셋이 모이면 시작되는 일
사람 셋이 모이면 대화가 즐겁다.
서로의 말에 맞장구를 치고,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셋 중 한 사람이 자리를 뜨면 분위기가 묘하게 변한다.
남은 두 사람 사이에 조용한 공기가 흐르더니,
어느새 떠난 사람의 이야기로 넘어간다.
처음엔 가벼운 말들이 오가지만,
점점 말투가 달라지고 표정이 변한다.
"그 사람, 좀 그렇지 않아?"
"맞아, 나도 사실 그렇게 생각했어."
홀수일 때는 이런 일이 더 자주 일어난다.
셋이 모였을 때는 균형을 이루지만,
한 명이 빠지는 순간 남은 둘은 같은 편이 된다.
다수가 되면 안심이 되고,
소수는 자연스럽게 표적이 된다.
넷이 모였을 때도 마찬가지지만,
이상하게도 셋일 때가 더 위험하다.
둘이서만 있을 때는 조심하던 말들이,
셋이 될 때는 갑자기 힘을 얻는다.
마녀사냥이란 게 꼭 거창한 일에서만 벌어지는 게 아니다.
일상에서, 사소한 대화 속에서도 시작된다.
처음엔 별것 아닌 듯 시작된 뒷말이
어느새 한 사람을 향한 비난이 되고,
때로는 돌이킬 수 없는 상처가 된다.
왜 사람들은 이런 행동을 반복할까?
아마도 본능적인 안도감 때문일 것이다.
다수 속에 있으면 안전하다고 느끼고,
누군가를 배제하면서 더 단단한 결속감을 얻는다.
하지만 그 순간 우리는 잊는다.
조금 전까지 함께 웃고 떠들던 사람이,
다음 순간 비난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그리고 언젠가, 우리가 그 대상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어쩌면 우리는 홀수로 모일 때마다
조심해야 하는지도 모른다.
특히 누군가가 자리를 비울 때.
그 사람이 돌아왔을 때,
우리가 그를 향해 어떤 표정을 지을 것인지 생각해 본다면,
어쩌면 그 순간 벌어질 작은 마녀사냥을 멈출 수 있지 않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자리를 박차고 나온다.
누군가가 자리를 뜨면 시작되는 뒷말,
애초에 그 흐름을 알고 있으면서도
함께 맞장구칠 수는 없다.
손쉽게 다수의 편에 서서 안도할 수도 있겠지만,
그게 과연 나를 더 안전하게 만들어 줄까?
아니다. 오늘 함께 손가락질한 사람이 사라지면,
다음엔 내가 그 자리에 앉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일어선다.
"너 왜 가?"
남은 사람들이 묻는다.
그 목소리엔 당황함과 불편함이 섞여 있다.
나는 그 질문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안다.
"너도 우리랑 같은 생각 아니야?"
"우리끼리 이렇게 말하는 게 뭐가 어때서?"
하지만 나는 더 오래 앉아 있을수록
점점 익숙해질 것이 두렵다.
처음엔 거북했던 대화가 점점 자연스럽게 느껴지고,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는 순간이 올까 봐.
그러다 결국엔, 나도 누군가를 조용히 비난하는 사람이 될까 봐.
"그냥, 이 분위기가 싫어서."
짧게 답하고 돌아선다.
굳이 변명을 덧붙이지 않는다.
남은 사람들이 무슨 표정을 지을지는
굳이 확인하지 않는다.
등 뒤에서 나에 대한 말이 시작될 수도 있다.
아마 그럴 것이다.
"쟤는 왜 저렇게 유난이야?"
"괜히 착한 척하네."
그렇다면 그 순간, 나는 다음 타겟이 된 걸까?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상관없다.
나는 적어도,
내 앞에 없어진 사람을 향해
혀를 굴리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
내 자리가 사라지더라도,
내가 떠난 자리에서 나를 말할지라도,
나는 그곳을 벗어나는 쪽을 선택할 것이다.
누군가를 배제하면서 생기는 유대감 따위,
오래가지 못한다는 걸 아니까.