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극적인 시선에서 일상의 시선으로
일상을 소중히 하는 삶.
오늘 점심시간, 물리치료를 받고 있는데 이 순간이 행복하게 느껴졌다. 끝나고 커피를 마실 생각을 하니 한번 더 행복해지는 것이었다.
(내가 위염을 앓고 있는 것을 까먹고 모르고 커피를 사와버렸지만… 괜찮다. 시험 삼아 한번 마셔볼까? 일생일대의 고민을 했었다)
어제 깨달은 것.
그동안 꿈에서 너무 오래동안 살았단 생각을 했다. 현실을 사는 게 아니라, 꿈에서.
중고등학교 때 만화와 드라마를 좋아했다. 멋진 캐릭터들과, 극적인 순간에 성장하는 주인공부터 소위 찌질한 주인공이 예쁜 여자 캐릭터와 사귀게 되는 일들. 이런 순간들을 통해 나도 내 인생에서 적어도 ‘기적’ 한번쯤은 일어나길 바라는 마음으로 살았던 것 같다. 영화나 만화에선 극적인 상황이 주로 연출되지만, 일상에 대해 잘 연출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주인공이 시험에 합격하기 위해 공부해야한다면, 준비기간동안 겪는 그 모든 일들을 보여주지 못하고, 아주 단편적인 장면들만 보여주게 된다. 내가 어리석어서였을까. 어리석게도 난 영화의 하이라이트 장면들을 믿어버렸다. 주인공이 마음을 먹은 시점부터 그 앞으로의 미래가 일사천리로 진행되고 핑크빛 결말을 맞는, 그 하이라이트만 보여주는 장면들을 믿어버린 것이다. 그래서 어떤 일을 이루는데는 긴 일상의 순간을 거쳐 이뤄지는 것이 아닌, 극적이고 짧은 순간들로 이루어진다고 믿게 된 것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 내 인생도 그렇게 되겠지란 작은 희망. 무언가 되겠다고 마음 먹은 시점부터 각오를 다지고 열심을 냈으나 현실을 드라마가 아니였다. 마음 먹은지 3일만에 긴장이 풀리고, 하기 싫어졌다. 아주 독하게 마음먹겠다며 머리를 민 적도 있었으나, 그 결심은 채 3개월도 가지 않았다.(머리 밀었다고 놀림만 받았다…)
여자친구와 사귈 때도, 나는 일상이 아닌 극적인 상황을 갈망했다. 계속 해서 그런 드라마적인 상황들을 연출해야될 것만 같았던 것이다. 나름대로의 이벤트를 준비했고, 편지들을 썼다. 이게 현실에서 드라마 주인공을 하려는 건지, 이 친구를 사랑해서 그러는 건지… 그런 극적인 순간을 연출하려는 나를 사랑하는 건지… 극적인 순간을 항상 연출하려고 하니, 연애가 그렇게 힘들더라.
그러다 최근에 우연히, ’좋아서 하는 기록‘이란 책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리고 읽게 되었다. 저자는 삶의 모든 순간을 기록하려고 애쓴다. 특별한 날이 있을 때도, 평범한 일상조차도. 나는 처음에 그 마음을 이해할 수 없었다. 왜 일상을 기록하지? 나중에 보면 뭐가 달라지나? 그런 시시하고 기억에 남지도 않을 일들을 왜 기록할까. 그 기억들은 언젠가 소리소문없이 지워지잖아?라고 생각하며 페이지들을 넘겼다. 하지만 문득 궁금해진 것이다. ‘일상의 기록’이란 것이.
나는 현재 인스타툰을 준비하고 있다. 사실, 그래서 ‘좋아서 하는 기록’이란 ’오늘의 다은’ 작가님의 책도 벤치마킹하려고 읽게 된 거고. 처음으로 일상을 아이패드의 한페이지 안에 그려봤다. 이것이 뭔 의미인가 싶었다. 1편은 잠자기 전에 커피를 마시고 잤는데 위가 불탈 것 같아, 얼른 일어나 양배추즙을 먹으며 속을 달랜 일, 2편은 일정이 다 끝나고, 뚜레주르에 피스타치오 크림번(?)을 먹으려고 매장에 전화 걸었는데 재고가 다 떨어진 일. 그래서 너무 아쉬워 한탄한 일. 이런 시시콜콜한 일들을 적었다. 근데 마법이 일어났다. 내 삶은 이런 작은 일상들이 모여서 된다는 걸. 이 작은 일상들을 기억하다보면, 나도 일상을 소중하게 여기고 그런 시시콜콜한 일상이야기를 하는 사람들과 비슷해질 수 있을까란 생각. 이 긴박하진 않지도 않고 크게 변함도 없지만, 이렇게 잔잔하게 흘러가는 작은 일상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행복일까. 아, 어쩌면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이겠다. 일상을 기록하고, 의미를 부여하고 이 순간을 즐기는 것이.
그래서 어제 밤, 자기 전에 이렇게 마음을 먹었다. 기왕 하는 것들에 대해서 이 일상을 조금 열심히, 그리고 즐기는 것을 선택하자. 지루함으로 일상을 뒤덮지 말고, 조금 더 적극적인 모습과 소소한 재미를 선택해보자. 나도 이제 영화같은 삶이 아닌, 일기 같은, 그리고 기록같은 일상을 즐기고 싶다. 더불어, ‘좋아서 하는 기록’을 지필해주신 작가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책을 써주셔서 너무 감사하다. 많이 배우고 있고, 나도 적용하여 언젠가 작가님을 만나뵙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