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등감에서 벗어나기

사랑받고 싶어서일까

by 홍씨 Mr Hong



열등감을 잘 다루면 삶의 원동력이 되고, 잘못 다루면 미움이 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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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감정이 참 어렵다.

어릴 땐 자각하지 못했지만, 항상 다루기 어려워서 속에서 부글부글 끓다가 폭발하거나 울거나. 내 어린 시절의 얘기를 아버지께 들어보면 항상 이렇게 말씀하신다.

“너, 어릴 때 갑자기 장난감 가지고 놀다가 성질냈어. 아주 지독했어! 장난감을 갑자기 집어던지고 울었다고.”

그만큼 ‘어릴 때의 나’도 ‘성인의 나’ 못지않게 예민했다고 한다. 어릴 때도 한 난리 쳤구나. 당연히 그 어릴 때의 내가 지금의 내가 된 거겠지만. 지금의 나는 분명 많이 바뀌었다. 하지만 예민한 편이 맞던 것 같다. 남들은 그냥 지나치는 별 거 아닌 일도, 내겐 별 거였다. 큰 덩어리가 되어 항상 마음 깊은 곳에 돌처럼 자리 잡았다. 갑자기 마음이 좋다가도 어떤 생각이 스쳐 지나가거나, 타인으로부터 어떤 말을 듣게 되면 마음이 무거워지고 ‘그 말 하나’와 ‘그 생각 하나’에 메여 골똘히 생각하기도 했다. 그래서 갑자기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바라는 수 밖에는 없었다. 그래도 어김없이 그런 순간들은 예고 없이 찾아왔다.

오늘 내가 느꼈던 열등감도 예외는 아니다. 속시원히 친구에게 고민을 털어놓고 어느 정도의 해결책을 얻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고 느끼는 그 순간, 갑자기 열등감이 자리 잡는다. 너무나 불청객이다 이 자식… 한 순간에 내 마음을 장악하더니 이제는 머리에서 그 생각이 떠나질 않는다. ‘그 사람‘이 부러웠다 분위기를 이끌고 장악하고 사람들에게 재미를 주는 사람. 나도 그러고 싶다. 그리고 사랑받고 싶다. 하지만 하필 ’그 사람‘이 나의 친한 지인이며 심지어 다른 사람들보다 더 가까운 사이이다. 그리고 범접할 수 없을만한 타고난 ‘재능’이라고 해야 할까. 나는 따라 할 수 없을 정도로 매력적이고, 많은 사람들이 ‘그 사람’을 좋아한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 사람’은 날 좋아해 준다.

열등감을 느끼게 되면, 그리고 그 순간부터 열등감을 잘 관찰하지 않으면 어느새 누군가를 질투하고 미워하는 감정으로 변한다. 그 사람의 단점을 찾고, 내가 이 사람보다 나은 점을 나름대로 서술하려고 한다. 이게 제일 화나는 순간이다. 이런 나를 받아들일 수가 없고, 심지어 그 사람이 나를 좋아해 준다면… 현타가 온다.

이 열등감은 어디서 왔지? 내 생각에, 나에게 있는 이 열등감은 ‘사랑받고 싶은 마음’에서 왔다. 항상 사랑이 고팠다. 남들이 나에게 사랑을 더 줬으면 좋겠고, 나를 좋아해 줬으면 좋겠다는 그 마음. 사람은 누구나 사랑받고 싶다는데, 나도 정말 그러고 싶은 것이다. 하지만 사랑을 구걸하는 것만큼 추한 것도 없다. 제발 내게 사랑을 줘,라고 말할 수가 있나… 없다. 적어도 나는 못한다. 그리고 사랑을 달라고 해서 그 사람이 사랑을 주는 것도 난 웃긴다. 그 사랑하는 마음이 그렇게 마음대로 생기고 지울 수 있는 건가. 자연스레 생기는 게 감정 아닌가.

