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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트리피케이션 너머 서울 도시성의 미래

장소의 주인, 지속 가능한 장소의 주인은 누구인가?

by 이일리



김백영(2020)의 '1990년대 수도권 형성과 한국 도시성의 전환'은 크게 세 가지 축을 중심으로 수도권의 광역 대도시권 형성 시기 한국 도시성의 과도기적인 변화 양상을 살핀다. 첫째로 관선에서 민선으로의 전환과 관 주도적인 기념비적 사업들로 특징지어지는 도시 정치 레짐의 변화가 있다. 둘째, 수도권 신도시 건설과 '아파트 공화국'의 형성, 그리고 자동차 보유 대수의 확대와 교통 대란으로 특징지어지는 물리적 변화가 있으며, 셋째로 대도시 신중산층 생활양식의 확산과 중산층 소비문화의 확산 및 각종 기념비적 사업과 외상적 사건들에 따른 시민의식의 변화 등으로 특징지어지는 문화적 변화가 있다. 이러한 설명을 통해 논문은 한국사회 도시성의 변화상을 정치적, 물리적, 문화적 차원에서 정리하고 있다. 본 논문은 1990년대 수도권 대도시권의 조성이 어떻게 이루어졌으며 어떠한 효과와 부작용을 낳아왔는지를 일목요연하면서도 상세하게 논하고 있어 매우 흥미로웠다. 동시에 87년체제와 97년 체제를 지나 온, 2010~2020년대를 전후한 오늘날 수도권의 도시성의 특징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되었다.


오늘날의 수도권 도시성의 특징적인 변화상을 이야기하자면, 싱크홀과 같은 재난의 위험이 일상화된 현상이나, 저출산 고령화와 함께 농촌과의 격차가 심화되며 지역 소멸이 가속화되는 양상 등을 들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그러나 무엇보다 가장 먼저 떠오른 오늘날 수도권 특히 서울 도시성의 문제는 '젠트리피케이션의 보편화'다. 현대사회의 특유한 소비문화로서 상품에 내재된 상징과 기호를 통해 정체성을 드러내고 심미적인 즐거움을 추구하는 ‘상징소비(symbolic consumption)’가 심화함에 따라, 상품뿐 아니라 상품이 소비되는 공간 그 자체가 소비의 대상이 되고 있다. 공간이 체류가 아닌 소비의 대상으로 변모하면서 공간의 미학적 이미지와 차별성을 강조하는 ‘공간의 상품화’가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논문에서는 1990년대 강남이 미용업과 밤 문화를 비롯한 문화산업의 중심지로 떠올랐다는 점을 언급하고 있는데,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성수, 이태원, 익선동, 북촌, 서촌, 을지로, 연남동, 문래 등 상권이 모인 수많은 지역들에서 젠트리피케이션의 징후가 발견되고 있다. 프랜차이즈 카페와 베이커리, 젊은 세대의 취향에 맞는 식당과 카페, 몇 십년 간 자리를 지켜온 오랜 식당들의 퇴출, 각종 포토 부스가 즐비한 거리 등을 특징으로 꼽을 수 있겠다.


젠트리피케이션의 문제는 비단 소비자본주의의 극화라는 문제를 넘어선다. 낙후지역이 활성화되면서 자본과 외부인이 유입되고 임대료 상승 등으로 기존 거주민이 밀려나는 문제는 '장소의 주인이 누구인가'라는 문제를 제기하며, 이러한 점에서 상업적 젠트리피케이션은 지역의 기존 거주 및 활동 인구와의 공생을 허용하지 않는 '장소성의 상실'이 된다. 예컨대 2015년에 발표된 ‘낙원상가돈화문로 일대 도시재생활성화 계획안’에 따르면, 서울도시재생본부는 비활성화되어있는 익선동 지역을 활성화하기 위해 어르신, 노숙자, 성소수자 등을 개선해야 하는 지역 문제 요소로 특정하였다. 그러나 이들은 과연 누구의 관점에서 '개선'이 요구되는 비활성화된' 존재들인가. ‘비활성화’ 상태로 규정되었던 종로3가 일대는 사실 다양한 집단들이 일상적 삶을 영위하던 일상공간이었다. 종로3가 탑골공원 부근은 남성 노인들의 일상적 삶의 공간이며, 낙원동, 익선동, 돈의동 일부는 국내 최대 게이 커뮤니티다. 그러나 ‘도시계획활성화 계획’은 사람이 실재하고 유의미한 교류가 지속적으로 오가는 공간을 ‘비활성화’ 상태라고 규정한다. 그런 점에서 도시재생을 통한 지역 활성화의 이면에는 특정 공간과 집단에의 타자화가 작동하고 있으며, 공동체에 속할 시민과 배제되어야 할 시민이 분리되고 있음이 드러난다.


도시 곳곳에서 철저히 자본화된 방식의 젠트리피케이션이 타자와의 공생을 허용하지 않는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양상, 그리고 그렇게 '붐'을 일으키던 지역들이 다시 소멸하고 사람들의 관심이 다른 곳으로 옮겨가는 양상을 보고 있노라면, 상업성에 의존하는 도시 구축은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서울의 도시가 어떤 방식으로 건전한 유지와 발전을 꾀해야 하는지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 주민 자치 역량의 확대나 지역 관광프로그램의 혁신, 혹은 지속가능발전구역 지정과 같은 제도적인 변화도 필요하겠지만, 이를 넘어서 서울의 지속가능한 미래를 보다 근본적으로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참고문헌

- 남수정. (2019). 재생통치와 타자공간 생산의 관계에 대한 비판적 고찰: 종로 게이 게토를 중심으로. 미디어, 젠더&문화, 34(3).

- 김백영. (2020). 1990년대 수도권 형성과 한국 도시성의 전환. 사회와 역사, 127.

- 김희진, 최막중. (2016). 문화특화지역의 상업적 젠트리피케이션 과정과 장소성 인식 변화의 특성. 국토계획, 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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