 내 상처가 정말 별 거 아니라면 이렇게 강박적으로 그것들을 피할 이유가 있었을까?


날을 잡아서 내 내면을 정면으로 들여다보았다. 너무 쪽팔리고 내 마음이 아려왔다. 그래도 참고 다시 나를 보았다. 그랬더니 내가 힘들어했던 그 어떤 일이 실제로 그때 일어났음을 알았다. 그리고 어릴 적 몇 가지 장면들이 항상 나를 따라다니고 있었다. 프로이트가 시키는 대로 나는 내 자신을 안아주려 했다.


책에서는 정신분석의 핵심은 ‘인정’이라고 했다. ‘그때 그랬었어. 그런 일이 있었고, 나는 그렇게 했고, 그 사람은 그런 말을 했어.’ 내가 나를 이해하고, 그 창피하고 부끄러운 느낌들을 견뎌줄 수 있어야 한단다. 그렇게 하면 괴로운 반복을 끝내고, 상처를 떠나 보낼 수 있단다. 이런 과정을 거쳐야 과거가 다 지난 일이 되고 사소한 것이 될 수 있단다. (나는 아직도 정신분석을 크게 신뢰하지는 않지만 과거 자신의 핵심적인 트라우마에 대해서는 정신분석적 성찰을 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 프로이트


‘상처’에 대한 인정 이외에도 내 ‘욕구’에 대한 인정이 있다. 프로이트 환자 중에 그 유명한 안나는 아버지 병 간호를 하다가 춤추고 싶단 생각이 들자 기침이 나오기 시작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이제 춤 출 수 있게 되자 안나는 사지 마비 증세를 보임으로써 스스로를 징벌했다. 그리고 엘리자베스는 형부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무의식적으로) 계속 거부하면서 다리 마비 증상이 찾아왔다.


프로이트가 살았던 당시에는 아직 청교도 교리가 남아있어, 사람들의 많은 욕구들이 금기시되었다. 사람들이 자신의 무의식 깊은 곳에서 일어나는 일까지 통제하려고 하면 신경증 환자가 된다. 그때는 그냥 ‘내가 아빠 병 간호가 귀찮고, 유부남을 사랑하고 있구나!’ 하고 받아들이면 된다.


지금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자기 욕구에 대한 죄의식 때문에 힘들어 하고 있을까?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생각은 없다. 설령 내가 비윤리적인 욕망이 있더라도, 진짜로 엄마를 사랑하고 아빠를 미워하더라도(오이디푸스 컴플렉스) 내가 건강한 자아(이드와 초자아를 매개하고 조절해줌)가 있는 한 나는 안전하다. 욕구는 욕구일 뿐이고, 생각은 그저 생각일 뿐, 내 그릇된 욕구를 인정하더라도 내 삶이 위험하지는 않다. 


정신분석을 하면 ‘남 탓’을 잘 안 한다고 한다. 이건 무슨 말일까? 프로이트는 우리 사회에 ‘전치’ 혹은 ‘투사’라고 불리는 방어기제가 만연되어 있다고 한다. 예를 들어, 아내를 의심하는 남자 중에는 사실은 자신의 부정함을 숨기기 위해서 무고한 아내를 비난하고, 그녀의 행동을 확대하여 소란을 피우는 경우가 있다. 그 사이에 자신의 무의식적 소원은 안전하게 보호되기 때문이다.


내가 아르바이트하는 창원역 근처에는 모텔이 많다. 하루는 어떤 중년 남성이 모텔에서 나오는 젊은 남녀를 보고 나에게 “어린 것들이 대낮부터 저게 무슨 짓이고!” 하였다. 나는 아무 말도 안 했는데 말이다. 그 남자는 다른 사람들을 요란하게 비난하면서 자신의 무의식적 성적 욕망을 의도치 않게 드러낸 것이다.


이뿐만이 아니라, 자신이 누군가를 감정적으로 미워해도 실제로는 그 상대방이 나를 미워하고 있다고 믿는다. 남을 미워하는 것은 통념상 잘못이고, 쪼잔한 행동이기 때문에 자신과 어울리지 않다고 여긴다. 이런 방어기제의 힘은 강렬해서 나 자신도 내 마음을 눈치재지 못한다. 이런 현상은 도덕적으로 완벽해지고 싶은 욕구에서 비롯된 것이다. 결국 대부분 사람들이 남(혹은 외부) 탓을 하면서 자신의 본심을 숨기고 억압한다. 정신분석을 하면 내 욕구를 제대로 볼 수 있기에 남 탓을 덜할 수 있다.


프로이트는 자신의 상처나 욕구를 억압하거나 회피하는 과정에서 ‘불안’이 생긴다고 한다. 그리고 불안은 정신 질환을 낳는다. 프로이트는 자신의 심각하거나 불편할 수 있는 이야기를 담담하고 편안하게 풀어낼 수 있는 사람에겐 정신적 문제가 없다고 했다. 자신의 상처나 욕구를 솔직하게 인정하는 것만으로 많은 심리적 증상과 불안을 떨쳐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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