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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참새 Jan 29. 2016

나는 왜 여자들에게 집착했을까?

나는 여자에 대한 집착이 심했다. 상대가 예쁘든, 안 예쁘든, 누구를 만나도 집착했다. 그래서 내 성격이 원래 여자에게 집착을 잘 하는 성격인가? 걱정도 많았다. 내가 만약 다음에 또 누군가를 사귀면 또 집착하지 않을까? 불안하다. 도대체 나는 왜 여자에게 집착했던 것일까?



그런 피곤한 내 성격에도 불구하고 내가 여자와 사귈 수 있었던 이유는 내 외모와 내가 썼던 돈 때문이었던 것 같다. 여자들의 일부는 내 외모와 돈을 좋아했던 것 같다.



20대 중반에 나와 별로 안 친했던 차가운 공익 선임이 내 외모를 “평균보다 조금 이상” 이라고 했다. 난 지금까지 그것이 객관적 평가라고 믿고 있다. 그리고 나는 대학교 때 동기들과 비교해서 돈이 많았던 것 같다. 엄청 부자는 아닌데 아빠가 대기업 다녔다. 그때 아빠가 내게 중고차도 사줬으니깐. 내 동기가 나에게 “네가 여자들한테 쓴 돈 합치면 제네시스 한 대 뽑았을 거야” 라고 했다.



그런데 내 장점이었던 돈과 외모는 내 노력으로 향상될 수 없었다. 대학 때 나는 직접 돈을 벌 수가 없었기 때문에 엄마가 주는 용돈에 의지했다. 엄마가 용돈을 많이 주면 그날은 여자들에게 더 사랑받는 거고, 아니면 내세울 것이 없게 된다.



외모에 있어서도 신경을 많이 썼다. 여자들에게 추리하게 보이지 않기 위해서 절대 이틀 연속으로 같은 옷을 입지 않았다. 그렇게 해도 내 외모가 내 노력으로 (근본적 차원에서) 나아지는 것도 아니다. 그렇게 잔뜩 꾸미고 나가도 이상하게 여자들과 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엔 항상 마음이 아팠고, 내가 초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땐 내가 제어할 수 있는 내 정체성이 없었다. 나는 허수아비 혹은 아바타처럼 살았던 것 같다.



심리학자 미하이칙센트 미하이는 사람들은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할 때 쾌락에 집착한다’고 하였다. 나는 아무 의미 없이 무기력한 환경 속에서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외부 조건들에 의지했다. 건설적인 행동 하나 없이 오로지 여친의 사랑만을 갈구했던 것 같다. (넓은 의미에서 사랑도 쾌락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만약 미래에 대한 확실한 비전을 가지고 공부라도 열심히 했더라면 여자들에게 집착하지 않았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그땐 왜 그리 내 미래가 잿빛이었을까? 공황장애가 항상 따라다녀 건강한 장래를 기대하지 않아서였을까?



나는 내 미래를 구체적으로 설계한 적이 없었다. 대학 4학년 때부터 시작했던 공무원 공부도 내 의지가 아니었던 것 같다. 내가 시험을 합격해야지 여자친구가 나를 더 사랑할 것이라서 공부한 것뿐이었다. 몇 년을 억지로 꾸역꾸역 했던 것 같다. 일년이 지날수록 내 우울은 2배씩 늘어났다. 내 인생의 중심에는 그녀들만 있었지, 나는 없었다.




(지금 내가 살아있다는 사살에 다시 한번 감사합니다)




시간은 어쨌든 흘러갔다. 나는 지금 도서관에 와 있다. 몹시 추리하다. 맨날 입는 검은 패딩에 검은 모자 푹 눌러쓰고 열람실에서 글 쓰고 있다. 옷을 안 산지가 1년이 넘은 것 같다. 30대 이후부터는 외모에 크게 신경을 안 쓰는 것 같다. 돈이 없어서 옷을 못 사는 이유도 있는 것 같다. 주말에만 아르바이트를 하고 평일에 자유를 누리니깐 이렇게 사는 수밖에 없다. 이건 내 선택이고, 엄마도 이젠 그냥 포기상태다.



그래도 좋다. 구체적인 책 출판을 위해서 글을 쓰고, 앞으로 진행할 팟캐스트를 구상하고 있다. 내 비록 거지 같은 꼴을 하고 있지만 내 마음까지 초라하진 않다. 예전엔 내가 입고 있는 옷이, 내가 탔던 차가, 지갑에 있는 돈이 내 위신을 세워주었지만 이젠 그런 거 다 필요 없다. 노트에 볼펜 하나만 있으면 된다.



30대가 지나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나는 사람들에게 다시 관심을 받기 시작했다. 그것은 내 돈이나 외모가 아니었다. 내 능력으로, 내가 직접 노력하거나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어떤 것으로, 누군가의 사랑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확인했다.



앞으로도 꾸준히 글을 쓸 것이다. 내가 오늘 블로그에 글을 올리면 많은 이웃들이 다녀가고 누군가는 공감을 눌러줄 것이다. 내 브런치 구독자도 곧 300명을 넘을 것이다. 내 시간과 비례해서 내가 성장하는 것이 보이기 때문에 불안도 없다. 



어느 순간 나는 내가 삶의 중심을 찾았다고 생각했다. 내가 무엇을 할 때 가장 나다운 것인지 알게 되었다. 예전에는 여자가 내 인생의 제일 우선이었지만 지금은 여자 말고도 내게 중요한 것이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 집착은 삶의 의미나 자신의 정체성을 찾지 못할 때나 일어나는 것이다. 나는 이제 다시 연애를 하더라도 집착을 하지 않을 것이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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