아마, 내가 처음 열등감을 느꼈을 땐 동생이 태어난 시점이었을 것이다. 물론 그땐 그런 감정이 무엇인지도 정확히 알지 못했겠지만. 엄마의 사랑을 독차지하던 나는, 어느 순간 동생을 안은 엄마를 보았다. 엄마의 눈은 동생에게 더 향했고 나도 그 시선을 어린 시절에 느꼈던 것 같다. “동생이 생겨서 좋지?”라고 말한 질문에 난 고개를 위아래로 끄덕였다. 그냥 좋아야만 할 것 같았다. 그땐 그게 무슨 감정인지 모르겠으나 엄마를 뺏았긴 듯한 기분을 느꼈던 것 같다. 살짝 불안했고 서운했다. 동생이 조금 자라서도 엄마는 동생에게 더 신경을 쓰는 것 같았고, 조금 더 커서는 동네 아주머니들도 나보단 우리 동생에게 더 관심을 가졌었다. 심지어 나는 어릴 때 천재라고도 불렸는데도 말이다(아이큐가 높고 그런 게 아니라 여러 학원을 많이 다녀서 다방면(피아노, 단소, 장구, 수학, 글쓰기 등)으로 잘할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동생이 잘생겼었기 때문에. 동생의 눈은 아빠를 닮아 똘똘했고 코는 오똑했다. 어릴 때 에버랜드에 가서 스케치한 초상화를 보면 눈망울이 사슴 같다. 그리고 턱이 짧고 얼굴이 작다. 내가 봐도 잘생겼던 것 같다. 그와 다르게 나는 턱 하관이 길고 눈은 작았다. 아무리 매력이 다르다고 해도 외모로는 게임이 안 됐다.

이 시기가 내게 얼마나 많은 영향을 끼쳤는진 모르겠으나, 고등학교, 대학교 시절을 거치면서 나는 열등감이 어마어마했다. 나보다 잘난 인간들을 항상 마주치고 상대하려니 고통스러웠다. 심지어 나는 무시받기까지 했다. 그 사람들을 뛰어넘고 싶었다. 군대를 다녀와서 몇 학기 동안은 오전 7시에 일어나 새벽 1시까지 공부하는 스파르타 생활을 하기도 했다. 그 열등감을 학점으로, 그리고 외모를 가꾸고 옷으로 메꾸려고 했다. 하지만 열등감은 메꿔지지 않았다. 특정 한 사람보다 나아졌다고 확신했을 때, 또 다른 잘난 사람이 내게 왔다. 그 사람을 뛰어넘으면 그다음 사람이 나타날 예정이었다. 영원히 뛰어넘지 못하는 벽이 계속해서 생기는 셈이었다. 이런 사고방식으로는 무엇하나 극복할 수 없었다. 영원히 불행 속에서 살뿐이었다.

그리고 현재.

외모나 외적인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내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그 열등감은 달라질 수도 있지 않을까란 생각하게 되었다. 나는 자존감이 무척 낮았다. 자존감이 낮으니 자신감도 없었다. 자기 확신이 없었고 내가 무언가 할 수 있는 인간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내가 스스로 정했던 약속은 언제나 어기고 있었고 정말 무엇 하나 제대로 이루는 것이 불가능한 사람이었다. 몇 번이고 다짐해도 몇 번이고 실패했다. 다짐만 한다고 될 일이 아닌가. 몇 번이고 다짐해도 안되니까 눈물이 났다. 대체 이 인생, 어떻게 살아먹으란 거지. 자책했고, 스스로를 찔렀다.

그러다, 습관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알게 되었고, 아주 조그마한 것부터 이뤄보기로 했다. 제일 처음 선택한 것은 운동이었다. 커다란 목표는 ‘하프마라톤’으로 설정했고, 매일 아침에 일어나 헬스장에 가서 러닝을 3km씩 하기로 다짐했다. 마침 늘어져있는 뱃살도 보기 싫었고, 근육 있는 몸, 식스팩 있는 몸을 만들고 싶었다. 주말 제외하고 꼭 직장 가기 전에 헬스장에 가려고 했다. 그러려면 오전에 원래 일어나는 시간보다 1시간 일찍 일어나야 했는데, 너무 힘들었다. 너무 가기 싫고 하기 싫을 때도 있었다. 어느 날은 30분 일찍 일어나서 러닝을 부랴부랴 3km도 못 뛰고 직장 일을 하러 갈 때도 있었다. 하지만 내가 느낀 건, 이 조그마한 성취가 내게 조금씩 자신감을 회복시켜주고 있었단 것이다.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 있단 걸 자각하게 해 주었다. 아무리 하루를 망쳤더라도 이 루틴만은 지키려고 노력했다. 그럼 하루를 망쳤다고 생각한 날에도 무너지지 않고 다시 정상궤도로 올라올 수 있었다. 그렇다고 모든 것이 바뀌었느냐. 그건 아니다. 인생이 그렇게 쉽게 흘러가진 않더라… 아직도 다른 습관들을 조금씩 바꾸려고 노력 중이다.

그렇다고, 또 열등감이 사라졌느냐, 그건 아니다. 하지만 지금 내가 생각해 본 유일한 방법은 자신을 괜찮다고 스스로 평가하는 것이며 나에게도 고유의 매력이 있는 사람이지라고 생각해 보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물론 잘 안되기도 한다.

하지만, 언젠가는 정말 나를, 내 감정을 잘 다루는 날이 오기를 고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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