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너를 위해 나를 잘 돌볼게

비 내리는 새벽에 씀.

by 홍씨 Mr Hong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다.

이상하게도 비가 내리면 마음이 가라앉는다. 큰 기쁨도 즐거움도 누그러지는 느낌이랄까.

즐거움이 잠깐 고개를 내밀려고 하면 빗방울 한줄기가 아직 나오지 말라고 눈치를 주는 것 같다고 해야 하나.


하튼, 나는 치킨이 먹고 싶어졌다. 그것도 교촌치킨. 우리 집 대대로(?)의 비밀을 하나 알려주자면, 일주일에 1번. 그것도 금요일 저녁에 다 같이 모여 '치킨을 먹는 문화'를 가지고 있다. 목요일도 토요일도 일요일도 아닌. '금'요일이다. 이유는 나도 모른다. 토요일은 다음날이 일요일이라 좀 그렇고, 일요일은 다음날이 월요일이라 즐기지 못할 거 같아서 그랬나. 내 생각에는 금요일은 심리적으로 안정적인 날이다. 그다음 날도 토요일이라 늦게 일어나도 되고, 또 그다음 날인 일요일이 보장돼있으니까. 그리고 월~금까지 열심히 살아온 5일에 대한 보상(?). 그걸 마무리하기 좋은 날이 금요일인 거 같다. 금요일 저녁이 되면 우리는 무슨 치킨 시킬지를 의논한다.

사실, 몇 마디도 안 한다. 남동생이어서 그런가;




동생: "뭐 먹을 거야?"

나: "오늘은 파닭 어때?"

동생: "오키. 그걸로 가자."



사실 이제 와서 말하는데 메뉴의 주도권은 거의 항상 내게 있었던 것 같다. 동생이 유독 잘 들어줬던 것 같다. 착한 녀석!

먹는 메뉴들은 한정적이다. 우린 그렇게 치킨에 대해 도전적이지 않은 사람들이기 때문에. 아, 현실에서도 그렇게 도전적이지 않을 수도...?

그리고 메뉴는 거의 나를 따라줬기 때문에 엄밀히 말하면 내가 고르는 치킨 메뉴들이 '한정적'이다.

비비큐 스파이시윙

비비큐 황금올리브 16조각(기본은 8조각인데 잘라달라고 하면 16조각 해주신다)

네네치킨 파닭

노랑통닭 가끔...?

60계 치킨 크크크치킨: 크크크치킨은 정말... 삼삼하면서 중독적이다. 특히 마요소스를 잘 곁들이면 최고인데, 항상 모자라서 시킬 때 소스를 추가시킨다.

본가에 살 때는 이렇게 같이 먹었었는데 이제 본가에서 나와 자취를 하니까, 그렇게 같이 치킨 먹을 기회가 사라졌다. 근데 내겐 아직 그런 습성이 남아있는 건지, 금요일 저녁마다 우리 집 근처에 있는 닭강정집에 간다. 한 박스는 다 못 먹고 반박스를 시키면 양도 많고 딱이다. 돈도 굳는다!

혼자 컴퓨터 앞에 먹을 때면 울적할 때도 있다. 하지만 편할 때도 많지.

오늘은 근데 민생지원금으로 큰맘 먹고, 교촌치킨을 사 온 것이다.. 사실 쓸 수 있는 곳이 좀 멀어서 오래 걸려서 다녀왔다.






매장에 갔는데, 젊은 남녀가 싸우고 있었다. 남자분이 일방적으로 혼나고 있는 것 같았는데 그 찰나에 나도 미래의 배우자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됐다. 어떤 사람이면 좋을까. 예쁜 사람이면 다 되지라고 많이 생각해 왔었는데 그러면 안 될 거 같다. 나는 고백한 건데, 배우자와 결혼을 내 감정의 도피처로 생각했다. 내 감정의 구원처로, 그리고 나의 구원처로 생각했다. 독립적이지 못하고 배우자에게 많이 의지했을 거 같다… 지금 생각해 보면 너무 아찔하다. 내가 조금씩 조금씩 성숙해지고 있어서 너무 감사한 것 같다.

내가 자취하면서 깨달은 것은, 스스로의 행복은 다른 사람이 책임져줄 수 없단 것이다. 그러니까, 나는 누군가를 사랑하고 결혼할 때 다른 사람이 나를 책임져줘야 된다고 생각했지만 그 누구도 자신의 행복을 책임져줄 순 없다. 스스로의 행복은 스스로가 책임질 것. 다만, 서로 사랑하고 도와줄 것. 이것이 나의 연인에 대한 가치관이 되었다.

나는 누군가에게 내 행복을 기대하는 사람이고, 사람에게 기대는 사람이었으니까. 내 행복까지도 책임져주기를 바라는 사람이었으니까.


“나는 너를 위해 나를 잘 돌볼 테니까, 너는 나를 위해 너를 잘 돌봐줘”


​​


이렇게 글을 써 내려가고 있는 이 순간에도 비는 멈추지 않고 추적추적 내리고 있다.

나의 이 감정도 조금씩 조금씩 가라앉고 있다.



어서 이 치킨을 가지고 가서 즐거운 밤을 즐겨야지!

곧 ‘어쩔 수가 없다’란 영화가 나온다는데, 십오야에도 배우분들이 나왔다.

오늘은 이거 보면서 치킨이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