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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발적 공동체는 가능한가?

북한 여성과 결혼이주여성의 생애가 던지는 공통의 질문

by 이일리


오늘 강의 시간에는 북한 여성의 삶이 가부장적 국가 권력과 어떻게 연관되는지에 대해, 발제 시간에는 이주의 여성화 현상과 결혼이주여성의 생애에 대해 다루었다. 사뭇 다른 위치와 상황에 처해 있는 두 집단의 여성, 북한 여성과 결혼이주 여성의 생애가 공통적으로 제기하는 질문은 다음과 같았다. “우리가 정말 ‘자발적으로’ 공동체적으로 살 수는 없을까?


우선 박경숙(2012) 선생님의 논문 ‘북한 사회의 국가, 가부장제, 여성의 관계에 대한 시론’에 따르면, 북한 사회에서는 국가 권력의 통치 원리로서 비공식관계의 확장이 이루어졌다. 강력한 국가 권력의 감시와 통치 아래 북한의 공식 가치로서 집단주의 가치가 강조되고 사적 이해를 노골적으로 추구하는 것은 폄하되고 지양되었으며 이타성과 공공성에 대한 헌신이 강력하게 권장되었는데, 이러한 통치의 맥락 속에서 북한 주민들(특히 가족 공동체 실천의 중심이 되는 여성들)은 민족, 가족, 동포, 혈연, 친족과 같은 준가족적인 공동체의 이름으로 친밀성을 ‘연출’하는 데 익숙해졌다고 한다. 다시 말해 북한 주민들은 비공식적 관계를 연출함으로써 사적 이해를 전략적으로 해결하는 ‘공동체적 연줄 인간’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처럼 북한 여성들의 삶의 양식을 이해함에 있어서 지배와 종속의 이분법을 벗어난 해석은, 이주의 여성화에 대한 다면적인 이해와도 조응한다. 결혼이주를 ‘가부장적 억압’이라 단편적으로 규정하며 지배와 종속의 이분법적 관점으로 결혼이주여성을 바라보는 것은 오히려 가족의 역동적 변화 양상을 포괄하지 못하며 이주여성을 일면적 희생자로 규정하고 무력화하는 시각일 수 있다. 이들의 결혼이주를 새로운 사회적 공간으로 이동하는 ‘생존 전략’의 현상이라 바라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결혼이주에 대하여 ‘성별 노동분업과 돌봄의 문제를 개발도상국 여성에게 전가하는 것’이라는 비판은 상당히 타당하나 그 자체로 불편부당한 사태 이해는 아니며, 지구화된 사회 속에서 이주는 여성이 생존을 위한 돌파구로서 전략적으로 선택하는 삶의 방식일 수 있다. 대개의 결혼이주여성들은 본국에서의 빈곤, 실업, 불평등한 젠더 관계 등으로부터 탈출하기 위해 국제이주를 선택하며, 국경뿐 아니라 노동, 문화, 가족 등 다중적 경계들을 넘나들면서 자기와 가족의 생존을 위해 다양한 일을 수행한다. 이는 앞서 북한 여성들이 타인에 대한 친밀성을 ‘연출’하며 공동체 관계를 맺는 삶의 전략과 매우 닮아 있다.


서로 다른 두 집단의 여성들의 생애와 삶이 ‘전략화’되어있는 것이라는 이해는 매우 새롭기도 하고 씁쓸하기도 하다. 이들이 던지는 공통된 물음은, 자유를 억압하지 않은 상태에서의 공동체는 가능한가 라는 질문이다. 국가 권력이나 이데올로기의 제약 아래에서 타인에 대한 친밀성을 연출하여 사적 이해를 충족하고자 하는 전략적 공동체가 아니라, 우리가 정말 자발적으로 공동체를 구성하고 실천하고 유지하며 살 수는 없는 것일까?


조금 다른 이야기일 수 있지만, 나는 오늘날 나를 비롯한 많은 젊은 여성들이 (이)성애적 관계에서보다 새로운 형태의 관계 속에서 상호의존하고 살아갈 힘을 얻으려 하는 대안적인 (탈)욕망을 가지고 있는 것을 본다. 자기 돌봄과 타인 돌봄의 능력, 생활력은 상당히 젠더화되어있고, 오늘날 많은 젊은 여성들은 (원하든 원치 않았든 많은 확률로 어머니로부터 학습하게 된) 그러한 능력을 정상 가족을 꾸리고 유지하는 일에 종속시키기보다 다른 형태의 놀이 문화나 생활공동체에 쓰고자 한다. ‘덕질’이라 불리는 팬 문화, 비혼/페미니스트 여성 공동체들의 등장, 젊은 여성들이 주축이 된 정치적 결사와 집회 등 각종 현상들을 목격하며, 공동체에의 자발적인 참여의 징후가 바로 이런 곳에서 발견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반대로 말해서 자발적 공동체의 가능성은, (북한의 경우처럼) 국가 권력의 제약 하에서 물질적 대가를 위해 누군가와 좋은 관계를 맺을 수밖에 없는 구조적 상황이나, (현행 결혼이주 제도처럼) 전지구적 위계화를 당연하게 전제하고 친밀성과 상호 이해가 결여된 상황에서 불안정한 공동체의 형성을 시스템적으로 방기하는 체제 안에서는 기대하기 어렵다. 요컨대 생존주의의 정서는 공동체의 지속 가능성과 양립하기 어렵다. 공동체에 대한 자발적이고 지속적인 참여는 누군가로부터 보살핌 받고 싶다는 욕망, 누군가를 돌보며 살아 있음의 감각을 얻고 싶다는 욕망, 서로 의존하며 친밀한 사이로 함께 하고 싶다는 욕망이 ‘자연스럽게’ 바탕이 될 때 가능한 것이 아닐까.



• 참고 문헌

박경숙. (2012). 북한 사회의 국가, 가부장제, 여성의 관계에 대한 시론. 사회와이론, 327-375.

박규택. (2017). 사이존재로서 결혼이주주와 로컬의 다문화와 초국가적 공간화 – 대구광역시 결혼이주여성의 생애사 사례. 문화역사지리, 29(2), 78-92.

이지영. (2013), 국제이주와 여성-세계화와 이주의 여성화. 세계정치, 19, 233-268.

황정미. (2009). 이주의 여성화 현상과 한국 내 결혼이주에 대한 이론적 고찰. 페미니즘 연구, 9(2), 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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