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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밤, 길 위에서

갑작스레 날라온 부고 문자...

by 라내하

부고 문자를 받았다.
내가 세상에서 가장 아끼는 언니의 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다는 소식이었다.

순간 머릿속이 하얘졌다.

슬픔이 밀려오기도 전에 손이 먼저 움직였다.

생각할 겨를도 없이 근조 화환을 보냈고,

언니에게 짧은 메시지를 남겼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그 말을 적고도 한동안 화면을 들여다봤다.

더 무슨 말을 해야 할까.

무슨 말을 해도 부족할 것 같았다.

이럴 때, 어떤 말이 위로가 될까?

하지만 그 어떤 말도 언니의 마음을

완전히 어루만질 수 없다는 걸 알기에

더 이상 덧붙이지 않았다.


대신, 곧바로 장례식장 주소를 확인했다.

창원.

왕복으로 여덟 시간이 걸리는 거리였다.


바로 신랑에게 연락했다.
"출발하자."

신랑은 피곤했을 텐데도 단 한 마디로 답했다.

"당연히 가야지."

그 말에 괜히 울컥했다.


우리가 함께하는 이유,

가족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새삼 깨닫게 되는 순간이었다.


언니와 나는 꽤 오랜 시간을 함께해왔다.
내가 철없던 시절,

그 시절엔 그게 나름의 ‘방황’이라고 생각했었지만,

지금 돌아보면 세상을 부정적으로만 바라보던 어리숙한 시절이었다.

그때 나는 모든 게 싫었고,

모든 게 틀렸다고만 생각했다.

그런 내 곁에, 언니가 있었다.


언니는 기억할까?

우리는 처음부터 얼굴을 보고 알던 사이가 아니었다.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아마 페이스북이었을 거다.

얼굴은 사진으로 익숙했지만,

직접 만나본 적 없는 나를 위해

위로의 전화를 걸어주던 사람이 바로 언니였다.

그리고 언제나 내 편이었다.


내가 힘들어 미칠 것 같을 때,

언니는 흔한 위로 대신 내게 ‘길’을 주었다.
"너의 생각은 그럴 수 있어."
"네가 틀린 게 아니야. 충분히 그런 생각 할 수 있어."
"하지만, 조금만 더 이렇게 생각해 보면 어떨까?"

신기하게도 언니와 대화를 하면, 늘 답이 보였다.

나는 길을 찾았고,

한 걸음씩 걸어갈 수 있었다.


그런 신기한 인연이 계속 이어져,

결국 우리는 서로의 삶에 없어선 안 될 사람이 되었다.

그렇게 18년의 세월을 서로 알고 지냈다.

사실 언니는 모를 수도 있다.
솔직히 말하자면,

내 인생에서 언니는 단 하나뿐이다.


그 언니 하나가 전부다.


언니가 결혼해서 생긴 형부,

그리고 사랑스러운 딸,

이제 곧 태어날 뱃속의 아이까지.

나는 그들을 너무나도 소중히 여긴다.

내가 표현이 그리 많은 편은 아니지만,

언니는 내 표정만 봐도 내 마음을 읽어낸다.

그럴 때면, 나는 괜히 더 마음이 편해진다.


그런 언니의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당연히 달려가야 했다. 말해 뭐하나.


좋은 일로 얼굴을 보는 게 좋았겠지만,

결국 이런 자리에서 만나게 되었다.
언니와 형부를 반가운 마음 반,

슬픈 마음 반으로 마주했다.

언니의 눈은 깊은 슬픔을 품고 있었지만,

한 방울의 눈물도 보이지 않으려 애쓰고 있었다.


장례식장이란 공간에서,

애써 감정을 감추려는 사람들을 많이 보아왔지만,

언니의 그 모습은 유독 가슴을 저리게 했다.

아마도 장례가 끝나고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무너질지도 몰랐다.

나는 그런 언니를 보며 마음이 아팠다.

더 해줄 수 있는 게 없다는 게 미안했다.


"언니, 밥은 먹었어?"

그 말밖에는 할 수가 없었다.


언니의 가족들은 먼 길을 와줘서 고맙다고 했다.

어머님도, 형부도, 언니의 언니 되시는 형부까지,

우리 가는 길을 배웅해 주셨다.

하지만 오히려 내가 그들에게 더 감사함을 느끼고 떠났다.


네 시간의 귀갓길.
창밖을 바라보며 조용히 기도했다.

"언니가 너무 많이 울지 않기를."
"언니와 형부에게 더는 아픈 일이 없기를."


그리고 문득, 언니의 말이 떠올랐다.

"이게 인생 사는 게 다 그렇지, 뭐."

나는 피식 웃었다.


그렇지, 언니.

인생이란 게 원래 그런 건지도 모르지.

난 오늘도 되려 언니, 형부에게 따듯함을

받고 돌아왔다.

여전히 난 매번 받기만 한다.


그렇게, 깊은 새벽길을 달려 집으로 돌아왔다.

언니가 너무 아파하지마 않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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